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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ug 04. 2019

재개발 유감

再開發 遺憾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나는 아직도 우리 엄마가 짜장면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지 못한다. 사실 모자간에 대화의 주제가 음식이 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다만 배달음식을 거의 안 시켜먹는 집안 분위기상 엄마나 나나 집에서 같이 짜장면을 먹어본 기억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짜장면을 집에서 배달시켜 먹는 것보다 중국집 식탁에서 먹는 것이 더 익숙하다. 아마 우리 엄마도 본인의 친구들, 지인들과는 짜장면을 드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 치고 짜장면을 싫어하거나 안 먹는 사람을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살면서 짜장면을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이 있을까. 아마 우리 어머니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짜장면. 음식 이름만 들어도 몇 개의 추억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음식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짜장면이 대표적이다. 학교 졸업식, 친구의 자취방, 당구장, 사무실, 어느 바닷가나 강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각기 짜장면에 얽힌 이야기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내가 어렸을 때 처음 먹었던 짜장면 가격은 800원이었다. 짜장면을 먹고 싶을 땐 엄마를 졸라 800원을 기어이 받아내고서는 혼자 동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정확히 말하자면 그때는 국민학교. 그것도 2학년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였는데, 유유히 혼자 짜장면을 시켜먹는 모습이라니. 맛집이라면 꼭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고집이 그때부터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맛집 탐방을 하던 어느 날. 대략 서른 줄의 나이에 만나게 된 곳이 바로 그 보문동의 '안동 반점'이다.

요즘이야 흔히 말하는 노포(老鋪) 식당이 대세가 되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처음에 방문했을 때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그냥 동네 중국집에 불과했다. 어느 순간부터 밥 한 끼 먹으려면 최소 20분을 기다려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더해졌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은 맛과 인상되지 않은 가격에 나는 이곳을 여전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처음 시작은 짜장면으로 시작했지만, 이곳의 진짜 끝판왕은 '밥 메뉴' 다. 볶음밥과 잡채 밥의 양대산맥이 짜장면과 짬뽕의 양대산맥과 어우러져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맛의 협곡을 형성하고 있다. 불맛이 진하게 배어있는 볶음밥과 그 위로 매콤한 잡채를 올려준 잡채밥. 짜장면도 물론 너무 맛있다. 그런데 왠지 짜장면은 비슷한 퀄리티의 식당이 어딘가에도 존재할 것 같은데, 볶음밥과 잡채밥 특히 잡채밥은 그 어디를 가도 그 맛을 못 느낄 것만 같다.


그 맛이 그리웠다. 안 가본 지 1년도 더 되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나는 며칠 전 목적지를 경유하는 코스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그곳을 찾아갔다. '오늘은 몇십 분을 기다리더라도 꼭 먹고 와야지' 하는 각오로 발걸음을 재촉했고, 미세하게나마 약간의 설렘도 있었다. 휴가철이기 때문에 혹시나 문을 닫고 휴가를 가셨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와중에 마침내 보문역에 도착했고, 4번 출구로 나갔다. 휴가로 인한 영업중지는 없었다. 하지만 전혀 뜻밖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안동 반점이 있던 자리는 아니지만, 그 근처의 보문동 재개발 현장의 모습이다.  <구글에서 퍼옴>


눈 앞에 펼쳐진 건 익숙한 식당의 전경이 아닌, 황량하고 생경한 공사현장의 모습이었다. 그제야 급하게 스마트폰을 통해 검색해본 결과 이 지역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안동 반점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가게들과 낮은 지붕의 주택들이 다 같은 처지였다. 더운 줄도 모르고 달려왔건만 허탈감에 폭염 수치가 더 상승하는 듯했다.




재개발이라니. 비록 짜장면 하나 먹자고 갔던 그곳이었지만, 돌아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껏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철거를 앞두고 시위를 하는 모습을 tv에서 여러 번 봤었지만 아무런 마음의 움직임이 없었다. 실제로 살면서 그런 일에 엮이어 본 적은 없었으니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봤던 게 사실이다. 아니 사실 주거환경 개선 같은 그럴듯한 타이틀로 내심 재개발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무턱대고 재개발하면 여기서 먹고사는 사람들은 어떡하냐며 볼멘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정말 그 사람들을 걱정해서 하는 소리가 아닌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게 돼서 짜증 내는 철없는 투정에 더 가까웠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갑자기 난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말 다 어디로 갔을까. 물론 다들 알아서 각자의 처소를 찾아서 갔을 것이다. 더 나은 환경의 주거지로 갔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들 정든 집을 떠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단순히 밥 한 끼를 못 먹는 나도 이렇게 아쉬운데 삼시세끼 365일을 생활하는 그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안동 반점이 없어진 것은 나에게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추억의 살점들이 덩어리째 잘라져 나가는 느낌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그 살점들이 더 컸으면 컸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에 더 건강한 살들이 새로 나기를 바라본다.


재개발이라는 현대사회의 어쩔 수 없는 흐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 전처럼 강 건너 불구경은 안 하려고 노력해야겠다. 며칠 전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던 것처럼 그곳의 사람들을 위해 마음속으로 잠시나마 기도해주는 것. 내가 그것만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안동 반점이 다시 재개업을 할지는 미지수다. 이미 주방장의 나이가 고령이라 주문 후 음식이 나올 때까지 상당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도 재개업의 소식이 들리면 일부러 찾아가 보려 한다.

나도 떨어져 나간 살점을 메꿔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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