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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Oct 28. 2022

가짜 입소문

바이럴로 가공하는 걸그룹 산업의 대중성

지난 21일 카카오 엔터테인먼트가 페이스북 페이지 ‘아이돌 연구소’ 실제 소유주라는 기사가 나왔다(JTBC, ‘[단독] 카카오엔터, 저작권침해 온상 '아이돌연구소' 페이지 실제 소유주’). ‘아이돌 연구소’는 케이팝 관련 콘텐츠를 올리는 페이지로서 팔로워가 130만 명이 넘는다. 기사에선 해당 페이지가 언론 방송사 저작권을 침해해 왔다는 점이 추궁되었지만, 좀 더 의미심장하게 읽은 대목은 카카오 엔터가 “'아이돌 연구소' 페이지를 자사 콘텐트 마케팅 활용 등을 위해 인수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산하 뮤직 마케팅팀에서 '아이돌 연구소' SNS를 관리해왔다”는 전언이다. “바이럴 마케팅을 하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를 인수한 뒤 이를 운영”했다고 한다. 구글 웹 페이지에서 검색해 보면, 해당 페이지에는 카카오 엔터 산하 레이블 소속 특정 걸 그룹에 관한 게시물이 여타 회사들 걸 그룹에 관한 게시물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올라온 게 확인된다. 즉, 이 뉴스는 본연의 보도 취지와 별개로, 케이팝 신에서 공공연히 의심되던 ‘아이돌 바이럴’의 존재를 확인해 준 셈이다.


요즘 아이돌 커뮤니티에서 자주 뱉어지고 눈에 띄는 단어는 ‘실체’다. 어떤 그룹은 언론 플레이만 요란하지 까 보면 ‘실체’가 없다, 이 그룹이야 말로 진짜 대세 그룹이며 ‘실체’를 가지고 있다… 이런 어법이 유행하는 건 뒤집어서 아이돌 그룹이 너나 할 것 없이 ‘실체’가 보편적으로 부족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뜻이다. 이는 케이팝 산업에서 해외 시장은 커지고 국내 시장은 축소되고 있는 데서 오는 괴리감의 반영이다. 음반 판매량은 연거푸 천장을 뚫고 솟구치지만 내 주변에서 아이돌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이 괴리감을 채우며 나도는 것이 어떤 아이돌이 대세라는 느낌을 주는 뉴스와 입소문이고, 기획사들의 조직적 ‘바이럴’이란 의심을 산다.


재미있게도 이런 양상에 빠져 있는 건 보이그룹보다 걸그룹이다. 쉽게 생각해서, 보이그룹은 훨씬 ‘실체’가 두텁다. 이들은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도 일정 규모 이상 고정적 팬덤 시장이 있다. 굳이 여기저기 홍보하거나 전파와 지면을 타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보고 소비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 점이 보이그룹 신이 오래전부터 팬덤 산업으로 폐쇄화되고 ‘대중성’이 일찌감치 벗겨진 배경이다. 걸그룹은 국내 팬덤 시장이 훨씬 비좁다. 오히려 한때 성장한 팬덤 시장은 갈수록 축소돼 인기 그룹도 공개 방송 참여 인원 미달이 나는 경우가 잦다. 부족한 파이를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대중성’이다. 그것이 광고, 행사 섭외와 IP 사업의 밑천이 되고, 케이팝 종주국의 ‘대세’라는 휘장을 걸치면 계속 커져가는 해외 시장에서 팬덤을 모을 수 있는 이미지 자본이 된다. 즉, 해외는 팬덤 지향, 국내는 ‘대중성’ 지향의 투 트랙으로 가는 것이 걸그룹 산업의 동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중 매체가 분해되며 더는 ‘대중성’이 존재하기 힘든 시대이기에 음원 성적 같은 보편적 지표, 미디어를 아우르는 ‘바이럴’을 재료로 ‘유사 대중성’을 창조하는 것이다.      


모든 업계에서 바이럴 마케팅이 성행하지만 아이돌은 일반적 상품과 뿌리부터 다르다. 핸드폰과 오디오 기기처럼 수치화된 스펙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실사용을 통해 일정한 성능 값이 체감되는 것도 아니다. 아이돌 멤버 하나하나로부터 춤, 노래, 뮤직 비디오, 자체 콘텐츠, 앨범, 굿즈, 방송 출연 등 무수한 파생 상품이 나온다. 외모와 품성 같은 인격의 단면, '케미스트리'라 불리는 관계의 연출마저 상품 가치를 이룬다. 객관적 평가 잣대가 없고 주관이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소지가 크다. 아이돌은 그 어떤 상품보다 입 소문에 좌우될 수 있고 취약한 면이 있다. 남들 같은 일상을 사는 ‘인간’에게 포장지를 씌우는 사업이기에 그들의 과거와 언행에 대한 평판, 연애 같은 프라이버시가 언제든 그룹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프라이버시를 포획하는 촬영 기기가 넘쳐 나고 SNS 거미줄로 아차 하는 사이 소문이 번져 나가는 시대에 케이팝처럼 외부 요인에 취약한 산업도 드물 것이다. 이 점이 포화된 걸그룹 시장에서 경쟁 그룹의 평판을 저해하는 ‘역 바이럴’의 동기가 된다. ‘더쿠’와 ‘네이트 판’  같은 연예 커뮤니티에서 매일 같이 논란 글이 ‘핫게’로 가서 댓글을 모으고 외부로 퍼져 나가는 것이 그와 무관할 리 없다.      


바이럴이 업계에 퍼져 있다고 가정하고 논지를 풀었지만, 그렇다면 바이럴은 정말로 효과가 있을까? 없는 대중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역설적으로 대중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람들이 아이돌에 관해 모르기 때문에 통하는 것이다. 십 년 전 이십 년 전처럼 몇몇 그룹이 대중적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상황이라면, 사람들이 누가 인기가 있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허상으로 대세를 만들 수가 없다. 지금은 아이돌에 관심 있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관심의 공백, 인지의 빈 터를 점유할 수 있다. 이러저러한 지표를 들이밀고 간드러진 찬양 글을 입을 모아 매일 같이 뿌려 대면 “그래? 그런가 보구나” 수긍할 수 있다. 이런 ‘입소문’이 페이스북 페이지, 트위터, 아이돌 커뮤니티, 유튜브, 일반 커뮤니티, 언론 매체를 성공적으로 순회하면 작은 문화 현상이나 여론을 창조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팔로워 130만짜리 페이스북 페이지를 인수한 거대 엔터 기업이 유튜브나 SNS에 그에 준하는 마케팅 기지를 가지고 있다고 짐작한다면 무리한 추론은 아닐 것이다.  

    

이 산업에서 실체란 말이 강조될수록 허상은 커져 간다. 허상을 퍼트리며 실체를 가공하는 것이 걸그룹 산업의 매뉴얼이 되었다고 하면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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