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 긴급 라이브 방송
뉴진스의 라이브 방송을 보면서 놀라움을 넘어 충격에 가까운 당혹감을 느꼈다. 어떻게 이토록 민감한 분쟁에 아이돌이 이토록 전면에 나서 직설적인 말들을 뱉을 수 있을까. 지난 몇 달간 이어진 사태는 하이브와 민희진의 싸움이었다. 기획사 경영진과 소속 레이블 대표 사이 경영권과 주주 간 계약에 관한 분쟁이다. 어도어 레이블 이사진이 교체되고 민희진이 대표에서 해임된 것 역시 그 결정의 타당함을 떠나 회사 운영에 관한 문제다. 레이블 소속 가수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해도 그들이 분쟁의 당사자가 되는 건 아니다. 아이돌이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을 발표한 전례들은 존재하지만, 회사와 자신들 간의 계약이 아니라 회사 임원들 간의 분쟁에 입장을 밝힌 사례는 없었다. 뉴진스는 당사자로서 나선 것이 아니라 당사자처럼 발언하기 위해 분쟁에 스스로를 밀어 넣어 연루시킨 것에 가깝다.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측은 자신이 뉴진스의 라이브를 사주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뉴진스를 말렸지만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본인들이 아무 말 안 하는 것은 이상하다는 판단에 멤버들이 독자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뉴진스 멤버들이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과 민희진의 애착 관계는 끈끈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멤버들의 독단이라고 보기도 자연스럽지 않다. 민희진은 뉴진스가 이해 당사자로서 행동했다고 하지만, 정작 라이브 방송의 요점은 민희진 자신을 복권시키라는 것으로 수렴한다. 가수가 전속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선 회사 측에 불만을 전달하고 2주의 보정 기간을 주게 되어 있는데, 뉴진스가 25일까지 조치를 취하라 통보한 것은 하이브와의 계약 해지를 위한 수순이라 보는 의견이 많다. 타당한 해석이라 생각한다.
이런 추측을 뱉는 건 왠지 불경하게 느껴진다. 멤버들이 조그만 입을 들썩이며 피력한 말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뉴진스가 얼굴을 내밀고 입장 발표를 할 때 생기는 효과다. 비판해서는 안 되는 것, 긍정하거나 보듬어야만 하는 당사자들의 육성이 되어서 그들이 지키려는 사람에게 강력한 방패와 총검이 되어 준다. 하지만 순수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당사자가 아닌 뉴진스 멤버들이 경영권 분쟁의 최전선에 나와 발화에 대한 여파를 직접 받아내야 하는 말을 뱉고야 말았다는 뜻이다.
뉴진스가 “중요한 이해 당사자”라는 말은 그들이 사태에 관한 하나의 주체로서 떨쳐 일어났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그들의 라이브 방송을 귀 담아 들으면 자신들을 객체로 규정한 채 발언하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 케어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 적임자는 민희진과 기존 스태프뿐이며 하이브와 어도어 새 대표는 부적합하다고 호소한다. 이는 민희진이 자신을 뉴진스의 좋은 보호자요 방시혁을 나쁜 보호자로 지목한 드라마의 속편이다. 친엄마와 양부모, 콩쥐와 팥쥐. 뉴진스는 동 세대 모든 아이돌 중 주체로서의 존재 개념이 가장 약한 팀이다. 다른 그룹과 달리 아이돌이 아닌 기획자 민희진이 그룹의 얼굴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은 전례 없이 과격한 방식으로 회사 운영에 주체로 개입한 순간조차 객체로서 발언하고 있다.
아이돌의 주체적 존재론은 케이팝 산업의 유구한 테마다. 케이팝 아이돌의 특징은 기획형 가수다. 아이돌을 육성하고 관리하는 기획사 시스템과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그건 아이돌을 “꼭두각시”나 “예쁜 인형”이라고 비웃는 외부의 시선과 조응한다. 케이팝의 역사는 이 비난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해 온 역사다. 혹은 자신의 한계를 혐오하며 넘어서려 한 역사다. 산업이 진화함에 따라 아이돌의 주체성이 적극적으로 구성되어 왔다. 그렇게 탄생한 아웃라이어들이 스스로 음악을 만들고 자유롭게 처신하는 아티스트형 아이돌이다. 이 희귀종들은 아이돌을 음악과 기획에 일정 부분 참여 시키고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는 방식으로 제도화되었다.
