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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Apr 22. 2018

신뢰의 가치

바닥난 장르 신의 자원

말과 행동의 일관성은 왜 중요할까. 혹은 왜 말과 행동의 일치가 중요할까. 사람들이 저마다를 평가하는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한 정치가가 지역구를 살리겠다고 호소하고선 당선하자마자 입을 닦는다면 그의 다음 공약을 믿을 수 있을까? 한 지식인이 어제는 재벌 경제를 비판하고선 오늘은 이재용의 세습이 정당하다고 두둔한다면 그의 말에 권위를 부여해도 될까? 현재는 과거의 누적으로 존재하고 현재로부터 미래가 도출된다. 공동체가 신뢰를 확보하려면 일관성이 검증된 인적 자원이 필요하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현재의 안정성을 관리하는 길이다.


신뢰란 가치는 선비들의 공자 왈 맹자 왈이 아니다. 공동체를 운영하는 현실적 원리다. 누군가의 공언을 일일이 의심하고 캐물어야 한다면 돈과 시간과 공론의 허비가 막대하다. 만약, 어떤 정치인과 지식인의 일관성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때 찾아오는 것이 정치인은 다 더럽다고 정치 자체를 외면하는 정치 혐오와 지적인 것 자체를 불신하는 반지성주의다. 몇몇 공적 인물에 한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적 신뢰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일관성이 쌓 적립된다. 내 이웃이, 내 동료가, 내 상관이 뱉은 말을 지켜줘야 내가 내 삶을 신뢰할 수 있다.


얼마 전 굴지의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이 디스 전에 휘말렸다. 과거 레이블 대표는 CJ의 장르 신 독과점을 비난했고, 레이블 간판 래퍼는 ‘팔지 않아’라는 노래로 돈과 신념을 바꾸지 않겠다 장담했다. 이후 대표는 CJ 힙합 오디션 프로에 시즌 마다 출연했고, 간판 래퍼 역시 오디션에 참가해 억대 수익을 벌고 있다. 중요한 건 다음 이야기다. 언더에 남아있는 몇몇 래퍼들이 비난하자, 대표는 “너도 돈 좋은 건 마찬가지잖아, 의식 있는 척 ‘기믹질’ 하지 마라” 응수했고, ‘팔지 않아’를 부르던 래퍼는 “돈 못 벌면 일을 해야지, 왜 남 욕하며 관심을 구걸하느냐” 욕설을 늘어놨다. 저 말들에 뒤이어 장르 신에선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떠돌았다.


“자기도 더러우면서 선비질 하는 게 역겹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고 그게 자연스러운 거다"
“복잡한 현실을 옳고 그름으로만 따지는 건 어린 생각이다”

오디션 프로에 출연했단 사실을 비판하고 싶진 않다. 사람이 있어야 음악도 있는 것인데, 음악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선택을 누가 탓하겠는가. 저 레이블 대표는 앨범 제작비가 없는 후배 언더 래퍼를 위해 백만 원을 투자한 이력이 있다. 지금도 알게 모르게 후배들을 돕고 있을지 모른다. 현실의 경계는 이렇게 복잡하고 혼탁하다. 누구라도 그를 언더그라운드의 변절자라고 유치하게 욕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저렇게 말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나는 저 무지몽매한 생각들이 공공연히 정당화되는 것이 겁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무가치해지고 기회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기회주의가 되는 현실이. 차후 이 현실 속에 다른 래퍼들이 언더에 남아 음악적 가치를 지키겠다말한들 어찌 무게를 얻을 것이며 누가 그 말을 존중하겠는가. 저 레이블이 지금의 입지로 성장하는 데는 과거에 얻은 언더그라운드의 보루라는 이미지가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이건 순간순간의 득실을 쫓아 장르 신의 신뢰라는 자원을 탕진하는 한탕주의다.


인간은 현실의 중력을 업고 살아 간다. 그렇지만 가치를 지향하며 살 때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 현실주의는 울퉁불퉁한 현실의 바탕에 가치를 조립하려는 이념이지, 현실을 명분으로 가치판단을 보류하며 회색지대에 머무르는 이념이 아니다. 세상은 시간을 따라 흐르므로 누구나 변한다. 하지만 어제 뱉은 말의 한 조각이라도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가치가 실현될 수 있겠다는 전망의 근거가 생긴다. 반대로, 누군가 말을 물린다면 비판을 받아야 가치를 지키자는 약속이 살아남는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말과 행동이 어긋날 수는 있어도 약속을 어긴 이유는 설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이 완벽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결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기에 서로를 다그치며 책임감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압력을 느껴야 지킬 수 있는 말을 가려 뱉는 선순환이 이뤄진다.


무엇이 어린 것이고 무엇이 어른스러운 것인가. 성숙하다는 건 자신의 삶과 타인에게 한 약속에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성숙한 사람 만이 말과 말, 말과 행동의 일관성을 의식하고 지키려 애쓴다. 그것은 현실의 혼탁함과 가치의 무거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아울러 내다보는 지성이 걸린 실존적 결단이다. 덜 자란 어른들이 미성숙한 사회를 만들고는 어린 사람들을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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