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휴에 걸그룹 뉴진스에 관한 사건이 두 가지 있었다. 멤버 다니엘이 팬 소통 애플리케이션 ‘포닝’에서 구정을 “chinese new year”이라고 표현했다 사과문을 올렸고, 뉴진스가 소속된 하이브 산하 어도어 레이블 민희진 대표의 씨네 21 인터뷰가 화제를 불렀다. 해당 인터뷰는 뉴진스의 기획자로서 민희진 대표의 생각을 풀어내는 자리였는데, 그중 몇몇 단락이 구설수에 올랐다. 세계관과 주체적 아이돌 같은 개념, 노래 구성 방식 등 여타 케이팝 그룹의 노선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것이 타 기획사와 그룹에 대한 존중 없는 태도란 반응이 나왔고, 뉴진스 성공에 하이브 자본이 미친 영향을 자평하며 평가 절하한 것에 반론이 나왔다.
chinese new year는 중국의 춘절을 가리키는 말로 음력 설날, 한국의 구정에 대응하는 영어 식 표현으로 통용되고 있다. 해외뿐 아니라 한국 기업과 유명인들도 저 말을 썼던 전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니엘은 호주에서 태어나 한국과 호주에서 체류하며 자랐고 영어 문화권의 언어 관습이 익숙할 것이다. 해당 표현은 글로벌 팬들과 영어로 소통을 하다가 나온 말로 보이며 다른 의도가 있었을 리 없다. 이미 해외에서 통용되던 표현이므로 저 말 때문에 한국의 명절이 중국 것으로 오도되었을 리도 없다. 굳이 문제의 소지를 찾자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아이돌이 명절을 ‘chinese’란 말로 표현한 데서 오는 여론의 괴리감이나 언짢음 정도일 텐데, 이것이 사과문까지 올릴 정도의 도덕적 잘못인진 의문이 든다.
이 해프닝에서 눈에 띄는 건 논란이 생긴 지 몇 시간 만에 사과문이 나왔고, 회사 명의가 아닌 다니엘 개인 명의로 올라왔다는 점이다. 이건 그동안의 어도어 레이블의 행보에 비추면 낯설게 느껴진다. 뉴진스 데뷔 당시 ‘Cookie’ 가사에 성적 메시지가 있다는 논란이 생겼을 때 어도어는 장문의 반론으로 대응했고, 그 후 발표된 ‘OMG’ MV에는 의미심장하게도 그룹 콘텐츠를 비판하는 이들을 트위터 악플러에 빗대는 장면이 있었다. 어도어가 보여준 강단 있는 태도를 생각하면 이 정도 성질의 사안에 이토록 빠르게 사과한 건 어색해 보인다. 물론 비즈니스 논리로선 모순이 아니겠지만, 외국에서 살다 온 미성년자 아이돌에게 한국 정서 상 논란이 될 수 있는 사항을 가르쳐 주지 못한 회사의 관리 책임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멤버 명의의 사과문이 적절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민희진 대표의 인터뷰를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표현이 보인다. 뉴진스와 자신을 묶어서 “우리”라고 호명하고, 자신에 관한 추측, 비판에 “오해”란 표현을 반복적으로 쓰고, “기준 없는 비판” “과몰입” “망령”이란 표현까지 나온다. 그중 눈길을 끄는 건 자신을 영화감독에 비유한 대목이다. 민희진 대표가 지나치게 전면에 나선다, 콘텐츠에 제작자의 자아가 과도하게 투영돼 있다는 일각의 평가에 대한 대답이다. 뉴진스 멤버들을 디렉션을 받아 연기하는 배우에 비유하고, 어도어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설립한 레이블이란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볼 때, 아이돌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쏟는 업계의 관습과 달리 뉴진스의 주체는 아이돌뿐 아니라 기획자이기도 하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 같다.
