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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Feb 14. 2018

게임을 바꿨다니

한국 힙합 어워즈 '게임 체인저' 인터뷰

https://www.youtube.com/watch?v=zofl-XDGW1M


얼마 전 열린 한국 힙합 어워즈에서 스윙스, 더 콰이엇, 버벌진트를 '게임 체인저'라 명명하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게임 체인저, 멋있는 이름이다. 하지만 적절한 이름인지는 모르겠다.


장르 문화에서 게임의 규칙을 바꿨다는 말은 장르의 지배적 관습을 교체했다는 뜻이다. 한국 힙합의 관습은 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전환을 맞았다. 이전까지 내면 지향적이고 정신적 가치, 말과 행동의 일치를 성찰하는 관습이 대세였다면, 이후로는 자아를 외계로 분출하고 물질적 성공을 신봉하며 말로서 ‘나’를 더 커 보이게 하는 태도가 주류를 이룬다. '진정성'에서 '자기 과시'로 관습이 이행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 세 명 등이 핵심적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게임 체인저 같은 말을 붙이겠다면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 가령 스윙스는 한국말 랩에 워드 플레이를 수입한 장본인이고, 이후 랩 가사의 경향이 진중함에서 유희성으로 바뀌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힙합 커뮤니티에서 상투어가 된 ‘허슬’이니 하는 개념도 따지고 보면 스윙스가 앞장서 실천한 것이다.  


하지만 장르의 관습은 창작은 물론 창작의 바깥 차원을 아울러서 누적되며 승인되는 개념이다. 변화를 몇몇 사람의 몫으로 돌리는 순간, 다른 창작자들의 기여와 구조의 영향력은 논외 된다. 버벌진트는 해당 인터뷰에서 한국말 라임의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데, 버벌진트는 각운을 맞추는 방식의 라임에서 소위 다음절 라임으로의 발전을 이끈 사람 중 하나다. 다음절 라임은 버벌진트 혼자 개발한 것이 결코 아니었고 당대 SNP 멤버들의 공통된 테마였다. 마찬가지로, 머니 스웨거 가사를 제시한 건 일리네어 레코즈이지만, 그것이 힙합 신의 관습으로 자리 잡게 한 건 래퍼들을 방송 채널로 초대하고 행사장과 연결해주며 랩 머니를 보급한 <쇼미더머니>라고 단정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스윙스의 경우에도, 그가 주창한 바에 영향을 받고 자기 것으로 전유해낸 숱한 창작자가 있었기에 새로운 관습이 일상화될 수 있었다. 스윙스는 자신의 업적 중 하나로 자기 과시의 관습을 퍼트린 것을 꼽지만, 버벌진트가 그 보다 앞서 포문을 열었고, 스윙스가 데뷔했을 땐 이미 자기 과시형 가사를 시도하는 래퍼가 늘어나던 추세였다. 스윙스는 이 흐름 속에서 다른 래퍼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특히 창작 안팎을 아우르는 애티튜드란 측면에서 자기 과시를 독보적으로 캐릭터화한 래퍼라고 봐야 한다. 이렇듯 특정 뮤지션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것과 그들을 어떤 상징성으로 호명하며 신에 대한 지분을 주는 건 성질이 다르다. 나는 이런 이유로, 창작자 개인에게 주목하는 것보다 신의 연대기와 사건 및 관습, 구조를 통해 장르사에 접근하는 것이 정확하고 폭넓은 설명력을 지닌다고 본다. 전자의 경우, 한계를 의식한 채 신중하게 발화될 이유가 있다. 이건 내가 한국 힙합 ‘파이오니어’ 같은 명칭을 조심스레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 문제다.


현재 힙합 저널리즘에는 개별 음악가의 음악사적 행보와 의의를 정리하는 긴 호흡의 작가론 한 편 없는 것 같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본 적이 없다. 장르의 관습이 무엇을 뜻하며 한국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변천했는지 정리해 놓은 장르사 비평도 부족하다. 선행 논의가 없는 상황에서, 몇 분짜리 인터뷰를 통해 래퍼들 입으로 설명을 대신하고, '게임 체인저'라는 도전적 개념을 발표하며 권위를 부여하는 건 순서가 맞지 않는다. 한국 힙합에는 유독 '힙합 대부' 같은 거창한 이름이 횡행해왔다. 장르 신의 역사가 비교적 짧고 그만큼 저마다 역사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쉽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게임 체인저'라는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는데, 오남용 되고 과장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인터뷰 영상이 공개된 후, 힙합 커뮤니티에서 저 게임 체인저들이 흡사 한국 힙합 조물주처럼 경배받는 광경을 보자니 벌써 그런 상황은 아닌지 모르겠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저 셋 중엔 장르 신에 미친 긍정적 영향력만큼이나 부정적 영향력이 논란에 오르는 인물이 끼어있다. 게임을 바꿨다는 헌사가 그의 이름을 미화하고 악명을 탈취할 가능성에도 생각이 머문다. 역사와 인물에 대한 평가는 정확한 사실판단과 공정한 가치판단으로 이뤄져야 한다. 가령 누군가 후세에 한국 힙합의 역사를 기록한다면, 여성혐오라는 또 다른 관습의 범람에서도 스윙스는 그가 이끄는 레이블과 함께 필두에 기록되어야 한다. 스윙스는 해당 인터뷰에서, 자신을 부정하는 평판과 투쟁하며 정당한 인정에 목말라있는 듯 열변을 토하지만, 누구에게나 프라이드와 자기성찰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가 이상적이다.


현재 힙합 신은 음악 스킬의 발전과 시장의 팽창에 치우쳐있고 새로운 관습, 자기과시로 획일화됐다. 반면 그 변화 이전에 신을 일구고 가꾼 이들의 족적은 '퇴물'이라 일축되고 있다. 그 시절 영위되던 옛 관습은 현재 신의 다양성을 보정하기 위해 참조될 가치가 있음에도 폄하되고 있다. 당면 시기 필요한 작업이 있다면 이미 스포트라이트를 등에 업은 사람들 앞에 빨간 카펫을 까는 것보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 고리'를 묶어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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