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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Jul 18. 2019

외교와 아이돌의 함수관계

한일관계 악화가 장기화되는 추세다. 국제 외교 정세는 국내 엔터 산업의 직접 변수다. 한국 문화 산업이 소위 한류, 케이팝으로 불리는 세계화로 운영되고 있어 그렇다. 케이팝이 미국에 진출했니 유럽 투어를 하니 해도 서구는 머나먼 시장이다. 극히 일부 그룹을 빼면 수익성이 나오질 않는다. 팬덤 자체가 적을뿐더러, 장거리 이동 경비에 시간에 타산이 맞지 않는다.


결국 수익이 나오는 곳은 인접한 동아시아다. 지난 십 년 간 동북아 정세는 부침의 연속이었고 케이팝의 해외 진출도 풍랑을 탔다. 트와이스 쯔위가 중국과 대만의 뿌리 깊은 알력의 희생양이 됐고, 박근혜 시절 중국과 사이가 틀어지며 중국은 한국 문화산업에 문호를 닫았다.


그 후 줄곧 케이팝 아이돌은 중국에 진입을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교류가 끊어진 건 아니다. 현지 기획사와 합작을 해 완전히 현지화된 아이돌 그룹을 론칭하고, 반대로 중국 기획사가 한국에 지부를 세워 한국 인력을 고용해 회사를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중국인 멤버도 여전히 케이팝 그룹에 종종 발탁된다. 국내에서 발매하는 앨범 판매량에서 해외 공구량의 비중이 커졌는데, 중국에서 사 가는 물량이 꽤 된다. 우회적인 방식으로 나마 한한령 시대의 중국은 케이팝의 큰 손 노릇을 하는 중이다.  


일본 시장은 좀 더 곡절이 많다. 케이팝의 일본 진출 전성기는 소위 한류 2세대, 2010년대 초반이었는데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의 이명박 집권기였다. 이 시기 한류는 세대와 계층을 넘나드는 대중적 인기 문화였다. 그러다 2012년 이명박이 레임덕 돌파용으로 독도에 방문하며 좋은 시절이 저물었다.


당시엔 일본 외무상이 카라의 CD를 버렸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 상상하면 되게 웃긴 시추에이션인데, 넥타이 맨 중년의 각료가 고뇌에 찬 얼굴로 “조국과 카라 중 하나를 택하라면 내 선택은 조국이야, 카라 짱의 CD를 파. 괘. 한. 다” 이러진 않았을 거 아닌가 (...) 아무튼 일국의 고위 관료가 한국 걸그룹의 CD를 소장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 될 만큼 한류에 대중성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대중에 기반을 둔 문화였기에 한국을 향한 여론이 악화되며 직격탄을 고스란히 맞았다. 이후 몇 년 간의 침체기를 해동하고 한류를 재개한 것이 트와이스다. 일본인 멤버를 대거 발탁해 높아진 진입장벽을 넘어선 점, 그룹 자체의 매력 등이 성공 요인이었겠지만, 아베와 위안부 졸속 합의를 맺는 등 박근혜 시절 다시금 사이가 풀어진 한일 관계가 배경이었을 것 같다.


문재인은 집권 직후부터 박근혜가 맺은 협정을 파기하며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작년 후반기에는 한국에서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이 떨어지며 일본 정부는 주일 한국 대사를 초치했다. 그 연장선에서 터진 것이 방탄소년단 엠스테 출연 취소 사건이다. 단지 원폭 셔츠가 문제였다기보다 난파된 외교 관계가 문맥으로 작용한 것이다. 특기할 건 엠스테 출연 취소 직후 방탄의 일본 투어가 성황리에 치러졌다는 점이다.


이건 현재 일본 내 케이팝 시장과 2세대 한류와의 성격 차이 때문이다. 예전의 한류가 대중문화였다면 현재 한류는 젊은 일본 여성들의 힙스터 문화 혹은 하위문화다. 반한 여론의 파장이 가닿지 않는 지역에 있다. 파이는 줄었지만 뿌리는 단단해졌다. 일본 정부가 한국 기업에 수출 규제 조치를 내린 와중, 한국에서 미쓰비시의 압류자산 현금화 절차가 시작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된 어제에는 아이즈원이 일본 공영방송 NHK 음악 방송 우타콘에 버젓이 출연했다. 아이즈원은 한일 합작을 통해 탄생한 그룹으로 일본 활동은 현지 기획사 AKS가 관장한다. 트와이스 보다 현지화 수준이 높은 그룹인데, 절반 정도는 일본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이 그룹의 속성이 현지 활동에서 외풍을 막아주는 창호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마도 그 덕에 비상한 시국에도 여타 케이팝 그룹보다 훨씬 대중적인 행보를 걷고 있다.


한일 양국의 대립은 전례 없는 상태고, 여기서 더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케이팝의 수익 활동은 지난 세대처럼 단절을 맞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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