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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Feb 23. 2024

정체기에 빠진 시장

하이브 빌리프랩 걸그룹 아일릿

내달 3월 25일엔 하이브 새 걸그룹 아일릿이 데뷔한다. 아일릿은 하이브와 JTBC가 제작한 오디션 방송 ‘알유넥스트’를 통해 데뷔조가 가려졌다. 하이브가 선보인 르세라핌, 뉴진스의 뒤를 잇는 그룹으로서 “하이브 막내딸”이란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관계도를 그려보면 아일릿은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이다. 역시 오디션 방송을 통해 데뷔한 엔하이픈과 한 솥밥을 먹는 ‘남매 그룹’이라고 봐야 한다.


아일릿은 성공할 수 있을까? 대형 기획사의 새 그룹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다. 신호등에 청색 불은 켜져 있지 않다. 화제성이 낮다. 아일릿의 모체인 ‘알유넥스트’는 소수점 자리 시청률과 함께 조용하게 시작했다 적막하게 막을 내렸다. 보이그룹은 오디션 방송이 흥행하지 않아도 방송을 통해 코어 팬덤을 다수 확보할 수 있다. 걸그룹은 팬덤 파이가 적은 만큼 보다 많은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는 확장성이 필요하다. 미리 개설된 유튜브 채널엔 자체 콘텐츠가 올라오고 있지만 구독자 수와 영상 조회수 모두 저조하다.


아일릿의 전망이 밝지 못한 본질적인 요인은 현재 걸그룹 시장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일이 년 간 케이팝 신에는 걸그룹 시대가 다시 열렸었다. 주요 기획사의 소위 ‘4세대’ 신인 그룹이 동시 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와 화제와 유행을 일으키고 파이를 키운 결과다. 뉴진스·아이브·르세라핌 모두 데뷔 이삼 년 차를 넘어가면서 신선함이 빠지고 열기가 식고 있다. 아일릿은 신인 걸그룹 대열과 동 떨어진 애매한 시기에 나오게 생겼다. 시장 경쟁의 특수는 끝났다. 이미 자리를 잡고 파이를 나눠 먹는 팀이 몇 팀이나 된다.


케이팝의 위기?


지난해 문화 면 뉴스의 표제 중 하나는 ‘케이팝의 위기’였다. 이 말은 정확하게 고쳐 써야 한다. ‘케이팝의 위기’라기보다는 ‘걸그룹의 위기’다. 위기론의 주요 근거는 코어 팬덤에 갇혀 확장성이 적은 소비자 구성과 일부 매출 지표의 하락이다. 구체적으로는 작년 후반기부터 이어진 초동음판(앨범 발매 후 첫 일주일 판매량) 하락 현상이다. 중국 시장 ‘역성장’과 함께 주요 그룹들 초동 음판이 큰 폭으로 꺾이면서 엔터 주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동남아 시장 음반 수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케이팝 전체 매출은 여전히 증가세다. 특히 보이그룹은 중국 같은 일부 시장에서 매출이 줄어들어도, 그걸 상쇄하거나 견뎌 내고도 남을 만큼 글로벌 팬덤이 크고 단단하다. 반면 걸그룹은 보이그룹 보다 중국 공구 의존도가 높다. 걸그룹 초동 백만 장 시대 역시 중국 공구 덕에 열렸다. 최근의 초동 판매량 감소의 데미지는 걸그룹 시장에 쏠려 있다. 보이그룹 스트레이키즈는 초동 90만 장이 하락해도 여전히 370만 장이나 팔지만, 에스파는 170만 장이 113만 장으로 무너져 내렸다.


혹자들은 케이팝 위기론을 부정한다. 케이팝은 이미 충분히 성장했고, 일부 지표의 하락을 감안해도 해외 시장이 확장되면서 몇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시장이 커졌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바로 그 성장세, 비틀어 표현하면 일정 부분 ‘과도한’ 성장세에 있다. 지난 시기 케이팝 산업의 대중성 지표와 음판 지표는 산업 내부 정세에 의해 부양된 면이 있다. 앞서 말했듯, 신인 걸그룹이 포화되며 경쟁이 과열됐다. 초동 음판 및 국내 음원 순위가 각각 팬덤 세일즈와 대중성을 대표하는 수치로서 그룹 활동의 성패를 나타내는 지표가 돼 버렸다. 이는 특정 그룹이 치고 나가서 성적을 내면 다른 그룹들이 숨 가쁘게 합류하는 양상으로 전개됐다. 그로 인해 전체적인 지표가 인플레이션을 맞은 것이다. 인플레를 따라잡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돼 혼자 낙오하는 모양새에 굴러 떨어진다. 상호 경쟁에 의한 경기 부양 효과도 있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성적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압박감이 시장에 조성된 것이다.


