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의 가짜 프로모션
때때로 미야와키 사쿠라는 케이팝 기획사들에게 과연 어떤 존재인지 자문이 들곤 한다. 사쿠라는 일본 아이돌 HKT 48에서 활동하다 한일 합작 오디션 <프로듀스 48>로 케이팝 신에 도착했다. 그 오디션으로 탄생한 그룹 아이즈원을 거쳐 이제는 하이브 소속 신인 걸그룹 르세라핌에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아이즈원을 운영한 CJ도, 하이브도 사쿠라가 지닌 큰 팬덤과 일본에서의 영향력을 이용하되 기회를 주지 않는다. 결국 개별 아이돌이 얻는 ‘분량’에 관한 문제인데, 이건 시시때때로 케이팝 산업의 평화를 깨트리는 뇌관이다. 거기엔 아이돌 개인의 가치와 정체성은 물론, 팬덤의 수요와 기획사의 이해관계, 산업의 어둑한 뒷면이 얽혀 있다.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아이돌 한 명이 분량이 없다고 그렇게 큰 문제입니까? 글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쓸데없는 “연예인 걱정“이다. 하지만 그건 이 산업의 논리를 모르거나 외면하는 사람의 시선이다. 현재 케이팝 산업이 무엇을 바탕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일반적인’ 산업 논리에서 벗어나 있는지 알게 된다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잘라 말해서, 케이팝 산업의 돈벌이 구조는 정상적이지 않다. 이 산업에선 소비자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만큼 구매가 이뤄지지 않는다. 팬덤으로 유입한 소비자를 코어 팬으로 만든 후 필요와 분리된 구매, 필요를 넘어선 중복 구매를 유도하고 지갑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케이팝 음반 판매량은 해마다 수천 만장이 팔릴 만큼 폭증했고, 이제는 여자 아이돌도 음판 100만 장을 파는 시대다. 순전히 글로벌 시장이 넓어진 덕이라고 생각하는가? 그 판매량과 구매자의 숫자는 결코 대응하지 않는다. 충성심 강한 팬덤이 몇 장 씩, 많게는 수십, 수백 장을 구매한 것을 더 해서 나오는 숫자다. 앨범 구매량을 줄 세워 팬 사인회 티켓을 끊고, 팬들은 그룹 성적에 도움이 되고 싶어 자발적으로 다량 구매를 한다. 현재 걸그룹 음판을 견인하는 중국 앨범 공구는 많게는 그룹 당 칠팔십만 장 규모로 팔리는데, 공구 기록을 세우려는 팬덤 간 경쟁 심리로 추동된다. ‘기부 공구’라고 하여 사놓고는 수령하지도 않고 다른 곳에 떠넘기거나 그대로 폐기되는 수량도 있다. 그동안 글을 쓰며 케이팝이 온전한 팬덤 산업이 되었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곧 코어 팬덤의 구매력에 대한 의존성이 커졌고, 아티스트를 향한 애착 감정을 미끼로 수요를 창조한다는 뜻이다. 이 산업에서 가장 마진이 좋은 건 굿즈 세일즈인데 실용성 있는 굿즈는 많지 않다. 올 초엔 하이브가 BTS 멤버가 기획한 잠옷을 무려 119,000원에 내놓았다가 논란이 되었다. 저걸 파는 사람들조차 아이돌 굿즈가 아닌 ‘일반적인’ 잠옷이라면 폴리 소재를 섞어 만든 물건을 저 가격에 사갈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돌의 ‘분량’은 무엇인가? 저 모든 창조된 수요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소비자들의 요구가 향하는 궁극적 수요다. 배정된 ‘분량’에 의해 아이돌이 노출되는 만큼 매력을 보여줄 기회가 생기고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아이돌은 기획사가 자신 하나를 프로모션해 주는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여러 멤버 중에서 기획사가 초이스한 대로만 기회를 얻기 때문에 인기가 있고 찾는 곳이 있어도 경우에 따라 섭외되지 못할 수도 있다. 즉, ‘분량’은 그들의 직업 활동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다. 한편으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더 많이 보고 싶다는 마음, 그가 좀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 팬이라면 누구나 가질 바람을 결정짓는 관건이다. 결국 아이돌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에 돈을 쓰는 것이다. 그건 듣지도 않을 앨범을 사고, 쓰지도 않을 물건을 산다고 온전히 해소되는 욕구가 아니다.
