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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Dec 11. 2015

이 곳에 영웅이 없는 이유

이 글은 허문영 영화 평론가의 저서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에 실린 '백기사는 오지 않는다'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한국적 서사물에는 '히어로'가 없다. 그 이유는 익히 회자된 바 있다.


 우리가 영화나 만화에서 즐기는 영웅의 전형은 미국식 히어로다. 이 히어로의 특징은 독고다이로 활동하고, 공동체를 수호한단 것. 이것은 서부 개척시대 이래 북미의 자경단 전통에 기인한다. 미국은 중앙권력의 통치력이 불완전한 연방국가다. 땅덩이가 워낙 넓고 인구분포도 띄엄띄엄하니 중앙권력의 부재를 메울 자치 권력, 자경단이 등장한다. 이들은 공동체를 향한 외부의 위협과 공동체 내부의 악당들로부터 지역 주민을 보호한다. 배트맨은 전형적인 자경단형 영웅이고, 스파이더맨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월권행위를 승인하는 것은 범인을 초월하는 무력이다. 통제되지 않는 경우 공동체의 민주적․제도적 규범도 초월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그 강대한 무력 탓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거나 내적 갈등을 겪고 '변복'을 하며 정체를 숨긴다. 혹은 역설적으로 더 강한 적수를 계속 끌어들이게 된다. (언젠가부터 유행한 리얼리즘형 히어로 무비는 이러한 내적 갈등을 적극 조명하는 플롯을 취한다.) 히어로와 공동체 시민의 관계는 숭앙하거나 배척하는 수직적 양상을 띤다. 이게 스케일이 커지면 슈퍼맨이 되고 쪽수가 늘면 <어벤저스>가 되는 거다.


 반면 한국은 중앙집권제의 전통이 확고한 나라다. 이유는 정확히 미국과 반대의 사회 환경이다. 한국에는 국가 권력을 대신해 공동체를 지키는 히어로가 존재할 수 없다. 대신 촘촘하고 빽빽한 국가 권력의 수탈에 맞서 세상을 엎으려는 '반영웅'들이 전래한다. 이들은 거대한 강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자연스레 무리를 규합한다. 공동체 민초들과는 내통하고 연대하는 수평적 관계를 형성한다. 바로 의적이다. 이들은 공동체로부터 추앙받을 수도 승인될 수도 없는 존재다. 공동체 안에서 신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밖의 이상향으로 떠나는 것이 최선의 판타지적 결말이다. 아니면 중앙권력의 주구에게 쫓기다 사냥당해 한스런 숙원을 남기고 스러지거나. 정확히 홍길동과 임꺽정, 장길산이다.


 성공한 미국 상업영화 주인공에 가족을 지키고 그 와중에 공동체를 구하는 과업에 연루되는 가장 캐릭터, 공동체의 영웅이 많은 반면, 성공한 한국영화 캐릭터는 세상과 불화하거나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반영웅이 많고, 이들이 대개 정상가족의 가장으로 자립하지 못한 남근적 결함, 소년성을 품고 있는 것의 실마리를 여기서도 찾을 수 있다. 미국영화에는 공동체를 위기에서 구원하는 승리의 결말이 많지만, 한국영화에는 개인적 숙원을 이루는 것에 실패하고 비념을 품은 채 죽는 신파적 결말이 많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영화는 주인공이 아버지로 승인받는 가족주의 성장 서사이며, 한국의 영화는 방황하는 소년들의 형제애와 인정투쟁의 서사다. 결국 한 국가의 동시대적 서사는 그 국가가 바탕을 둔 특정한 지역학적 맥락 혹은 역사의 보편적 반영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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