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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r 13. 2018

식민화에서 현지화로

<고등 래퍼> 김하온

CJ 힙합 예능을 좋아하지 않지만, 김하온의 랩은 재미있다. 재미있다는 말이 곧 훌륭하다는 말은 아니다. 몇십 초짜리 벌스가 어떤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힘들다. 김하온의 랩은 발음과 가사 전달이 불분명하고 더 다듬을 여지가 보인다. 그런데 스타일이 매력 있다. 그의 랩은 미국 래퍼 카피캣에 워너비가 된 많은 한국 래퍼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 한국말 억양 대로 말하듯이 리듬을 타서 플로우가 자연스럽고, 그러면서도 펑키함과 타이트함이 살아있다. 특히 가사를 주목하고 싶은데, 자기 서사 없는 과시형 가사로 미국 랩의 클리셰를 번역할 뿐인 트렌드와 다르다. 특별히 깊이를 갖춘 가사는 아니지만, 아직 신에 데뷔하지 않은 고등학생 래퍼라는 자기 현실에 기반을 두고 가치관을 피력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가사에서 증오는 빼는 편이야" "그대들은 벌스 쓰기 위해서 화나 있지" 같은 구절을 보아도 기성 래퍼들의 작사 경향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게 느껴진다.


아닌 게 아니라, 조금씩 흐름이 바뀌고 있다. 2010년대 쇼미더머니 시대 이후 자기 과시형 가사가 득세하였고 이런 가사들이 힙합의 스타일화, 상업화를 추동했지만, 그와 함께 듣는 이들의 염증이 누적된 것도 사실이다. 힙합은 왜 가사가 똑같냐, 왜 래퍼들은 이유도 없이 화난 체 하냐, 왜 한국에 사는 래퍼들이 미국에 사는 것처럼 구느냐 등등. 이런 문제의식은 래퍼들 사이에서도 돋아난 건지, 작년에는 언더 신에서 특색 있는 음반이 꽤 발표되었다. 양식화된 가사를 넘어 서사성과 메시지가 깃든 가사, 남의 성공을 내 것처럼 말하는 가짜 주어가 아닌 내 생각과 경험을 말하는 진짜 주어, 주류 힙합의 획일성과 문화적 해로움을 비난하는 가사. 돈에서 가치관, 자기 과시에서 자기 성찰, 콜로니제이션(미국 힙합의 식민지화)에서 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으로 또다시 회귀하는 흐름이 감지되었다. 작년 쇼미더머니의 스타 우원재의 '시차'는 대중의 갈증과 호응하여 새로운 흐름을 예감케하는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기성 래퍼들의 창작 동향을 흡수하는 십 대 아마추어 래퍼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 고등 래퍼가 낳은 스타 김하온은 이 변화가 장차 더 뻗어 갈 것임을 암시한다.


소위 스웨거 힙합의 패권이 소멸하진 않을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트렌디한 사운드와 궁합이 좋고, 그 가사들이 주는 해방감은 젊은 대중에게 어필하는 바가 있다. 다만, 장르 신에 다양성과 스펙트럼이 마련되는 분기가 찾아온 것일지 모른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힙합은 트렌드를 넘어 메인스트림이 되었는데, 한 문화가 장기적으로 존속하려 해도 변화와 다양성이 이루어져야 하기 마련이다. 아직은 한국 힙합에 변화가 도래하진 않았고, 특히 혐오 가사가 청산되지 않는 현실은 문제가 크다. 다만 줄곧 한국 힙합이 변화할 필요성, 로컬라이징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입장에서 이상의 징조들은 각별하게 느껴진다. 가령 김하온의 "그대들은 벌스 쓰기 위해서 화나 있지"와 작년 후반기에 허클베리피가 발표한 'one of them'의 "걔네가 쓰는 또 하나의 무기 허슬, 희망사항으로만 채운 벌스를 읊어대며 자기는 성공했대"에서는 작년에 내가 쓴 글 '혼자 화난 래퍼들'이 공유된 궤적이 보이는 것도 같아 재미있다. 래퍼들처럼 으스대며 말해 보자면, 만약 한국 힙합이 변화의 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 역시 거기 기여한 역할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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