사실 민희진 대표가 완전히 새로운 포지션을 취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아이돌이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란 걸 누구나 알고 있고, 스타 제작자가 주목받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산업적 차원에서 케이팝의 정체성은 오디션과 트레이닝, 콘텐츠 제작과 프로모션 등 다양한 층위의 분업 과정을 거쳐 아이돌이 ‘조립’되는 기획사 시스템에 있다. 그럼에도 아이돌이 케이팝의 주인공으로 호명되는 건 이 산업이 그런 종류의 환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떤 거치대 없이 홀로 하늘에 뜬 별이 되어야 아이돌을 향한 동경심이 재생산되고 이 산업이 매력적인 것이 된다. 아이돌을 ‘인형’이나 ‘꼭두각시’라고 폄하하는 시선을 부정해야 아티스트로서의 존재 가치가 방어된다. 익숙한 관행이 된 아이돌의 작사 작곡 참여도 그들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존재란 걸 증명하기 위한 퍼포먼스다. 회사가 자작곡 콘셉트를 ‘기획’ 해 주면 아이돌이 창작자들 도움을 받아 노래를 만드는 아이러니한 주체성이 구현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팬덤이 애착감정을 품는 대상은 시스템이나 기획자가 아니라 아이돌이다. 민희진 대표는 자신을 영화감독에 비유했지만, 케이팝은 연출된 텍스트가 아니라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성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나머지 모든 콘텐츠는 그것을 위해 존재하거나 그로부터 파생되는 것에 가깝다. 이런 관습 속에서 기획자가 적극적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성을 넘어 기획자와 팬덤의 관계성을 추구하는 건 낯선 광경임에 틀림없다. 아이돌과의 애착감정에 집중하고 싶은 이들에겐 방해를 받는단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영화가 인격이 없는 텍스트이고 영화 속 배역과 배우의 실제 삶이 구분된다면, 아이돌은 인격을 가진 존재이며 그들이 전시하는 모습은 그들의 실존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감독이 영화에 자의식을 투영하는 것과 기획자가 아이돌에게 투영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렇게 재현된 자의식이 기획자의 것인지 아이돌의 것인지 식별이 모호해진다. “감독의 자아가 영화에 투영돼서 문제란 말은 없지 않으냐”라고 반문하기는 쉽지만, 현실적으론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뉴진스는 물론 다른 모든 아이돌도 기획에 의해 탄생한 존재다. 민희진 대표에게 새로운 부분이 있다면, 아이돌을 제작하는 시스템을 넘어 기획자 개인의 존재를 적극 드러내고, 자신의 영향력이 시스템이나 그 시스템이 조달해 주는 자본의 힘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점에 있다. 시스템에 대한 기획자의 독립성과 주체성을 강조하고, 아이돌과 자신의 비전을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작가주의적 기획자’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씨네 21 인터뷰를 읽어 보면 그가 20년 동안 이 산업에 종사하며 품은 깊은 문제의식과 방향성이 있고 그것을 뉴진스에게 집약하여 재현하고 있단 걸 알 수 있다. 민희진 대표에 대한 일각의 거부반응은 케이팝 산업의 기존 관습에 의거한 기획자에 대한 이해와 민희진 자신이 제시하는 기획자에 대한 관점이 충돌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민희진 대표에게 문제가 있다면 단순히 기획자의 자의식 과잉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자체는 새로운 역할 모델로 볼 수도 있다. 요는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수행되느냐다.
뉴진스를 지켜보면, 콘텐츠 제작자들의 말과 생각이 묘하게 가수들의 존재로 오버랩되면서 서로의 자리가 바뀌는 순간들이 있다. 민희진 대표는 이번 인터뷰는 물론 비애티튜드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추측과 오해의 대상이 되는 것에 일관된 불만을 표출했는데, 우연하게도 ‘OMG’ MV 감독 인터뷰에서도 ‘뉴진스 멤버들이 겪을 세상의 오해와 억측에 관해 시나리오를 썼다’라는 말이 나오고 그것이 ‘뉴진스 멤버’들의 입장으로 전치돼 있다. 실제로 MV 마지막 컷에는 그런 오해를 낳는 악플러들에 대한 풍자가 연출돼 있는데, 멤버들이 겪을 오해를 생각했다면서 정작 거기 나온 악플 내용은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다. 민희진 대표는 MV 감독에게 창작의 전권을 위임했다고 알려져 있고, 이것이 해당 장면이 민희진 대표와 무관하단 증거로 회자된다. 민희진 대표는 뉴진스의 히트곡에 관해선 “모든 작업물은 최종 결정권자의 결정에 따라 스타일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선택과 결정의 무게감이 상당하다.”라고 말하지만, 그 영향력이 왜 유독 민감한 쟁점이 들어간 결과물과는 분리되는 건지 의아하다.
문제는 기획자의 존재감이 강조되고 있지만 기획자의 책임이 필요한 순간엔 아이돌 뒤로 물러나 버리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들이다. 기획자가 응답할 몫이지만 민감한 반응이 따라올 수 있는 메시지가 아이돌의 MV와 아이돌 개인의 사과문으로 언표된다. 그룹을 총괄하는 기획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이라면 외국에서 살다 온 아이돌이 구정을 해외 관습에 따라 표현해 생긴 논란에는 회사 명의로 입장문을 내거나 미성년자 아이돌을 돌보는 회사의 역할을 언급하는 정도의 책임감도 보여 줘야 한다. 이상적인 기획사가 아이돌의 주체성을 받쳐주는 지지대인 동시에 비를 막아주는 우산이 되는 것이라면, 현재 뉴진스는 주체성은 기획자에게 있고 가수들이 우산 역할을 한다는 인상이 들 때가 있다.
지금껏 민희진 대표가 한 장문의 인터뷰 몇 편을 읽어 보면 케이팝 산업의 기성 관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어떤 균형 감각을 통해 객관화되지 않은 말과 말, 말과 행동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엿보인다. 자신을 향한 비판엔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타 기획사나 그룹을 향한 비판으로 보일 수 있는 말은 직설적으로 뱉는다. 세상이 쉽게 뱉는 말에 거부감을 드러내지만, 계속해서 전면에 등장하며 세상의 말을 부르고 있다. 기획자로서 지닌 영향력을 피력하지만, 그 영향력은 경우에 따라 보이지 않거나 책임의식과 교환되지 않는다. 뉴진스는 이 이상 잘 되기 힘들 만큼 성공을 거둔 신인 그룹이고 앞으로도 성공을 이어갈 것이라 본다. 다만, 민희진 대표가 자신에 관한 오해들과 화해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기획자의 노선을 정당하게 걸어가고 싶다면 저 혼란스러운 충돌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