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Social Critic

부조리의 병영 국가

by MC 워너비

얼차려는 '부조리'하다. 부조리는 이치에 어긋난단 뜻이다. 이치는 현상의 앞뒤가 맞는 상태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를 얻으려면 원인에 맞춰 대응해야 한다. 혼자서 훈련을 못 따라가는 '고문관'이 있다면 해당 인원에게 특별히 보강 교육을 시켜야 한다. 다 함께 싸잡아 머리나 박게 하는 건 '부조리'하다.


사격을 못 하면 사격 동작의 단점을 파악해서 지도해야 한다. 완전군장 행군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경량화된 장비를 개발해야 한다. 무거운 보트를 못 들면 파지 요령을 알려 주거나 평소 체력 훈련을 시켜야 한다. 한국 병영문화에선 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얼차려'다. 이건 군사력 증진을 위한 대응이 아니다. 문제의 책임을 개별 병사에게 캐묻는 것일 뿐. 가장 값싸고 손쉬운 해결책이고 문제에 대응하는 합리성이 없다.


군대만 이런 게 아니다. 학교와 학원, 가정에서 행해졌던 체벌 문화가 있다. 산수를 못 해도 손바닥을 때리고 받아쓰기를 못 해도 손바닥을 때리고 지리부도를 못 외워도 손바닥을 때린다. 결과에만 책임을 묻고 원인 해소를 도와주진 않는다. 징벌과 모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이 원리를 범주만 바꿔 확장 해 보면 사회 집단 곳곳에서 유사한 광경이 보인다.한국 사회의 훈육 개념, 나아가 사회 문화의 밑바탕에 병영 국가가 있다는 뜻일까.


'극기'나 '정신력'은 무지몽매할 정도로 공허하다. 정신력이 뭘 말하는 건가? 심리학이나 정신 의학에 의거 검증이라도 된 개념인가? 그걸 계발하는 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우기라도 한 건가? 육체를 쥐어짜며 기합을 주는데 왜 정신이 강해 진단 건가? 그건 정신이 아니라 육체가 강한 사람이 잘 버티는 거 아닌가?


정신력이 아니라 멘탈이라고 영어로 말하면 부조리한 것에 조리가 생기는 느낌이 들까? ‘멘탈’이란 게 저 홀로 존재할 수 있나? 저런 방식으로 측정하고 단련하는 ‘멘탈’은 절대 체력과 별개가 아니다. 심폐 기능이 더 좋은 사람이 입수 훈련도 잘 견딘다. 근육질로 어깨가 떡 벌어진 헬스 유튜버들과 스쿼트도 안 해 본 사람을 섞어놓고 오리걸음을 시키면 누가 잘 버티겠나? 그럼 낙오한 사람은 ‘멘탈’이 부족한 거고 오래 버틴 사람은 ‘멘탈’이 좋은 건가?


무엇보다, 정신력을 왜 따로 놓고 '단련하기 위해' 단련하는 걸까. 사람의 정신 상태는 사회 활동과 환경의 부산물이다. 어떤 관계와 과업을 겪으며 성장한다. 무박 2일 동안 잠 안 자고 육체적 고통을 겪는다고 정신력이 강해진다? 미개한 사회가 별다른 게 아니다. 이런 비과학적이고 부조리한 논리가 횡행하는 사회가 미개한 사회다.


사람의 정신, 마음, 혹은 '멘탈'은 '단련'이 아니라 '건강'을 목표로 둬야 하는 성질의 대상이다. 그걸 위해 필요한 건 적당한 수준의 긴장감과 자연스러운 동기 부여, 심적 안정을 해치는 요소를 멀리하는 '관리'다. '욕설'과 '얼차려'로 몰아붙이는 게 아니다.


군대 식 훈련, 가혹 행위를 견뎌내고 완주하면 '참된 인간' '진짜 사나이'가 탄생한다면, 국민 절반이 예비역인 한국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일 리가 있을까? '인성 교육'은 합리적 가치관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는 걸 목표로 해야지, 콘크리트에 머리나 박는 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대체 어느 누가 인격자라고 자부해서 감히 남의 ‘인성’을 교육하겠다 나선단 말인가? 그 자격이 가장 가혹한 군대 병과를 수료했다고 생기는 걸까? 이런 게 부조리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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