물론 ‘잘 파는’ 순서로 분량을 줄 세운다면 아이돌 인격의 상품화이자 아이돌 문화의 공동체적 요소를 해치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멤버에게 기본적인 기회가 돌아가되, 그를 보고 싶어 하는 팬이 있는 만큼, 그걸 위해 지출하는 소비자가 있는 만큼 어느 정도 ‘분량’이 제공되는 것이 이 가짜 수요로 이루어진 산업에서 수요와 공급이 대응할 수 있는 방식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라. 어떤 아이돌을 보고 싶어 소비를 하는 팬이 많은 데도 다른 멤버만큼도 노출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공정한 사업이며 도덕적인 운영인가? 회사들은 이미 팬들의 그러한 기대심리를 이용해서 마케팅을 하고 돈을 벌고 명예를 쌓고 있다. 이 산업에 걸린 매출 규모는 수천억에 이른다. 그것이 아이돌에 대한 팬덤의 감정 상태를 겨냥하는 마케팅에서 나올 뿐 아니라 소비자 중 일정한 소득원이 없는 일이십 대가 많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미야와키 사쿠라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하이브의 문제점은 단순히 사쿠라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쿠라에 관해 팬들을 기만하고 착취하는 것이 문제다. 르세라핌 프로모션 과정 중 사쿠라는 이 그룹의 센터라고 언론에서 홍보됐다. 한편 사쿠라가 대형 중앙에 서 있는 구도로 찍혀 나온 콘셉트 포토와 티저 영상이 무더기로 나왔다. 사쿠라의 팬들은 아이즈원 시절 허울만 좋은 한일합작에 한국 활동 기회를 박탈 당했던 걸 트라우마로 품고 있다. 하이브의 프로모션은 팬들에게 결핍을 상기시키고 기대감을 품게 하기 충분했다. 사쿠라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고 그가 아이즈원 시절보다 나은 처우를 얻길 바라며 많은 앨범을 샀다. 한편으론 일본인 아이돌이 BTS 회사의 센터가 된다는 화젯거리로 일본에서 사회적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정작 데뷔곡 센터는 다른 멤버였고, 사쿠라는 데뷔 후 이번에 네이버 NOW에 나가기 까지 한국에서 단 한 차례의 개인 활동도 하지 못했다.
사쿠라가 센터를 해야 하거나, 센터가 아니라서 문제란 말이 아니다. 아티스트와 팬들의 신뢰감을 이용하는 회사의 태도를 묻는 것이다. 하이브가 사쿠라를 대하는 방식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앨범 프로모션 기간에는 사쿠라에게 비중이 주어진 듯 팬들의 마음에 바람을 불어넣지만, 정작 숨겨놓은 본 활동에선 어김없이 ‘분량’이 축소돼 있다. 이번 앨범 ‘antifragile’에선 그런 의도에 분칠조차 되어 있지 않다. 컴백을 앞두고 예판이 진행되던 때에는 참가한 시상식 공연과 콘셉트 포토에서 신경을 써 줬다. 사쿠라 중국 팬 공구는 전작보다 두 배 이상 뛰어서 16만 장이 됐고, 그룹 전체 공구 70% 이상이다. 하지만 예판이 거의 끝난 시점에 출연한 케이콘 재팬에선 오랜만에 가진 고국에서의 방송 공연인데도 아무런 역할도 없이 사이드에 있었다.
