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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Jul 13. 2018

자존감의 부작용

자존감과 힙합, 한국사회

트위터에서 지뇽뇽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심리학 연구자 박진영이 쓰는 글을 유익하게 읽고 있다. 뇌리에 가장 신선하게 박힌 이야기는 “자존감이 높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높은 자존감은 오히려 폭력성으로 발휘될 수 있다.”이다.


이 말을 힙합을 설명하는 데 응용해보자. 힙합에는 건강한 자존감을 넘어 '높은 자존감'이 걸려있다. 남보다 부족해도 괜찮다고 나를 현실적으로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최고이며 특별하다고 밀어붙이는 자존감. 래퍼들의 '높은 자존감'은 자신에 관한 거대한 이미지를 지지해주지 않는 현실을 미봉한다. 날 인정하지 않는 ‘방구석 헤이러’란 유령을 불러내고, 날 향한 비판을 시기 질투로 몰아가고, 나보다 낮은 자를 깎아내리며 나를 높이는 혐오 가사가 튀어나온다. "높은 자존감이 폭력성으로 발휘되는" 정확한 사례다.


힙합이 쓰레기 음악이라는 건 아니다. 저런 특성들을 양식적 요소로 즐기거나, 그 밖의 긍정적 요소를 골라내 인사이트를 얻으면 된다. 힙합은 여러 상충되는 요소가 공존하는 모순된 음악인만큼 마음을 건강하게 일궈주는 매력도 있을 거다. 다만 이렇게 교훈을 얻으려면 힙합이 품은 부정적 요소를 인지해야 한다.  


나는 자존감을 곧 '좋은 것'으로 여기거나 만병통치약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자존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자존감은 삶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내가 처한 현실이 나를 존중해줘야 내가 나를 존중할 수 있다. 거울을 노려보며 "자, 지금부터 자존감 있게 살아보자" 뇌까린다고 수가 생기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겪는 문제의 원인은 자존감을 잃은 개인들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바리톤이 되기 위해 많이 먹고 몸통부터 키우자는 발상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뱉는 자존감의 쓰임새는 대개 누군가를 자존감 부족한 사람이라 규정하는 것이다. 자존감 있는 사람이 할 행동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심리학 담론은 그런 의미에서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고성장 시대의 종말로 일상이 된 정신 질환과 사회적 릴레이션십의 부재를 그 자체로 원인으로 지목하는 오류가 그 근처에 있다.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자존감 결핍'이라 '진단'하는 얼치기 심리학이 얼마나 넓게 퍼져있는가? 개인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개별적으로 치유하되, 사회적 차원에서 고통을 근치 하는 안목을 공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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