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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r 03. 2023

'마약'에 대한 공론

배우 유아인의 마약 스캔들이 눈덩이처럼 굴러간다. 이번 주엔 프로포폴, 대마에 더해 코카인과 케타민도 양성 반응이 나왔다고 밝혀졌다. 유아인 스캔들은 언론을 통해 수사 진행 상황이 보도되는 양상과 맞물려 가십에 불이 붙었다. 프로포폴과 대마 복용 사실이 쟁점이 된 와중, “제3의 마약”도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수수께끼 같은 키워드가 던져졌다. 이것이 일종의 ‘티저 이미지’로 발표되면서 사람들 호기심을 달구었고, 코카인 양성 반응 단독 보도가 뜨며 클라이맥스가 연출됐다. 


유아인처럼 코카인 같은 경성 마약을 포함해 다양한 약물 복용이 혐의에 오른 연예인은 드물다. 더구나, 그동안 유아인이 걸은 행보와 맞물려 사태의 매듭이 얽혔다. 유아인은 사회 비판적 발언으로 수차례 언론 지상에 오른 인물이다. 지난 이태원 참사에 관해 쓴 글처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한 발언도 있었지만, 큰 틀에선 유명인이 지닌 발언권으로 도덕적 입지를 구성해 어떤 세태를 꾸짖는 양상이었다(다른 유명인의 마약 복용 사실을 빈정댄 적도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행보가 넷 페미니스트들과 온라인에서 설전을 벌인 일이었고, 유아인은 이 일로 일부 젊은 남성들의 지지를 얻었다. 한 유명인의 사회적 행적에 도덕적 카르마가 역습을 가하는 모양새가 나왔고, 그의 지지자들은 이 점 때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당혹스러운 것 같다.


하지만, 이 사태를 도덕성의 파산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마약에 대한 법리적·도덕적 판단은 간단하지 않다. 마약은 대표적인 피해자 없는 범죄다. 즉,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를 국가가 형벌로 처벌해야 하느냐는 물음이 나온다. 마약 복용으로 망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삶인데, 그렇다면 자해 행위도 처벌해야 하겠는가? 마약을 복용해 심신 미약 상태에서 이차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을 지목할 수 있겠지만, 음주 운전은 처벌할 수 있어도 음주 행위를 처벌할 수는 없다.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끝까지 추구하는 입장에선 마약 복용을 형사 처벌하는 것에 반대하는 결론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프랑스 극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마약 복용 혐의에 대한 변론으로 남겼다고 알려진 유명한 말이다.


반대로, 사회에 대한 개인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에선 다른 결론이 나올 것이다. 마약 복용을 규제하지 않으면 중독자가 양산될 수 있고 사회 유지에 지장이 생긴다.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선 어떤 방식으로든 규제가 들어가야 하는 건 틀림없다. 대마초 같은 연성 마약, 소프트 드럭의 경우는 비범죄화, 나아가 합법화를 시도한 국가들이 있지만, 코카인 같은 경성 마약 소지를 방관하는 경우는 훨씬 드물다. 한편으론 마약 복용이 정말로 개인의 자유이기만 한지 반문할 수 있다. 경성 마약은 중독성이 강하다. 시작은 자유의사의 발로일 수 있어도,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게 된다면 더 이상 자유가 아니다. 마약에 대한 의존성을 이용해 약을 공급하고 타인을 지배하는 사례는 현실에 널려 있다.


개인의 마약 복용을 처벌해선 안 되는 논리와 그에 대한 반론을 각각 구성해 봤지만, 그럼에도 반박되지 않는 사실이 남는다. 이것을 범죄로 규정하더라도 피해자가 있는 범죄와 죄질의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마약 복용자는 자신을 파괴하지만, 마약상은 타인을 파괴하는 덫을 뿌린다. 마약의 중독성이 개인의 자유의지를 박탈하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마약 복용자는 스스로에 대해 피해자인 면도 있다. 마약 사범 처벌을 넘어, 마약 유통 근절과 예방 정책, 중독자 재활에 더 큰 강조점이 찍히는 것이 이치에 맞다. 최근 일정 분량 이하 마약 소지를 합법화한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마약 담당 장관은 ‘약물 복용은 범죄가 아니라 보건의 문제’라고 주장했는데, 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마약이 다루어지는 덴 편향이 강하다. 마약 공급보다 마약 사범에 더 큰 주목과 도덕적 낙인이 가해지고, 유명인의 마약 스캔들을 통해 일회성 가십으로 소비된다.


한편으론, 사법 처벌과 별도의 논의로서, 마약 사범에 대한 도덕적 비난의 성질을 논할 수 있다. 실정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한다고 강제되는 규칙이고 약속이다. 이것을 어긴 다면 그 자체로 비난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도덕은 법보다 큰 개념이다. 범죄로 처벌받지 않더라도 타인과 공공선을 해치는 행위가 있다면 마약 복용은 이보다 큰 잘못일까? 가치 판단 체계는 개별 행위들에 대한 상대적 평가를 포함하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물음이다. 나는 골방에서 코카인 가루를 비강으로 들이키는 것보다 인터넷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선동하는 글을 쓰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유아인을 변호하는 이들은 마약 복용에 대한 사법적·도덕적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개인의 자유를 확보하자는 입장에서 논리를 펼치지 않는다. 유아인이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 놨는지, 얼마나 배우로서 입지가 좋은지 강변하며 “그래봐야 평생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그래봐야 얼마 안 가 연예계에 복귀할 것이다.”라고 희망사항을 객관적 관측처럼 표현한다. 이처럼 사회적 가치에 대해 세속적 성공을 우위에 두며 가치판단을 대신하고 묵살하는 멘탈리티는 이미 사회 저변에 널리 퍼져 있다. 유명인이나 정치인 팬덤이 그들의 우상을 비판 여론으로부터 보위하려는 익숙한 태도다. 마약에 관한 뉴스로 세상이 떠들썩하지만, 마약에 관한 실질적 관점들은 통째로 새어 나가고 축적되는 논의가 없다. 유아인 스캔들은 이 사회 공론의 좌표가 부유하는 것을 넘어 점멸하며 사라지고 있음을 펼쳐 보여주는 한 편의 풍속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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