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루미코 월드의 경계성

<란마 1/2> (다카하시 루미코, 1987~1996)

by MC 워너비
작년 연말, 오래 전 즐겨 보았던 다카하시 루미코의 작품들을 다시 펴들었다. 그러다 한가지 흥미로운 재발견을 했다. 루미코의 작품에는 그냥 지나치기 힘들만큼 강력하고 고집스런 삼항구조가 도드라져 있었다(정체성-(정체성 사이의 정체성)-정체성). 그것이 이 글의 시작이었다. 이 글은 루미코의 독자로서 던져보는 자문자답이다.


<란마 1/2>, <이누야샤> 등으로 유명한 일본 여성 만화작가, 타카하시 루미코의 작품 역사는 무척이나 흥미롭다. 루미코 월드의 특징은 일본 토속 신앙과 주술적 세계에 대한 매혹(<란마 1/2>, <이누야샤>, <인어의 숲>, <경계의 린네>)이다. 그리고 모종의 ‘경계성’이다.

<란마 1/2>의 란마는 남자인 동시에 여자다. 접촉하는 물의 온도에 따라서 무엇으로도 변한다. 란마의 아버지와 여타 인물들 역시 변태의 저주에 걸려 있다. 이것은 불의의 사고로 인한 것이다. 때문에 원래의 신체, 정체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다. <이누야샤>도 마찬가지. 이누야샤는 반요다. 악의 화신 나라쿠 역시 반요다. 그들은 사람이 되기 위해, 완전한 요괴가 되기 위해, 사혼의 구슬과 엮이고 그를 원한다. 히로인 카고메는 현대와 전국 시대,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오간다.

<인어의 숲>에는 인어 고기를 먹고 불사가 된 주인공과 불사를 얻으려 인어 고기를 구하는 기괴한 군상들이 등장한다. 인어는 사람도 어류도 아니다. 인어고기를 먹은 이는 인어가 아닐뿐더러 (죽지 않으니까)사람도 아니다. 인어고기의 독성을 분해하는데 실패하고 정체성을 잃은 괴수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제가끔 원래의 신체, 타고난 정체성으로 돌아가거나, 불노불사의 신체가 되어 현재의 정체성을 극복하길 갈망한다.

최근작 <경계의 린네>는 ‘경계성’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이승과 저승의 경계). 초기 대표작 <메종일각>의 무대, 하숙집 역시 정주와 이주의 중간지대, 즉 경계의 공간이다. 루미코의 인물들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정체성과 정체성의 경계, 그 굴레를 초극하고 정상성을 획득하길 희구한다.

루미코는 일본 코믹스 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 작가다. 여성풍 순정만화가 아니라 남성독자를 대상으로 만화를 그리는 인물이다. 그녀의 작품에선 (다른 소년만화들에 비해) 히로인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주체적 위상을 담지한다. <이누야샤>에서 사혼의 구슬을 정화하고 서사를 끝맺음하는 권능은 카고메에게 있다. <란마 1/2>의 주인공은 절반은 여자다(란마의 양성성).


재미있는 것은 루미코 만화에선 노출과 호색으로 여성성이 곧잘 대상화되면서도 섹슈얼리티 윤리의 미묘한 강박과 그에 따른 회피가 감지된다는 점이다. 란마의 알몸을 아무리 노출해봤자 독자의 욕망은 대상과 만나지 못한다. 란마는 근본적으로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루미코 월드에는 음흉한 남성성이 천연덕스레 활개를 치지만, 여성이 원하지 않는 성욕은 잘못된 것이며 허락받지 못한다는 불문율이 정초돼있다. 또는 남성 캐릭터와 여성캐릭터 사이 권력관계의 키를 여자 캐릭터가 잡고 있다(카고메는 “앉아”라는 주문으로 이누야샤를 속박한다).

루미코 월드의 경계성은 작가의 젠더/섹슈얼리티와 출판세계 남성적 욕망을 타협한 흔적이 아닐까. 그 배면에는 여성 작가로서 남성 취향에 투신한 정체성의 혼재에 대한 자의식이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그녀의 작품을 지배하는 초극의 열망이다. 그것은 상업적 타협에 대한 내적 갈등과 긴장, 자기 연민(혐오)과 초월의 정조가 발현된 작가적 인장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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