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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y 10. 2016

천만 영화에 관한 미신

천만영화는 사회현상이 아니다

천만 영화가 사회현상이라는 건 오래된 미신이다. 2012년 이후 한국 관람 시장에는, 외국영화와 한국영화를 합쳐 11편의 천만 영화가 나타났다. 천만에 근접한 구백만 영화는 4편이다. 4년 동안 1년에 4번꼴로 사회현상, 준사회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그것도 여름·겨울 극장가 성수기에 무더기로 말이다. 천만이란 숫자는 더 이상 미스터리도 집단 무의식의 표출도 아니다. 여러 가지 변수로 해명할 수 있는 정례화된 산업적 현상일 따름이다. 거대한 흥행의 불꽃이 터질 때마다 허다한 사회적 원인 분석이 개진되지만, 현재 한국영화는 산업적 문맥과 좌표 위에 있다.


산업이 흑자로 돌아선 2012년 이후 한국 영화산업의 근황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하나, 산업 규모의 증대다. 총 관객 수와 영화 산업 매출액은 2011년 대비 2012년 큰 폭으로 뛰었고 4년 간 꾸준히 증가하여 2억 관객과 2조 원을 넘었다. 둘, 스크린 독과점 심화다. 해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2015년 할리우드의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2016년 충무로의 <검사 외전>이 각각 1800개 스크린을 사이좋게 먹어치웠다. 마지막, 한국영화 제작비 증가 추세다.


2015년 영화산업 성적표를 들춰보자. 먼저, 총 관객 수와 극장 매출액·산업 매출액은 전년에 이어 늘었지만, 한국영화 투자 수익률은 오히려 추락했다. 2014년 0.3%에서 -7.2%로 떨어졌고 2012년 이후 4년 만의 적자다. 다음으로, 외국영화와 다양성 영화가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지분의 증가세를 안정화했다. 외국영화 관객 수는 1억 4백만 명으로 전년의 1억 7백만 명에 이어 1억 고지를 사수했다. 전통적으로 외국영화는 영화산업이 침체기일 때 한국영화에 대한 반사 이익을 얻어 점유율을 높였지만, 지금은 활황임에도 몇몇 대작에 의존하는 한국영화보다 탄탄한 점유율을 차지한다. 다양성 영화 관객 또한 2013년 3백7십만 명에서 다음 해 천사백만 명으로 급증한 후 올 해도 8백만 명을 유치했다. 다양성 영화는 소위 아트하우스 무비와 한 패로 묶어볼 수 있을 텐데, 둘을 상영하는 멀티플렉스 플랫폼 CGV 아트하우스는 한국 배급사 중 5위의 실적을 올렸다. 메이저 배급사 롯데엔터테이먼트에 불과 관객 점유율 0.3%를 뒤졌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블록버스터로 분류되는 총 제작비 80억 이상의 한국 영화가 13편에서 19편으로 크게 늘었다.


이상의 지표가 무엇을 말할까. 우선, 확장된 산업 규모가 안정화됐다. 2012년 급격한 호황의 파도를 탄 후 언제 다시 충무로 거리에 불이 꺼질지 알 수 없다는 신중론이 고개를 들었지만, 적어도 수치적이고 외형적으로 산업은 비가역적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최근 논란이 되며 원성을 산 CGV의 좌석 차등제 시행 또한, 예상 가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떠나가지 않을 거란, 혹은 못할 거란 든든한 계산이 뒷받침돼 있을 거다.


하지만 말했듯이 이것은 수치적이고 외형적인 호황이다. 2014년에도 2015년에도 한국영화 1억 관객의 상당수를 성수기 텐트폴 무비, <명량>과 <국제시장>, <암살>과 <베테랑> 같은 천만 영화가 떠받쳤다. 전체 수익구도 또한 부익부·빈익빈이다. 작년에 제작비 80억 이상의 대작들만 26.1%의 평균 수익률을 챙겼고, 그 아래 모든 구간의 영화가 평균 수익률 마이너스였다. 부의 규모는 고래등 기와집 같이 쌓였지만, 소수의 시장 참여자가 그 기와집의 주인이다. 분배효과는 피라미드 밑바닥으로 흘러내리지 않으며, 몇 편의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독과점이 불균형을 수호한다. 재벌 중심의 한국 시장경제 구조가 영화산업 안에 그대로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을 순환 관계로 잇는 바늘구멍은 바로 제작비 증가 추세다. 소수의 대작이 시장을 견인하는 구조가 고착되어가는 상황이다. ‘산업 내적·외적 요인으로 관객이 늘었다 → 기대이익이 커지며 제작비도 늘었다 →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스크린을 몰아준다 → 이렇게 흥행한 영화가 사회현상으로 회자되며 이슈와 관객을 부른다 → 흥행 최고구간을 경신한다 → 다시 제작비가 는다.’ 이 순환 도식이 반복되고 현상화된 것이 천만 영화 정례화라는 사태다.


이런 악순환은 관객 취향의 분단과 획일화를 부르는 한편 그에 의해 강화된다. 2012년부터 관객 수가 늘어난 직접적 요인은 40·50 관객의 관람 시장 유입이다. 제작사는 더 많은 관객을 더 쉽게 모을 수 있는 상투적 흥행코드를 재탕한다. 그에 따라 질 낮고 진부한데다 유치한 내면을 가진 영화가 창궐한다. 2014년부터 충무로 영화의 획일화와 저질화를 냉소하는 여론이 만연했다. 대략 이 시기부터 할리우드 영화와 다양성 영화·아트하우스 무비 시장이 성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한국 영화산업은, 전자에는 새로움을 후자에는 다양성을 ‘외주’하는 모양새로, 구태한 콘텐츠를 찍어내는 자폐적 구조를 고착하고 있다(과연 그것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다양성 같은 가치를 추구하느냔 둘째 치고). 나이 든 관객층이 메인 소비자가 되면서 할리우드 영화에는 젊은 관객들이, 다양성 영화·아트하우스 무비에는 취향의 획일화에 저항하는 자의식을 지닌 관객들이 모이는 것 같다.


이 악순환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구조적으로는 제작비 증가 추세를 지양하고 제작비와 흥행 양 면으로 산업의 중간 벨트를 두텁게 다져야 한다. 한편, 악순환에 시멘트를 붓고 있는 수직계열화 스튜디오 시스템에 균열을 뚫고 연출가의 개성과 재량권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확보해야 한다. 두 가지 관전 포인트가 있다. 재작년부터의 흥행 양극화 현상이 멈칫하며 작년 후반기엔 <사도> <검은 사제들> <내부자들> 같은 500만~800만 라인의 중간 벨트가 부활했다는 사실이다. 올해엔 작가적 색채를 고수해 온 김지운과 박찬욱이 길었던 할리우드 여정을 뒤로 하고 귀환한다. <밀정>과 <아가씨>가 흥행하여 현재의 관람 지형 속에서도 상업성과 작가성이 만날 수 있음을 성공적으로 보여준다면, 관객과 스튜디오가 전향적으로 반응하는 한 변곡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희미하게 가물거리는, 그래서 주시해야 하는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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