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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Apr 25. 2018

성평등 힙합?

여성가족부와 래퍼 루피의 콜라보

여성가족부가 래퍼 루피를 섭외해 성평등 음원 개발 프로젝트를 연다고 한다. 대중문화에서 여성혐오 논란이 가장 빈번했던 분야가 힙합인데, 아이러니한 기분이 든다. 물론 힙합은 유행하는 음악이고, 다양한 주제를 가사로 흡수할 수 있는 음악이다. 그렇다곤 해도 루피??? 이 래퍼가 평소 어떤 가사를 썼는지 검토는 해봤을까. 루피는 여느 래퍼 못지않게 여성을 성적 객체로 비하하는 가사를 써왔다. 젠더 인식이 검증되지 않은 래퍼가 응모된 댓글들을 행사 취지에 알맞게 가사로 윤문 할 수 있을까? 괜히 또 다른 논란만 부르지는 않을까? 행사를 홍보하는 얼굴로도 적합하지 않고,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도 적합하지 않은 섭외다.


성평등이 주제라면서 "남자라서, 여자라서 불편했던 일"을 '공평하게' 모집하는 콘셉트를 잡았으니, 이런 결과도 당연할 것 같다. 한쪽 성별의 권익이 더 낮은 사회에서 반대 성별의 고충을 아우르는 식으로 접근하면 논리적으로 갭이 좁혀지지 않는다. 남자들이라고 세상살이 고충이 없겠냐만 그건 성차별의 결과가 아니다. 제일 큰 이유는 사회경제적 차별이고, 성차별을 수행하는 가부장 주체로 사회화하는 데 따른 자원을 배분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여성이 겪는 차별을 해소해야 남성도 자유로워진다는 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런 콘셉트인 것 같지도 않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불편했던 일"이란 문장에서 "남자라서"를 먼저 쓴 무신경함하며. 이 주제로 남성들의 불만을 모집해봐야 군대 타령에, 부페니즘 타령에, 역차별 타령이 나오기 십상인데, 그게 과연 성차별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이번 일 역시 힙합 문화가 피상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데 따른 해프닝이 아닐까 싶다. 높으신 분들이 요즘 젊은이들이 힙합을 좋아한다니까 이벤트에 활용해보라고 지시했을 테지. 힙합과 젠더 이슈가 어떤 관계인지, 힙합이 어떤 사회적 이슈를 빚고 있는지, 어떤 래퍼들이 어떤 캐릭터로 활동하는지 파악하는 사람이 없었을 거다. 그러다 보니 취지에 맞지 않는 인선을 하게 된 거 아닐까? 물론 반대일 수도 있다. 힙합은 좋아하는 데 젠더 인식이 없는 실무자가 추진했을 수도 있겠지. 둘 모두에 무지했을 수도 있고. 루피도 그렇다. 얼마 전 자기네 레이블 간판 래퍼 나플라가 된장녀 운운하는 전형적인 여성혐오 노래를 발표해 구설수를 빚었는데, 이런 섭외를 접수할 판단이 들었을까? 섭외한 쪽이나 받아들인 쪽이나 아쉽다.




뒤집어 톺아보면 좀 더 관대하게 생각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다르게 생각하면 루피처럼 성평등과 거리가 멀던 래퍼가 성평등 이벤트에 참여해 역할을 바꿀 계기가 생긴다면 좋은 일이다. 미국 래퍼들처럼 혐오 가사를 쓰더라도 여성 문제에 연대할 수 있고 그거 자체도 발전이다. 창작의 관습을 따르더라도 그와 별개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시민으로서의 책임감을 자각한다는 뜻이니까. 이런 태도가 널리 퍼지면 혐오 가사의 성격이 좀 더 양식화되고 해로움도 줄어든다. 고로, "네가 왜 이런 일을?"이라고 평가절하하지 않고, "이런 일을 맡았으니 앞으론 더 잘합시다" 역으로 요구하는 선택지도 있다.


다만, 루피가 이 프로젝트로 여가부와 진행한 인터뷰를 읽어보면 고무적인 대목도 있는 반면, 한국 남성들의 전형적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성평등 이슈를 서로 배워나갔으면 좋겠다" 말한 대목은 긍정적이지만, "성이란 표현보다는 평등이란 표현에 공감이 갔다" "남자 여자 편 가르기 같은 조금 의도치 않은 부분이 미투 운동의 본질을 왜곡하면 안 된다" "한쪽 성 만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존재로서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은 아쉽다. "남자 여자 싸우지 말아요. 증오로 여성 운동을 변질시키지 말아요"라는 통념과 통하는 생각이라서. 그럴 만도 하다. 앞서 말했듯, 여가부 이벤트의 취지가 딱 저 수준이니까.  


힙합과 젠더 이슈의 콜라보는 좋은 소식이고,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자주 있길 바란다. 다만, 정부 측에서 먼저 인식을 재고하면 좋겠다. 루피야 사회 평균보다 앞서 나갈 의무까진 없는 음악가지만, 정부 관청이라면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남성 래퍼들도 여성 문제에 목소리를 내겠다면 나름의 책임감은 가졌으면 한다. 유무형의 페이가 걸린 외부 섭외에 응하는 것과 함께, 장르 신 내부의 성차별을 돌아보자는 말이다. 후자가 이뤄지지 않으면 전자 만으론 공허한 면이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절대로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캠페인엔 래퍼가 세 명이나 참여했었지만, 그들은 정작 미투 운동이 시작되자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침묵했었다.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다. 장르의 혐오 가사를 되돌아보자, 힙합 신도 성평등을 위해 노력하자, 여성 운동 지지한다 정도의 원칙적 발언이라도 해보자는 거다. 젠더 이슈에 발언해 온 저명한 미국 래퍼들도 그렇게 했다.


무엇보다 이런 이슈는 여성 래퍼들한테 맡기는 게 좋다. 이슈의 당사자인 데다 이 문제로 꾸준히 고민하고 창작해 온 사람들이니까. 행사를 기획하려거든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한테 맡기자는 상식적인 이야기다. 힙합 신에서 기회가 적은 여성 래퍼들에게 목소리를 내게 해주어 성평등에 다가서는 자기 반영적 실천이기도 하고. 앞으로는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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