완전한 주체로서의 아이돌, 활동에 관한 자결권을 행사하는 아이돌은 예외이거나 환상에 가깝다. 지금처럼 케이팝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아이돌의 정체성이 복잡해져 분업 시스템이 고도화된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민희진은 케이팝 팬덤이 암묵적으로 소비하던 이 환상에 정면으로 찬물을 끼얹어 온 인물이다. 그는 주체로서의 아이돌에 회의적이며 ‘아티스트’란 호칭에 “씁쓸함”을 표현했다(씨네 21, [인터뷰] 민희진 어도어 대표 ② "K팝 산업의 고질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시도한 것들은..."). 그에게 뉴진스 멤버들은 “배우는 단계의 학생들과 다름없다”. 기존 케이팝 산업의 주체론이 환상에 빠져 있다면 민희진의 입장은 단순화된 현실론에 고착돼 있다. 작곡가와 MV 감독, 기획자와 마찬가지로 아이돌 역시 기획사 분업 시스템의 참여자다. 무대와 카메라 앞에 서고 팬들과 소통하는 특정한 시공에서, 배우는 존재를 넘어 자신의 역할을 담당하는 어엿한 전문가다. 기획 시스템의 모든 요소가 집대성되어 그것을 제 육체와 이미지로 표현하는 마스터 피스이기도 하다.
민희진이 뉴진스를 통해 보여준 기획자 모델의 핵심은 그동안 배후에 있던 기획자가 그룹의 주체이자 브랜드를 자임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모델은 하이브와의 분쟁을 거치며 위계질서를 품은 가족주의 멜로드라마로 퇴행했다. 민희진은 뉴진스의 “엄마”가 되었고, 뉴진스는 민희진의 “내 새끼들”이 되었다. 그들을 대표하는 스토리 텔링이 콩쥐팥쥐라는 ‘전래동화’인 사실은 저 모델이 어느 역사적 시간대로 돌아가 있는지 잘 알려준다. 이 관계성 속에서 뉴진스가 주체로 설 수 있는 여백은 지워져 있다. 뉴진스 멤버들이 라이브 방송에서 “민희진 대표님을 괴롭히지 말라”라고 호소한 것은 “내 새끼들”이 “엄마”를 지키기 위해 나선 상황이고, 주체와 객체의 지위·책임이 뒤집히고 일그러진 순간이다.
묘하게도 방시혁과 민희진의 아이돌 주체론은 정확히 끝과 끝에서 마주 본다. 방시혁이 손대는 하이브 레이블 아이돌들은 다른 어떤 그룹보다 주체성을 강조하는 콘셉트를 공유한다. 이 지루한 분쟁에서 뉴진스의 상대 배역을 맡은 르세라핌이 그렇다. 진정성, 자전적, 고유의 서사… 이 그룹을 소개하는 단어들이다. 이런 캐치프라이즈는 실제로는 시스템을 초월한 개인성이 발휘될 수 없는 아이돌 그룹 운영에 관한 진실을 가릴 수 있다. 기획자들이 관장하고 책임져야 할 사항들과 아이돌의 역할과 책임 사이 경계가 겉보기에 불투명해진다. 기획과 운영이 빚은 논란이 마치 아이돌의 주체적 선택에 의한 결과처럼 호도될 수 있고, 아이돌이 책임의 주체가 되어 비난의 표적이 될 수 있다. 하이브와 민희진의 분쟁에서, 르세라핌 팬들이 회사가 그룹을 방패로 쓰고 있다고 트럭 시위로 항의한 사실 역시 그런 부조리와 연결돼 있다.
뉴진스든 르세라핌이든, 아이돌의 주체성이 강조되든 그렇지 않든, 아이돌은 주체와 객체의 지위를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오간다. 방시혁과 민희진은 케이팝 아이돌의 왜곡된 지위를 양 극단에서 펼쳐 보이며 오월동주 해 왔다. 너는 누구의 편인지 묻는 양분된 담론과 여론 속에서, 케이팝 아이돌의 주체성은 여전히 괄호 쳐진 채 비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