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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y 20. 2018

유죄 추정의 원칙

사진업계 성폭력 국민 청원

사진 스튜디오 성폭력 사건을 두고 자꾸 무죄추정의 원칙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엔 범죄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를 사회적으로 비난해선 안 된다는 취지가 내장돼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공정한 반론권을 주고 그의 인권을 확보하며 국가 형벌권의 자의적 행사를 금지하는 원칙이다. 아직 재판도 진행되지 않았고, 자백을 강요 당하지도 않았고, 죄수복을 입힌 것도 아닌데 무죄추정의 원칙이 부정당했다는 건 과장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엔 분명 사회적 효력이 있다. 미투 운동 같은 대규모 실명 폭로는 이 원칙을 교란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고발자들은 가해자의 실명을 지목하진 않았다. 자신의 피해 경험을 공개하며 도와달라고 청원했다. 사회적 비난에 의한 구체적 피해는 제한된 상황이고, 고발자 자신의 문제를 넘어 업계 관행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 환기라 봐야 한다.


다만,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오른 글에는 'ㅇㅇ역 ㅇ번 출구'라는 지명이 적시돼 있다. 이는 스튜디오 상호를 특정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이 점에 의한 사회적 예단을 우려한다면 그것도 무시할 생각은 아니다. 이는 최근의 폭로 정치 전반에 해당하는 경향이므로 여러 논점과 견해가 상존할 수 있겠다. 내 생각을 밝히자면, 폭로자는 가해 혐의자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는 누락한 채 피해 사실을 밝히고, 언론과 수사 및 사법 기관이 사회적 문제의식을 고취하며 받아 안는 방향이 좋다. 가령 피해자를 특정하는 경우, 폭로자가 그에 따른 부담을 지거나 고소에 반격당할 수 있으므로, 폭로의 안전망을 설치한다는 차원에서도 의미 있는 쟁점이다. 그러나 무죄 추정의 원칙을 명분으로 폭로자나 폭로 행위를 비난하는 건 최악의 입장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절대적 원칙은 아니다. 피의자ᆞ범죄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장치지만, 이 원칙이 역시 피해 호소인의 인권 및 다른 헌법의 가치와 맞설 때가 있다. 그래서 성폭행 등 중범죄의 경우 예외가 적용된다는 학자들도 있다. 지금껏 사회 관행도 그랬던 점이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법정과 경찰서에서 피의자를 범인 취급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되, 모든 사회적 판단도 중지시키는 원칙이 아니다. 둘은 큰 틀에서 연동되지만 동일하진 않다. 수사와 재판이 미흡한 상태에서 사회적 판단이 수사를 끌어낼 수 있고, 법과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완벽하지도 않다. 박근혜는 지금에야 재판을 받았는데 왜 작년에 탄핵부터 요구했는가?


무죄추정을 지키자는 사람들은 "그때는 박근혜의 비위 사실이 명확할뿐더러 사안의 무게가 막중했다" 반박할 수 있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사안의 성격에 따라 사회적 판단은 형사 절차와 병존할 수 있다. 스튜디오 성폭력 문화는 암암리에 알려져 있었고 그럼에도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미투 운동이 바로 이런 사각지대가 낳은 소요 사태였다. 이번 사건은 여러 피해 사례가 함께 밝혀졌고 고발자들이 실명과 얼굴을 걸었다. 고발자들이 고발로 얻을 것이 없는 데다, 중요한 사회 문제로 공인된 성폭력 범죄에 '무죄 추정'을 판단 중지의 근거로 요구하는 이들은 이 원칙의 절대적 지지자가 틀림없다. 그런 태도 자체는 좋다. 경직된 입장일지라도 한국처럼 '보편 인권'이 부족한 사회에서 '보편적 원칙'을 예외 없이 주장하는 데도 의의가 있다. 그래서 홍대 누드 몰카 사건 때도 가해자를 무죄로 추정하고 비난하지 않았었겠지?


문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아니다. 이렇게 인권을 편파적으로 독점하는 태도다. 스튜디오 성폭력 사건이 바로 이런 토양에서 벌어졌다. 피의자를 무죄로 추정하면서 고발자를 '무고죄'의 그물에 밀어 넣어 유죄를 추정하는 당신들의 이데올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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