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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Sep 16. 2020

가학을 통한 갱생

유튜브 방송 '가짜 사나이'

‘가짜 사나이’라는 유튜브 방송이 올해 한국 유튜브 최고 흥행작이란 말을 듣고 틀어 봤다.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영상이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다는 사실에. 이건 일종의 익스트림 장르다. 연예인들이 훈련소에 입소하던 공중파 예능 ‘진짜 사나이’를 업그레이드해서 특수 부대 훈련 체험을 기획한 방송인데, 쉴 새 없이 참가자들에게 얼차려를 주고 육체적·정신적으로 부하를 가한다. 실제 특수부대 커리큘럼이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건조하게 표현하면 흔히 말하는 군대 가혹행위다. 설령 특수 부대 훈련이 나름의 취지로 심신의 극한 상황을 연출한다고 쳐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예능’으로 촬영돼 인기를 끌고 일상에서 수용되는 건 차원이 다르다.


대략 일곱여덟 편에 달하는 수십 분짜리 영상이 참가자들을 굴리는 내용으로 가득한데, 댓글 창은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출연자들의 실수와 일탈, 열외를 위한 시도, 그러니까 '뺑끼'와 '민폐'를 성토하는 말로 진지하다. 시청자들이 즐기는 건 결국 그거다. 컴퓨터 의자에 허리를 빼고 앉아서, 침대 장식대에 목을 괴고 누워서, 유튜브 영상을 보는 안락한 자리에서 나락에 떨어져 뒹구는 인간들의 아우성을 구경하는 것이다.


물론 참가자들은 밑바닥 인생이 아니고, 나름대로 유명한 서브컬처 셀럽들이 출연을 자원했다. 영상 제작을 가능케 하고 얼차려를 전시하는 명분이 되겠지만 그런다고 내용물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에 대한 가학을 즐기는 걸 합리화해 주는 거지. 이런 영상이 인기를 끄는 것 까진 그렇다고 하자. 심지어 그 체험에 삶을 바꿀 수 있는 일반론적 ‘교훈’이 있다고 이야기된다면, 폭력과 위력에 대한 경계심은 어디로 가게 될까.


그건 인간성에 대한 야만적 이해와 멀지 않다. 특수부대의 이념이 호국이라면 ‘가짜 사나이’의 주제 의식은 갱생이다. 출연자들은 저마다 자신을 바꾸고 싶어서, 거듭 태어나고 싶어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어서 출연을 결심했다 말한다. 교관들은 얼차려를 주는 와중, 참가자 정신 자세를 꾸짖고 계도하며 무언가 명언 같은 걸 던지고 싶어 한다. 가짜 훈련소에 입소하는 ‘가짜’ 훈련병들이 실제 특수부대처럼 고초를 겪으며 ‘진짜’ 사나이, 어떤 관문을 통과 해 낸 참된 인간으로 거듭 나는 프로세스다.


이건 밑바닥 인간들을 징집해 굴리면서 개조시키려던 삼청 교육대 식 논리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모욕을 주입하면, 그것을 한계치까지 견뎌낸다면 삶과 내면이 바뀐다고 믿는 미신 같은 법칙, 병영 문화의 극단. 이런 대의명분이 위력에 의한 폭력을 믿고 순응해야 하는 규범으로 비튼다. 지금 사회에 넓게 퍼진 관념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그건 강자에 대한 복종심, 타인에 대한 단념, 극도의 자기중심적 인간관 같은 거다. 


이 방송에서 개인이 삽입된 환경, 규칙의 합리성에 대한 의심은 당연히 논외 된다. 가장 가혹한 명령을 가장 착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 '개념인'이 되는 게임이다. 그러는 새 군기 문화와 권위주의, 교관들의 압도적 완력과 강권력, 그러니까 '힘'에 대한 왜곡된 관념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내면화하고 재생산된다면?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유행어가 있다. 흡사 인간 세상에 통달한 현자가 남긴 최후의 깨달음처럼 회자되는 말인데, 이런 라노벨 명대사 같은 말을 어떻게 자기 입으로 소리 내 발음하는지 모르겠다. 이 말이 암시하는 건 타인을 가전기기에 빗대는 사물화다. 망가진 인간은 소통하거나 관계를 회복하려는 미련 없이 폐기하는 게 현명하다는 건데, 뒤집으면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은 인간 이외 취급을 받는 게 응당하겠지. 그게 '인간 개조' 느낌으로 비틀어지면 삼청교육대 식 콘텐츠에 열광하는 군상들이 나올 테고. 그런데 왜 저런 말을 뱉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자 있는 인간일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는 걸까? 왜 자신에게는 타인을 사용하거나 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믿는 걸까? 오직 자신의 시점만 세상에 남긴 채 타인을 규정하는 태도가 참가자 누구는 자세가 됐네, 누구는 정신이 썩어 빠졌네, 혼자만 편해지려 하네 품평회를 벌이는 모습과 아주 어울리지 않나?


이 모든 상황은 자신의 상승 의지를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나태함, 사회 구성원이 될 자격 없음을 혐오하는 것으로 실천되는 이 시대 극우화 된 자기 계발 주의 위에서 피어난다.


요즘엔 유튜브에서 밀리터리 콘텐츠가 피트니스 콘텐츠와 콜라보하며 범취향적 콘텐츠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의미심장하다. 현실에서 도태되어 가는 남성성이 인터넷이란 유사 사회에서 판타지로 재현된다고 할까? 그게 근육질의 남성상과 '군대'라는 대상을 매개물로 거쳐서 나오는 것? 아니할 말로, ‘가짜 사나이’는 약간만 낯선 시선으로 쳐다봐도 웃지 못할 콘텐츠다. 현역 군인도 아닌 민간인들이 국가 권력 자체인 것처럼 같은 민간인에게 위력을 행사하고 나중엔 계급장까지 달아준다. 공식 군 조직이라는 제도적 권위의 결여를 대신 해 주는 것이 특수 부대 출신 교관들의 약력이 주는 권위, 그리고 출연자들이 순종하는 게 마땅해 보이는 그들의 떡 벌어진 근육질 몸이다. 이런 ‘탁월한 남성성’이 저 군대놀이를 의심치 않게 만드는 시각적 권위를 주는 것이다.


군 복무를 고통스러운 차별적 경험으로 혐오하는 이들이 군대 문화의 모진 부분을 증폭한 특수 부대 체험에 심취하는 건 기괴하다. 군대에 얽힌 피해의식만 있고 군대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병영'이란 교집합을 통해 근육질 교관들을 동경하며 자신을 그들 근처에 가져다 놓고 속내를 비빈다. 유튜브는 세상을 더 잘게 쪼개는 미디어 체험을 주고, 그럴수록 사회에 가라앉아 있는 컴컴한 무언가가 비집고 떠오를 틈새는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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