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존감에 관해 늘 하던 이야기가 씌어진 기사가 있네요.
"자존감 열풍은 언제부터, 왜 불었을까. 심리학자 김태형(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이 쓴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에 따르면 1980년대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 자존감이 한국에서는 30여년쯤 지나 유행하기 시작했다. 저성장 사회에서 큰 성취감을 얻기 어려워진 2030세대가 스스로를 소중하게 대할 방법을 찾게 됐다는 분석이다."
자존감이 스스로에 관한 이미지라고 한다면 외부를 통해 구조적으로 형성되는 거죠. 주위로부터 존중받은 경험이 많아야 자존감도 높다는 간단한 이치입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자기 내부에서 주문을 외운다고 이걸 뒤집을 수 있을까요. 그런 식으로 만든 이미지는 자존감보다 '허상'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 수용해주지 않는 자존감의 추구, 자존감이라기보다 비현실적 자의식, 위태로운 자기 이미지겠죠.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자존감이 아니라 삶입니다. 높은 자존감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목적이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자존감이 따라오는 거죠. 내 삶이 불행한데 어떻게 자존감이 높겠습니까. 그 상태에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고 한들 그게 뭔 의미고요. 그쯤 되면 거의 자기 최면이죠. 기사에서 짚어진 대로, 자력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힘든 시대니까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라도 절실한 거겠죠. 지금 사람들이 그토록 뱉어대는 자존감이란 게 딱 그거예요. 그 느낌이 있으면 행복한 삶을 쟁취할 수 있다고, 자존감의 프로세스를 거꾸로 설명하는 약장수들이 한탕하는 중이고요.
바람직한 자존감을 얻는 방법이 있긴 있을 겁니다. 외부와 별개로 내면을 높이는 허황한 방식이 아니라, 내가 처한 조건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이겠죠. 이런 게 현실적 자기 이미지고요. 이런 처방이 실재하는 자신의 모습과 스스로 요구하는 자신의 이미지 사이 괴리로 인해 괴로워하는 개인들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사회 담론이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문제의 원인이 아닌 문제의 결과를 심리적으로 처리하는 '구조에 대한 체념'이 연출되기 딱 좋죠. 자존감을 가장 현실적이고 건강한 의미로 추구한다고 해도 그 나름의 함정이 근처에 있다고 봅니다.
자존감이란 개념을 사회적으로 유익하게 활용하려면 "자존감=좋은 거"의 도식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라고 봐요. 이 점이 제가 자존감을 말하는 전문가, 담론가들의 밑바탕을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하고요. 자존감이 가제트 만능 팔처럼 자기 계발의 차원에서 설파되니까, 능력주의와 만나서 사람들 자존감에 서열을 매기고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는 압박'을 주는 헬조선적 현상이 발생합니다. "자존감 낮은 인간"이 욕설로 상용화된 판이니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 자존감을 강조하면서 자존감에 생채기를 주는 병적인 현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