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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Nov 12. 2017

전선을 일탈한 전쟁

던말릭과 딥플로우의 디스전

며칠 전 던말릭이 디스 곡을 발표했다고 전했는데, 피격한 당사자 중 하나 VMC가 던말릭에게 응전했다. VMC의 수장 딥플로우가 그저께 ‘신관 예우’를 발표한 것이다. 다음날 던말릭이 ‘Deep Talk'로 다시 응수했고, 오늘 새벽 딥플로우가 'DazeAllLie'로 또다시 반격했다.

     

딥플로우는 한 레이블 수장이 연배 차이가 큰 후배 래퍼에게 직접 응전한 모습이 멋있다.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일이 사건화 되었고, 둘의 배틀을 올해 한국 힙합 최고의 사건으로 꼽는 장르 팬들도 보인다. 이런 음악을 통한 가십의 창출이, 언더그라운드 신의 리젠율을 활성화하는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도 있겠다.  

아쉬운 건 가사다. 이 싸움의 논점은 <쇼미더머니>와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태도다. 딥플로우가 전선에 뛰어들고 데이즈얼라이브와 그 수장 제리케이를 거론하면서, VMC와 데이즈얼라이브의 비프로 확전된 성격도 있다. 두 레이블은 <쇼미더머니> 시대에 언더그라운드를 지탱해 온 얼굴들이고, 넉살의 <쇼미더머니> 출연, 딥플로우의 <언프리티 랩스타> <고등 래퍼> 출연 등을 기점으로 CJ의 장르 신 독과점에 대한 대응에서 엇갈렸다. 이 디스전은 현재 한국 힙합의 큰 화두인 CJ의 언더 신 식민화를 말하는 진지한 논쟁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딥플로우는 “왜 미디어 독과점 문제에 언행일치가 안 되느냐”는 던말릭의 추궁을 스킵한 채, “네 반미디어 노선도 기믹 아니냐”는 피장파장 전법으로 나갔고, 랩 스킬의 겨룸이란 디스전의 일반론으로 논점을 단순화했다.      


기왕 계급장 떼고 링에 선 처지에 시종일관 던말릭이 어리다고 을러대는 것도 ‘어른스러운’ 행동은 아닌데, 더욱 어폐가 심한 건 이런 가사다.      


난 실은 네가 싫어하는 걸 그냥 하고 싶어 bitch  
랩에 'mother fucker', '씨발년'을 넣고 싶어 bitch
누나 손잡고 무지개 간 건 응원할게 bitch
넌 참 의식 있는 bitch 컨셔스 래퍼 bitch


데이즈얼라이브는 한국 힙합 신에서 소수자 의제에 연대해 온 유일한 그룹인데, 그 점을 걸고넘어졌다. "난 너 같은 어린놈이 못하는 말도 할 수 있어"라며 ‘씨발년’ ‘bitch’를 무차별 뱉었다. 딥플로우는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며 성인 남성으로 주체화한다"는 여성 혐오의 정의를 문자 그대로 재현해냈다. 뿐만 아니라 “I don't care 좆같은 DAZEALIVE(‘게이즈’ 얼라이브라고 발음한다) 메갈팸”이라고 비방하는데, <쇼미더머니> 얘기를 하다가 밑도 끝도 없이 메갈리아가 왜 나오는가? 한국 힙합은 그동안 여성혐오 가사로 페미니스트 그룹과 마찰을 빚어왔다. 다른 남초 집단에 비해서도 장르 팬들의 페미니즘 혐오가 드센 편이다. 저 구절들은 힙합 커뮤니티를 의식한 여론전이 아닐까 하는 혐의가 든다. 그만큼 맥락상 불필요한 가사다. 아니나 다를까, 힙합 LE에서는 저 구절에 환호하며 해묵은 원한을 푸는 팔불출이 속출하고 있다. 던말릭과 딥플로우의 디스전이 열렸는데, 엉뚱하게도 데이즈 얼라이브 소속 여성 래퍼 슬릭을 욕하는 게시물들이 베스트에 오른 상태다.      


“슬릭 인스타그램 반응 수준은 딱 중학생 계집애 수준이네요” “아 웩 슬릭 우웩 슬릭”

     

슬릭이 SNS에서 딥플로우에게 감정적 반응을 보였다지만 이건 정도가 과하다. 이번 디스는 미디어 독과점이라는 한국 힙합의 숙제를 한 문제라도 해결하며 진도가 나갈 수도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그보다 여성혐오라는 한국 힙합의 고질병이 도지는 빌미가 된 것 같다.     


딥플로우가 아파할만한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의 가사의 문제점은 윤리적으로 나쁜 것 이전에 유치하다는 것이다. "난 네가 싫어하는 말을 막 할 거야. ‘비치’ ‘비치’ ‘비치’ ‘비치’!" 이게 일베 종자들이 유튜브에서 키배하다 맥락 같은 거 쌈 싸 먹고 "너희 엄마! 너희 엄마!" 이러는 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까놓고 말해, ‘bitch'에 ’씨발년‘이 뭐 그렇게 좋은 말이라고 그 말을 할 수 있단 사실에 의기양양할까. 여자를 모욕하는 욕설을 뱉어놓고 자랑스러워하는 건 사춘기 남자아이들의 습속이다.   

   

딥플로우는 내가 곧 “언더그라운드의 동의어”라고 자부심에 들끓는 구절을 뱉었다. 청각적 연출과 함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언더 레이블을 일궈낸 그의 삶이 어울려 아우라를 빚어내는 가사다. 자신이 그만큼 큰 영향력을 지녔음을 알고 있다면, 한국 힙합을 듣는 십 대들에게 자신의 가사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생각해보길 권한다. 이런 건 한국 힙합에도, 언더그라운드에도, 장기적으로 VMC에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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