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리턴> 소고
대학 새내기 시절이다. 난 늘 동아리 방에 늦은 시각까지 상주했었다. 낮 동안 분주하던 공간이 고요해지면, 고작 몇 평이나마 그곳을 독점하는 게 좋았다. 소파에 누워 영화를 보고, 촬영감독처럼 16미리 카메라로 장난을 치다, 펜을 잡고 맘 가는 대로 끼적였다. 난 그런 것들이 좋았다. 영화 동아리 회원이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특권이랄까. 수북이 책장에 들어선 비디오 테이프들, <클락 워크 오렌지>, <상계동 올림픽>, <어머니 당신의 아들>, <철남 데쯔오>, <감각의 제국> 무삭제판… 그곳엔 제법 레어한 영화들이 비치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즐겨 봤던 건 기타노 다케시 <키즈 리턴>. 예전도 지금도 영화를 섭렵하는 나의 카테고리는 넓은 편이 아니다. 작가와 작가, 장르와 장르의 경계를 옮겨 다니는 건 왠지 모를 모험처럼 느껴졌다. 대신 지하철 정거장에서 무모한 헌팅을 감행케 만드는 여자처럼, 단박에 꽂히는 영화들이 있었다. <키즈 리턴>이 정확히 그런 영화였다.
늦은 밤, 홀로 동방의 적막을 즐길 때면 습관처럼 <키즈리턴>을 비디오 데크에 집어넣었다. 뽀얗게 사골을 우려내듯, 매 장면 장면을 빤하게도 눈에 담고 새겼다. 주인공이 운동 후 식당에 들러 라멘에 맥주를 곁들이는 장면이 반복됐었는데, 그게 왜 그리도 운치 있어 보였던 건지. 혼자만의 <키즈 리턴> 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무슨 예비동작을 취하듯 학교 앞 중국집 금룡에 전화를 걸었다. "짬뽕에 군만두, 맥주 한 병요." 주인공과 겸상이라도 하듯 후루룩 거리며 모니터와 눈을 맞췄다. 어쩌면 내 추루한 젊음의 단면을 그렇게나마 영화 속 장면(Scene)에 욱여넣고픈 웃지 못할 제의였을지 모른다.
<키즈 리턴>이 그토록 특별했던 건 분명 내가 아직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어렸기 때문이리라. 아직도 기억한다. 동방 한구석에 표구된 채 방치돼 있던 빛바랜 포스터를. "바보.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그 말은 무엇보다 큰 위안이자 잠언처럼 느껴졌다. 고향을 떠나 비좁은 하숙집 독방에서 막 사회를 향해 걸음마를 시작했던, 어느 것 하나 정도 재미도 붙이지 못한 채, 학사경고를 스트레이트로 두 잔이나 꺾고도 학과에 적응하지 못했던 내 스무 살. 그 못난 게으름과 정신적 영양실조의 나날들. 마음에 품은 여자에게 다가서는 법도, 짓궂고 고약한 이들에게 대거리하는 법도 모른 채, 냉가슴만 앓던 소심하고 변변찮던 젊음. 때 마침 따라나서기 시작한 데모를 제외하곤, 어느 것 하나 진지하지 못했던 그 모든 부적응과 무기력, 방종의 시간들. 난 그 시간들을 변명해 주고 토닥이고 싶었다. 바보. 나는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돌아보면, 어린 날의 치기란 바보들을 위한 퀴즈 같은 거다. 답을 알기 전엔 무진 머리를 굴려도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알고 나면 너무나 단순해 쓴웃음만 나오는 난센스 퀴즈. 그 시절, 나는 흔들리고 아파하고 세상의 지면 위를 공회전했다. 물론 이젠 그 퀴즈의 해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그 방황이란 건 코웃음이 절로 발사될 만큼 하잘 것 없고 족보도 없는 니힐리즘이었다. 스무 살은 영속의 시간. 나는 이제 막 젊음을 시작했었고, 그 스무 살의 시간들은 결코 소진되지 않을 화수분 같았다. 너무 많은 생각은 어느 하나도 제대로 생각지 못하게 만든다. 너무 많은 시간은 시간의 그 무엇도 제대로 실감치 못하게 한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건 무엇을 시작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란 뜻. 젊음, 내게 주어진 유일한 과잉을 마음껏 낭비하고 싶었던 걸까.
군대에 다녀온 후 나는 동아리 방에 발길을 끊었다. <키즈 리턴>을 마지막으로 본 게 정확히 언제쯤이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흘러간 영화는 돌아와도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스무 살의 <키즈 리턴>이 애상이 아닌 아늑한 노스탤지어로 다가 올 그때는 언제일까. 잿빛 톤이 감도는 대학 초년생 시절의 동아리 방처럼, 하릴없이 <키즈 리턴>이 떠오르는 늦은 자정의 덩그런 소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