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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Dec 12. 2015

윤리적 일탈의 공모

영화 <이웃 사람>의 폭행 신

https://www.youtube.com/watch?v=XC7W8qXQRkg


폭력을 재현하는 영화의 딜레마는 가학의 욕망과 재현의 윤리의 긴장관계다. 가학적 이미지에 대한 관음증적 욕망은 인간 내면의 뿌리 깊은 욕구다. 한편 인간은 타인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고 소비할 때 반사적인 죄의식을 느낀다. 폭력/고통 이미지는 가능한 선별하고 절제하거나, 우회하고 소거하여 재현될 초자아적 압력을 받는다. 많은 영화가 이 딜레마를 처리하는 방법은 피학 주체를 동정할 가치 없는 도덕적 악의 심급에 붙박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핏물이 폭포수처럼 터지는 타란티노 영화를 보면서 조금도 뒤숭숭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연쇄 살인 강간범(<데스 프루프>)이거나 파쇼 도당(<바스터즈>), 백인 노예상(<장고>)이니까. 이렇듯 폭력의 대상이 분노해 마땅한 악한일 수록 오히려 카타르시스는 배가된다. 어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윤리적 검열 기제를 교묘히 우회하고 비틀면서 내밀한 욕망을 건드린다.


2012년 개봉한 영화 <이웃사람>이 그렇다. 이 영화는 조폭 역을 맡은 마동석이 김성균을 개 잡듯이 린치하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이 흉포한 재현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통쾌한 웃음을 끌어내는 건 김성균의 정체가 연쇄 살인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관객에겐 이 정보가 제공돼있지만, 영화 속 마동석은 그를 모르는 상태다. 즉 액면 상으로 조폭이 살인마를 폭행하는,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처단하는 자경단식 활극이지만, 디제시스 안에서 마동석의 폭력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는 정의로운 사명감으로 악인을 응징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은 '이웃 사람'을 두들겨 패는 중이다. 이 장면은 잔혹한 폭력을 저지르는 위험 인물이 더 큰 사적 폭력 앞에 여지없이 왜소해지는 기묘한 해방감을 제공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윤리적 자기 검열을 해제할 알리바이를 상납하며, 일상에서 억눌린 소시민적 폭력의 충동과 판타지를 대리 만족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관객은 때때로 재현의 윤리를 일탈하고 용인하는 공모자의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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