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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Feb 14. 2016

자의식의 글쓰기

정성일의 글솜씨 

정성일의 글은 강점과 약점이 굉장히 뚜렷한 글이다. 여기서 말하는 '글'이란 정성일이 쓰는 영화비평의 완성도가 아니라, 영화비평을 쓰는 정성일의 글솜씨를 가리킨다. 


동어반복이 많고, 빙글빙글 에둘러 표현하는 경우가 많으며, 어떻게 봐도 논지가 명료한 글쓰기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 이게 꼭 못쓴 글을 뜻하는지는 의문이다. 그 스스로 밝히듯 독자에게 사유의 노력을 촉구하는 전략적 난해함이니까. 그 전략이 과연 성공하느냐는 다른 문제지만.) 유럽어 번역투 문체에, 글쟁이치곤 비문이 너무 많다. (이게 제일 크리티컬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대목에선 사실은 본인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잃어 곤혹스러운 게 아닌가 의심이 들 때도 있다. (나는 정성일의 글을 좋아하는 편이고 남들 못지않게 많이 읽었는데, 그가 쓴 장평은 완전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보통 6~70% 정도는 요점을 알아듣고, 2~30프로는 긴가민가하고, 나머지는 아예 소통이 안된다;)


정성일의 비평은 어지간한 수필을 비웃을 정도로 자의식이 철철 흘러넘친다. 구도자로서의 시네필, 첫사랑에 빠진 소년 같은 영화를 향한 춘정, 비평적 저지선을 홀로 사수한다는 사명감, 영화 엘리트로서의 시퍼런 자의식. 이런 장식적 정념을 날 것 그대로 목도하는 것은 당연히 불편한 일이다. 정성일에 대한 ‘호불호’는 이 대목에서 크게 갈릴 테지만, 반대로 정성일의 큰 장점과도 맥이 통한다.


정성일의 최대 장점은 '스타일'이다. 정성일의 글엔 누구나 한 눈에 "아 정성일이구나"라고  알아볼 수 있는 인장이 박혀 있다. 자신이 쓰는 글마다 굉장히 높은 빈도로 출현하는 특정 표현들이 있다. ("처음에 한 말의 반복" "같은 말의 다른 판본" "먼저 좋은 소식, 다음 나쁜 소식" "아무리 그래 봐야 실패할 것이다." 등등) 저 표현들은 보편적 관용구가 아니라 정성일만 쓰는 관용구다. 어감이 멋스럽고, 한 편의 글 안에서 배치되는 맥락이 번번이 성공적이란 인상이 든다. 비평 또한 하나의 창작 작업이며, 작가의 큰 덕목이 개성이란 걸 떠올리면 중요한 평가 사항이다.


그가 스타일리스트라는 또 다른 증거는 단락을 주물러 극적 구조를 형성하는데 능하고, 비언어적 기호를 재치 있게 구사한다는 점이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여기서 무서운 것은 이 말의 용법에 있다. (...)하면, 영원히 괄호 안의 그것이다" 같은 문장.) 글의 첫 문장과 끝 문장이 호응하는 대구 구조도 잘 쓰고, 점진적으로 논지를 고양하다가 느닷없이 결론을 내는 수법도 잘 쓴다. 이럴 때 독자는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든다. 이런 글은 읽기에만 좋은 걸 넘어 보기에도 즐겁고, 보기에만 좋은 걸 넘어 인상적으로 논지를 파급한다.


그의 글에서 범람하는 자의식의 다른 얼굴은, 통렬함과 비장함, 독자를 향한 선동이다. 문장 표면에서 반짝거리는 서정성의 윤기도 그렇거니와, 그것이 유머감각으로 발현될 때도 많다. (이건 흔치 않은 미덕이다.) 주어 없음의 서술이 만연하고, 1인칭 주어를 3인칭 주어로 대치하며 객관성의 잔영 속으로 화자의 존재를 숨겨버리는 공적 글쓰기 풍토에서, 정성일처럼 주어 ‘나’를 서슴지 않고 남발하는 문필가는 드물 것이다. 이런 자신감이 그가 과감한 글쓰기 스타일을 시도하고 구현할 수 있었던 근감임에 틀림없다.


정성일의 글이 표준적 의미에서 '좋은 글'이냐 하면 의문의 소지가 많다. 확실히, "이렇게 글을 쓰면 된다"라고 누군가에게 교과서로 보여줄 글은 아닐 테니까. 정성일의 글은 그만큼 모나고 불균형한 구석이 있다. 다만, 그 매력과 개성만큼은 대단한 글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문장가 고종석도 "정성일은 특급 글쟁이"라고 트위터에서 평한 적 있거니와 (물론 고종석의 말이 객관적 진리를 담보하는 건 아니고, 고종석은 친분이 있는 글쟁이일수록 터무니없이  치켜세우는 편향이 있다.) 90년대에 정성일과 공식 지면에서 논쟁을 벌인 한 문화 평론가도 "대단한 스타일리스트라고 생각"한다며 치사한 적이 있다.


정성일이 '글을 못 쓴다'라고 절하하는 독자들이 있는 이유는 알겠다. 그러나 '못 쓴다'라고 치부하기  어불성설일 만큼, 정성일은 특정 국면에서의 완성도가 대단히 높은 글쟁이다. 아마도 이것이 정성일의 글쓰기에 매료돼 무턱대고 따라 쓰는 씨네필이 양산된 이유일 테다. 그런 글들이 읽는 이에게 민망함을 안겨주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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