며칠 전 공개된 뮤직비디오에서는 1분이 지나도록 얼굴 정면이 나오는 개인 컷이 단 하나고 1초 정도 나온다. 무대에서는 동선과 대형마저 불리해 그냥 안 보인다. 예컨대, 홍은채와 똑같은 파트를 1절, 2절 나눠서 부르는 데도 홍은채는 대형 중앙에서 부르고 사쿠라는 대형 끝에서 부른다. 그나마 있는 파트를 대부분 노래 후반에 넣어놓아서 1절이 끝날 때까지 보이지가 않는다. 별 생각 없이 보면 4인조 그룹처럼 보일 정도다. 다섯 명 밖에 되지 않는 그룹이라 파트를 긁어모으면 숫자로 나오는 분량은 제로가 아니겠지만 그건 허상이다. 파트가 있어도 뮤비와 무대에선 잘 보이지 않도록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뮤비와 무대가 공개된 직후 국내외 팬덤은 분노했다. 당연한 일이다. 평소 이런저런 영상 콘텐츠를 관찰하고 글을 써 본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저 뮤비와 무대를 만든 사람들이 사쿠라의 존재를 지우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사쿠라에게 단순히 신경을 쓰지 않은 부작위의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다. 여러 단계의 의논과 지시, 계획을 치밀하게 거치지 않고는 저런 흉흉한 구성이 나올 수가 없다. 게다가 무대가 공개된 쇼케이스 당일 올라온 멤버 별 직캠은 사쿠라 것만 조명이 어둡게 처리돼 잘 보이지 않고 엔딩 장면에서 사쿠라만 개인 샷을 주지 않았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계속해서 저런 방향의 사건만 겹친다면 과연 우연인지 의심스럽다.
이건 파트가 많고 적고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파트 그대로 가되 동선과 배치만 다른 멤버들과 균형을 맞췄어도 존재가 지워지는 느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하이브의 태도는 사쿠라가 가진 팬덤과 인지도를 취하되 팬덤을 더 얻어 성장할 기회는 주지 않겠다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그룹의 서사를 여성들의 ‘성장’과 ‘도전’으로 정해놓고 ‘걸 크러쉬’ 콘셉트를 팔고 있고, 사쿠라에게 “세카이” 같은 속 보이는 가사를 뱉게 하며 마치 세계무대로 도전하는 일본 대표처럼 꾸미고 있는 걸 떠올리면 가증스럽다. 그렇게 무대와 뮤비에서 감추고 싶다면 애초에 왜 영입을 했는가? 아니, 영입을 해 놓고 왜 이런 식으로 대하는가? 음반 예판은 끝났으니 팬들 반발 따위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룹 세일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지금도 두 번째 앨범 만에 이런 꼴을 당하는데, 그룹이 더 성장해서 사쿠라 개인의 세일즈 비중이 줄어든 이후에는 대체 어떤 취급을 할 것인가.
하이브 같은 거대 기획사 앞에서 걸그룹 멤버 하나, 그의 팬덤 하나는 아주 작은 존재일 것이다. 르세라핌 팬덤 전체로 봐도 사쿠라 팬덤이 나머지 네 명의 팬덤을 합친 것보다 클 수는 없다. 어쩌면 하이브는 다수의 목소리 앞에 소수의 목소리가 ‘악개’, 악성 개인 팬 취급을 당하며 묻힐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저 ‘악개’란 단어의 오용이야 말로 한국 팬덤 문화의 골 병든 환부라고 생각한다. 집단을 구성하는 개인에게 부당한 일이 생긴다면 실제로 부당한지 아닌지 따져 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 문제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악개’로 규정하는 건 도착적인 낙인찍기이자 집단에 개인을 종속시키는 집단주의다. 하나의 그룹과 팬덤은 집단에 소속된 개인들의 합을 넘어 각자의 권익을 존중하는 동시에 절충해 나가며 공존하는 공동체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올 팬’, 그룹 전체의 팬덤이라 자부하며 멤버 개인에 관한 이해관계를 주장하는 팬을 ‘악개’라고 욕한다. 정말로 그들이 그룹 전부의 팬이라면 멤버 하나하나의 처우에 함께 관심을 가지는 것이 옳다.
사쿠라는 얼마 전 공개된 르세라핌 다큐 영상에서 차라리 자신의 파트가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다고 말했다. 팬들은 이 말로 미루어 사쿠라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겠지만, 있는 파트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게 처리해 버린 하이브의 처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티스트가 뱉은 심경이 그런 걸 합리화하는 데 쓰여서도 안 된다. 르세라핌은 여성 아이돌의 야망과 성장을 가사로 표현하는 '걸크러쉬' 콘셉트를 팔고 있는데, 왜 꿈을 꾸고 싶어 한국에 다시 와 연습생부터 새로 시작한 사쿠라에게만 성장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가? 왜 실체 없는 프로모션이 남용되었다 사라지는가? 정말로 악한 것은 누구인가? 문제에 분노하는 팬들인가? 아니면 문제를 만들고 그들에게 상처를 준 기획사인가? 말할 가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