재작년 여름, 에스파가 초동 백만 장을 돌파하자 직전까지 이삼십 만장, 오십 만장에 머물던 다른 그룹들도 구십만 장, 백만 장을 돌파하는 경이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에스파의 백만 장 동력은 압도적인 중국 공구였는데, 공구 규모가 에스파에 훨씬 못 미치는 그룹들이 말이다. 그 결과 걸그룹 음판 백만 장 시대가 열렸지만, 음판과 연결되는 투어 공연 매출 등의 지표 역시 그 정도로 상승했는지 의문이 크다. 이런 경쟁 과열이 빚은 증폭 현상은 국내 음원 성적이나 바이럴 홍보 경쟁에도 적용이 되는 원리다. 현재 걸그룹 신이 케이팝 산업의 부분적 후퇴를 덮어쓴 것은 그간의 급격한 지표 상승의 반작용인 측면이 있고, 호황에 낀 거품이 빠지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


정체기에 빠진 걸그룹 시장


지난 시기 걸그룹 붐이 일어나며 “보이그룹은 왜 사람들이 모를까” 같은 자조 섞인 비교도 있었지만, 걸그룹 산업의 기반은 취약하다. 보이그룹의 알파와 오메가는 코어 팬덤이요 걸그룹의 강점은 음원과 바이럴을 매개체로 한 대중성 세일즈에 있다. 그 대중성이 신인 걸그룹 시대 개막과 함께 트렌드를 이뤘었고 보이 그룹들 역시 그에 영감을 받아 대중성을 도모하기 시작했다. ‘이지 리스닝’으로 노선을 틀어 국내 음원 차트를 공략하고 <나나 투어> 같은 메이저 방송 출연을 기획했다. 하지만 대중성 매체의 종언이 언도된 시대에 대중성이란 개념은 근본적으로 허깨비에 가깝다. 멜론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고무된 세븐틴이 다음 스텝으로 밟은 <나나 투어>가 허망하게 쪽박을 찬 것을 봐도 그렇다.

대중성의 흐름을 이루는 트렌드는 유동성이 강해 왔다가도 사라진다. 걸그룹 시장도 과거에 비해 팬덤 세일즈 기반으로 재구성되었지만, 걸그룹 팬덤은 충성도 강한 보이 그룹 팬덤과 달리 국내외 막론하고 여러 그룹을 함께 응원하는 ‘잡덕’ 성향이 강하다. 일관된 구매력을 제공하는 소비자층이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이번 주 있었던 르세라핌 컴백 쇼케이스 참석자는 남성 팬이 80퍼센트나 됐고 여성 팬덤 이탈이 관측 됐다고 한다. 이 역시 국내 케이팝 시장을 움직이는 여성 팬들이 걸그룹 붐과 함께 시장에 유입했다가, 걸그룹 트렌드가 식고 메이저 기획사에서 신인 보이그룹들이 데뷔하며 자연스레 빠져나간 증거처럼 보인다.


현재 걸그룹 시장은 보이는 대로만 판단할 수 없으며 호황이라고 한 마디로 규정하기도 힘들다. 확실한 것은 걸그룹 시장은 일종의 정체기, 고점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흐름에 접어들었다. 물론 큰 폭으로 꺾이는 정도의 치명적 하락세는 아닐지라도 말이다. 올 해는 아일릿뿐 아니라 YG의 신인 걸그룹 두 팀의 활동이 예상된다. 이미 데뷔한 베이비 몬스터와 더 블랙 레이블이 론칭할 신인 걸그룹이다. 이들이 새로운 흐름을 뭉쳐내 산업에 다시금 모멘텀을 줄 수 있을지 어디 한 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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