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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Oct 25. 2024

인간 경시의 보고서

하이브 업계 동향 리뷰 문서 공개

나는 하이브란 회사에 거는 기대가 없다. 이 회사가 내거는 도덕적 미사여구의 슬로건을 믿지 않는다. ‘선한 영향력’이 케이팝을 상징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아이돌이 국내외 팬들과 만나는 활동을 통해 기쁨과 위로를 안겨 주는 건 틀림없다. 하지만, 산업을 이끄는 기획사들이 사회적 가치를 정직하게 지향하거나 내면화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저들이 팬들을 대하는 태도나 아이돌의 이미지를 전시하는 방향이 그렇다. 케이팝 기획사들에게 최우선 가치는 윤리가 아니라 이윤이다.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체로서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들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 내서 파는 게 아니다. 인간을 상품으로 육성해 장사를 하고, 인간의 마음을 주무르며 구매를 유도한다. 우상과 군중 사이 끈끈한 감정의 밀착을 통해 성립하는 팬덤 산업의 본성이다. 음반과 공연 같은 콘텐츠 중심의 서구 음악 산업과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경계다. 케이팝은 인간을 다루는 산업이다. 이 짧은 정의 안에는 섬세하고 불안정하고 파괴적인 복잡계가 도사리고 있다. 케이팝 기획사들은 그 복잡함을 앞에 두고 고뇌하는 책임감이 없다. 하이브가 종종 비판받던 지점도 거기에 있다. 그들은 인간을 경시하고 돈에 맹종하는 경로로 달려왔다. 과도하게 책정된 굿즈와 공연 티켓 가격, 원칙 없는 개별 아이돌 멤버 처우, 팬덤의 바람은 무시되고 방시혁 의장의 취향과 욕망이 우선시 되는 듯한 그룹 운영, 여성 팬의 속옷 검사까지 실시하는 반인권적 행태가 논란이 돼 왔다.


그런 사례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며칠 전 뜬 뉴스는 두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 10월 24일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하이브 내부 문건이다. 아이돌 외모 평가와 비인격적 표현이 폭로되어 논란을 일으켰다. 아티스트의 인격과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내용이다.


“멤버들이 한창 못 생길 나이에 우르르 데뷔를 시켜놔서” “성형이 너무 심했음” “좀 놀랍게 아무도 안 예쁨” “다른 멤버들은 놀랄 만큼 못 생겼음” 알려진 문건 내용 일부다. 하이브 측은 이것이 “하이브의 의견이나 공식적 판단은 아니”며, “온라인에 들어온 많은 글을 모으고 종합한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팬과 업계가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 및 케이팝 전반에 대해 어떤 여론을 갖고 있는지 매우 주의 깊게 보고 있다 “는 설명이다. 온라인에선 해당 문건의 작성자로 강명석 위버스 매거진 편집장이 지목됐다. 지난 5월 경 민희진 측이 하이브에 보낸 메일이 공개되며 강명석이 하이브에서 매주 내부 회람 되는 ‘업계 동향 리뷰’를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공개된 문건의 문장들은 단순히 인터넷 의견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글쓴이의 주관과 평가를 표현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해당 내용들에 케이팝 팬들의 여론을 모니터링한 결과가 담겨 있는 건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 된 해명이 아니다. 왜 하필 아이돌의 외모를 품평하는 ”여론“을 확인해야 하는 것이며 왜 그토록 원색적인 막말이 보고서에 오른 건지 궁금하다. 그들은 그것이 ”여론“이라고 말한다. 아이돌의 외모를 칭찬하거나 저마다 선호도를 밝히는 정도는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여론에 속한다. 그런 부분을 파악하는 게 그룹 운영의 방침을 정하고 새로운 그룹을 기획하는 데 참고가 될 수는 있다. ‘성형이 심하다’ ‘놀랄 만큼 못 생겼다’는 아이돌 외모를 물건처럼 저울질하며 비하하는 것이고, 팬덤 사이에서조차 금기로 통하는 경멸적 표현이다. 그런 여론들이 모여 있는 곳은 음지에서도 가장 밑바닥인 디씨 인사이드 걸스 플래닛 갤러리와 남자 연예인 갤러리 정도다.


쓰레기 같은 악플들이 기획사 임원들이 확인을 해야 하는 ”여론“일까? 저 천박하고 교양 없는 문장들이 ”업계 동향“ 씩이나 돼서 ”매우 주의 깊게“ 볼 가치가 있는 얘기일까?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어떠한 가치를 지향하는 회사라면 아이돌의 생김새를 헐뜯고 모욕하고 줄 세우며 인간을 사물화하는 여론은 여론으로 대접하지 않고 배제해야 한다. 케이팝은 인간을 다루는 산업이기에 인간을 향한 악의가 늘 수면 아래에 고여 있다. 기획사의 의무는 악의가 부상하지 않도록 억누르고, 다수 팬덤이 악의에 휘둘리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다. 내부에서 기밀처럼 작성 돼 돌려 보는 ‘고급 보고서’가 이 수준이라면, 거기에 회사 내부자들의 관심사와 사고방식과 내면이 반영 돼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어떻게 존엄할 수 있을까. 케이팝이 외모에 대한 왜곡되고 서열화된 관점을 퍼트린다는 비판을 받는 건 퍽 당연한 일 아닐까?


이것이 하이브 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구분 짓는 건 오히려 문제를 축소하는 것이다. 기획사들이 특정 케이팝 커뮤니티나 앞서 언급한 디씨 아이돌 갤러리에서 바이럴 게시물을 작성하고, 경쟁 회사 아이돌을 음해한다는 정황 증거는 꾸준히 있었다. 이번 사건은 업계 1위 기획사에서 내부적으로 오가는 문건이 공식적으로 밝혀진 일이다. 언제부턴가 케이팝은 인간의 외면은 물론 존재에 위계를 세우는 마케팅 언어에 잠식돼 왔다. '완성형' '궁극의' '끝판왕' "~는 신이에요" 같은 거대한 어휘들이 꾸밈말의 일상어가 된 산업, 외모의 우월함을 존재 가치의 우월함으로 직결하는 찬사가 장마철 빗줄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산업이 케이팝이다. 하이브를 향한 비판의 초점은 놓치지 않되, 이 산업의 보편적 내면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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