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C 워너비 Sep 22. 2017

흉기로서의 사실

팩트 폭력이라는 유행어

최근 인터넷 세상 최고의 유행어는 '팩트 폭력'이다. 이 말은 두 가지 경로로 쓰인다. 상대의 콤플렉스, 프라이버시라서 말을 삼가는 게 경우에 맞는 사실을 대놓고 말할 때 쓴다. 이 경우 조크의 용도다. 다음으로, 논쟁 상대에게 일침을 가하며 혹은 가하는 사람을 보며 승전보처럼 터트리는 환호성이다. 나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이 나와 맞서는 사람들을 대신 비판해줄 때 터지는 환호성이다.

누군가의 치부를 꼬집지 않고 덮어주는 건 타인에 대한 배려이자, 인간이 사회화를 거치며 학습하는 교양이다. '팩트 폭력'이 짜릿한 건 그런 금기를 깨는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정체불명의 조어가 이런 용례로 인기를 끄는 건 사회가 동물화 되어 간다는 경고일지 모른다. 위선을 향한 조롱, 씹선비 / 쿨 병 같은 말과 한 통속의 유행어다. 사실을 말하는 건 잘못이 아니며 사실은 말해져야 한다는 무지막지한 당위, 그저 사실을 말할 뿐인데 폭력으로 받아들이는 네가 우습다는 비웃음, '폭행'을 하며 폭소를 터트리는 흉흉한 발상을 유머의 형식으로 정당화하는 태도가 거기 있다.

팩트는 사실관계란 뜻이다. 사실관계는 스스로를 정당화할 어떠한 논증과 부연설명도 요구받지 않는다. 아무리 꼼꼼하고 성실하게 반박해도 뒤엎을 수 없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그러한 것,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니까. 재미있게도 사람들은 별다른 사실관계도 없이 주의주장, 당위 명제를 담은 글에 '팩트 폭력'이라며 자지러진다. 역사학자 전우용이 열정적으로 뿌려대는 메갈리아 비판은 모두가 아는 수준의 사실관계에 기초해 맹렬한 가치판단에 몰두하는 글이다. 실은 사실관계를 챙기지 않고 비판할 때도 많다. 이런 글이 진보-남초 커뮤니티에선 "팩트 폭력배 전우용 님"이란 제목으로 매번 베스트 게시판에 오른다. 아, "팩트리어트 박가분 님"이라는 인지도가 약소한 자매품도 있다. 이렇게 주장을 '사실'로 전유한단 건 내 입장을 재고할 마음, 니 주장을 인정할 의사가 1도, 아니 0도 없다는 뜻이다. 정신 승리와 인지 부조화도 명함을 내밀다 쭈뼛거릴 자기 방어 기제다. '팩트 폭력'이란 말을 남발하는 사람일수록 성찰없고 게으른 토론자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