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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y 26. 2017

구멍의 사물화

김훈 '언니의 폐경' 논란


김훈이 소설 '언니의 폐경'에서 생리를 묘사한 단락이 논란이 되었다. 손아람 작가가 김훈 소설에 관해 일종의 문학비평을 남겼는데, 동의하기 힘들다. 김훈이 여성의 몸을 해부학적 시선으로 스캔하는 건 맞다. 이건 추상적인 것을 적대하고 구상적인 것을 숭상하며, 인간의 본질을 뼈와 살로 환원하는 김훈 특유의 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성욕을 걷어내고 여성을 무생물처럼 보는 건 아니다. 무생물이 아니라 사물화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고 여성의 몸에 해부학적 지위를 매기는 것이다. 즉 여성이란 존재를 그의 몸과 성기의 구조로 파악한다.


김훈의 문장에서 관능은 빈번하게 나타나는 단어다. 김훈이 여성을 풍경으로 묘사할 때 그것은 낙화하는 사쿠라 꽃잎과 태평양 남국의 해변 같은 관능의 풍경인 것이다. 그의 문장에서 여성은 구멍-물고기 냄새-풍경 같은 성적 대상화의 환유적 의미망 위에 있을 따름이지, 성욕이 투사되지 않은 무생물로 고정돼있지 않다. 가령 그의 문장에 밴 '젓국 냄새' 같은 표현은 여성의 성기 모양에서 패류의 속살을 연상하는 발상과 통하고, 물속에 사는 비리고 축축한 자아가 없는 생물에 타자를 빗대는 것이며, 정액을 받아내는 '변소'에서 나는 냄새다. 까놓고 말해, 이게 장삼이사들이 '조개' '보징어 냄새' 운운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김훈이 여성을 사물화 한다고 할 때, 말 그대로의 사물이 아니라, 성적으로 대상화된 사물이 살아 움직이는 것에 대한 미혹과 호기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건 여성을 탐험과 탐구의 대상으로 보는 오리엔탈리즘이고, 여성을 미지의 심연 혹은 기원으로 경외하는 동시에 성기에서 나는 악취에 마조히스트처럼 도취하는 상투적 여성혐오다. 김훈이 즐겨 쓰는 구멍이니 동굴이니 깊숙한 곳이니 하는 표현도 상투 수사다. 생명(남자)이 태어난 곳, 자궁 회귀의 본능, 여성의 몸을 원시화하는 사상. 성기로서의 여성을 멸시하는 한편 자궁으로서의 여성을 숭배하는 이분법이다. 김훈이 여성을 대상화하는 걸 넘어 남성 대상화하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촌평하는 건 두서가 맞지 않다. 그는 여성을 관찰의 대상으로, 남성을 관찰의 주체로 자연화하는 역사와 구조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행적을 콘텍스트로 살펴봐도, 김훈의 산문에는 젊은 여자들의 젖가슴과 탱크톱 패션에 대한 성애적 응시가 출몰하고, 그는 인터뷰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언니의 폐경'의 한 단락 역시 읽는 이가 즉각 아연함을 느낄 만큼 투명하게 외설적이라 이런 구구한 해설이 쓸모없을 지경이다. 여성 화자를 노정하면서 남성적 시선으로 생리란 현상을 타자화해 묘사하고 여성 화자의 시선을 가장해 관음증에 심취하며 맥락 상 불필요한 서술이 있다(생리를 처리해 주다 말고 팬티 자국을 왜 보는가?). 뜨거운 게 몸속에서 밀려 나온다, 팬티를 자른다 같은 이치에 맞지 않고 음란한 서술이 그래서 나타난 것이다. 흡사 화자는 언니의 생리 현상을 처리해주는 게 아니라 일종의 섹스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다리를 벌려주었다" 같은 문장).


요는 김훈이 내포한 한국 문단의 여성혐오적 문법이다. 이런 점이 지금껏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건 작가의 장식적 미문과 평단의 의미 부여에 논점이 가려졌기 때문 아닐까? 손아람처럼 문제의식의 결을 덧붙이는 것도 논점을 우회하는 것에 다름 아니란 인상이 든다.


투명한 것에 의미를 덧대면 불투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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