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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y 15. 2024

아름다움의 공식

민희진, 뉴진스


나는 뉴진스의 콘텐츠가 미적으로 탁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뉴진스를 폄하하는 말이 아니라, 케이팝 업계가 이룬 평균적 성취를 존중하는 말이다. 케이팝 기획사들은 콘텐츠 제작 인력과 자원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어서 창작물 퀄리티가 그렇게 차이가 날 수가 없다. 이른바 중소 기획사 걸그룹들 노래와 뮤직 비디오를 살펴보면 케이팝의 퀄리티가 굉장히 상향평준화 됐다는 소감이 든다. 스타일을 보더라도 역사라고 할 만한 게 있는 대형 기획사들은 자신들의 무늬와 색깔을 가지고 있다. 다만, 케이팝은 제작 공정의 정형화 수준이 높은 산업이고 산업 전체가 함께 쓰는 매뉴얼이 있는데, 뉴진스는 거기서 의식적으로 벗어나려는 고집이 출산한 아이들이다. 민희진 자신의 표현을 가져오면 케이팝의 "공식"을 깨트리려는 시도다. 


뉴진스의 아트웤과 영상물을 보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동시대 케이팝 콘텐츠와 좀 결이 다르다는 인상이 든다. 그건 소위 4세대 그룹에서 확립된 '걸크러시'라는 공식의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 도착한 목적지다. 그 내용물은 새롭고 진보적이고 아름다울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아트웤과 영상 이미지 곳곳에서 과거 일본 문화와 해외 영화에서 빌려 온 레퍼런스가 오려 붙여진 걸 확인할 수 있고, 그렇게 반골 기질을 발휘했음에도 뉴진스는 아이러니하게도 걸그룹의 가장 오래되고 통념적인 이미지에 웅크려 있다. 순수하고 청순하고 미성숙한 소녀들의 초상이다. 뉴진스를 어텐션 이후로 죽 지켜봤다면 사실은 이 그룹의 '미감'이 그렇게까지 구석구석 세련된 것은 아니고 여성향 보다 남성향에 가깝단 걸 알 수 있다. 멤버들한테 입혀 놓는 옷이 무대 의상이나 사복이나 촌스럽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 무슨 돌고래인가 하는 감독이 만든 뮤직 비디오들은 표현 방식에 치기가 있고 이상하게 교훈적 메세지를 집어넣으려고 해서 나는 차라리 다른 감독이 만든 어텐션 같은 뮤직 비디오를 괜찮게 봤다. 감독이 예술 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 게 보이는데, 그러면 직접 영화를 찍으면 되지 왜 아이돌 뮤직 비디오에 자의식을 쏟아붓는지 모르겠다.


자컨 역시 재미없기로 소문났다. 하니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내성적인 성격과 잘 불이 붙지 않는 멤버 간 케미스트리 때문이다(뉴진스는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국내 팬덤이 큰 그룹이 아닌데 자컨이 그 원인 중 하나일 듯). 뉴진스 멤버들은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조용하고 나이를 감안해도 지나치게 미숙해 보인다. 이건 이 그룹의 콘셉트를 감싼 새하얀 수동성과 조응하는 상태다. 케이팝에 형성된 '공식'으로부터 탈주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걸크러시 그룹들이 여성의 주체성과 자기애를 피력하고 따라서 진취적인 태도로 미래를 향해 달려간다면 뉴진스는 기다림과 그리움의 정서를 진열하고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 노스탤지어를 자아낸다. 뉴진스는 멤버들 음색과 창법이 획일화돼서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고 멤버들의 캐릭터도 약하다. 한 명의 작가가 만든 작품으로서 고도의 완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튀어나온 개개인의 개성을 대패로 밀어낸 것처럼 보인다. 뉴진스 멤버들이 민희진의 인형이란 비아냥을 들어왔고, 어린 멤버들을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많았던 건 당연한 일이다. 민희진을 향해 제기된 젠더적 비판이 OMG 뮤직 비디오에서 '정신병자들의 불편함'으로 묘사된 걸 떠올려도 민희진을 무슨 개저씨 슬레이어나 페미니스트 투사처럼 찬양하는 분위기가 수긍이 안 간다. 아니, 최근까지도 정 반대 성향으로 그룹을 운영하던 사람을 갑자기 그런 이미지로 미화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이번에 공개된 버블검 뮤비는 이상과 같은 특징이 반복된 작품이라서 이렇다 하게 반응할만한 지점이 없다. '영포티' 혹은 '엑스 세대' 남성분들이 '민희진의 미감'을 찬양하면서 방시혁의 부족한 재능과 '열폭'을 꾸짖는 모습이 보인다. 가장 트렌디한 아이돌을 알아보고 즐긴다고 과시하며 '신세대'로 영생하고 싶어 하는 '쉰세대'의 욕망일까, '내 안의 개저씨'를 타자화해서 비난하려는 심리일까. 실은 뉴진스의 콘셉트가 중장년 남성들 향수와 취향에 꼭 들어맞는 분위기이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민희진(과 뉴진스) 대 개저씨(와 그들이 만든 그룹) 집단의 구도로 상황을 규정하며 아름답지 못한 것을 향해 열등함과 추악함을 비난하듯 침을 뱉는 것도 같다. 나는 윤리와 심미는 한 몸이라고 믿어왔다. 심미의 윤리화가 아름다운 것의 위계를 가르고 미추를 선악의 문제로 규정하는 태도라면, 나는 윤리의 심미화가 필요하다고 믿으며 아름다움이 옳고 그름에 대한 질문과 책임 의식으로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뉴진스에 걸린 성취도 결핍도, 윤리적 쟁점도 모두 있는 그대로 현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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