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기사 "독서의 계절, 누가 많이 읽고 누가 안 읽나" 비판
한국 사회 공론장에서 끈질기게 유포되는 통념 하나는 “한국인은 문해력이 낮다”이다. 이것은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갖고 있는 대표적이고 결정적인 오해다(나는 일종의 ‘도시 괴담’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떠도는 피상적 관념이 아니다. 각종 언론 기사에서 “한국인 문해력 OECD 최하위”라는 통계가 곧잘 인용된다. 최근 발행돼 SNS에서 호응 몰이한 경향신문 기사 “독서의 계절, 누가 많이 읽고 누가 안 읽나” (http://m.news.naver.com/read.nhn…) 도 그렇다. 이 기사는 한국인 남성의 독서량이 여성에 비해 현격히 적다고 밝힌 후 “그 결과일까. 한국인 성인들의 실질적 문해율은 OECD 상위 22개국 중에서 최저 수준으로 조사됐다.”라고 덧붙인다. 여기서 인용하는 건 2004년 통계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2004 한국 교육인적자원 지표’)
2013년 OECD가 발표한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서 16~65세 한국인 평균 문해력은 273점으로 정확히 OECD 평균이다. 한국과 유사한 문해력을 지닌 국가는 캐나다와 영국이다. 독일과 프랑스 같은 '서구 선진국가'는 한국보다 평균 문해력이 낮다. 오히려 한국인은 수리력과 컴퓨터 해결 능력보다 언어능력이 높게 측정됐다. 특히 16~24세 한국인 문해력은 OECD 4위이고, 언어능력 항목 무응답자 점수를 85점으로 조정했을 때 핀란드와 일본에 이어 3위다.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 PISA를 참고해도 만 15세 한국 청소년 reading literacy는 역시 세계 최상위권이다. 다만 한국은 젊은 세대와 고령 세대의 문해력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한국 고령 세대 문해력은 하위 세번째이고, 그 뒤에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있다. 그 결과 문해력 평균 OECD 중위권이란 점수가 나온 것인데, 세대 간 문해력 간극을 지적한다면 유의미한 사회비평으로 이어질 수 있겠으나, ‘한국인 문해력이 낮다’고 하면 사실과 다르다.
04년 통계와 13년 통계에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그 10년 간 한국인의 글 읽기 능력이 향상된 걸까. 두 통계는 액면 상 큰 차이는 없다. OECD 상위 22개국 중 최저 수준이나 34개국 중 중위권이나 비슷한 위치니까 말이다. 그러나 말했듯 세부적으로 따지고 들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언론에 요구하는 건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건지, 최신 통계를 참고해서 과거 통계와 비교하고 정확한 현황을 확인해달라는 거다. 언론의 소명 중 하나가 그거 아닌가. 팩트 체킹. 이런 교차검증 없이 12년 전 발표된 통계를 인용하는 건 직무방기를 넘어 일종의 허위사실 유포다. 한국인 문해력이 낮다는 넓고 깊은 통념을 강화하고, 그에 따라 중요한 논의가 좌우될 수 있다.
SNS와 포탈사이트 댓글 창처럼 말이 아니라 글로 논쟁하는 공간에 거하다보면 말귀 어둡고 횡설수설하는 군상이 많은 건 사실이다. 이런 체감적 사실 때문에 “한국인 문해력이 낮다”는 주장이 의심받지 않고 호응을 얻는 것 같다(그런데 한국인 문해력에 개탄하는 자신들은 그 ‘한국인’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믿는 걸까?). 저런 인터넷 공간에서 주로 활동하는 게 문해력 높은 젊은 세대, 2030 네티즌이란 걸 떠올리면 다른 방식의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
1) 글을 '못' 읽는 게 아니라 안 읽는다. 멀티태스킹으로 영위되고 무수한 읽을 거리가 배치된 인터넷 창에선 주의집중이 저하될 수밖에 없고 선별적으로 글을 읽게 된다. 즉 "글은 안 읽고 제목만 읽고 기자를 욕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길고 딱딱한 글이라면 정도가 더 할 거다.
2) 오독을 하는 게 아니라 전략적 오독을 한다. 사회 이슈에 당파적으로 반응하는 한국 대중의 성향을 상기하면 설득력 있다. 논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엉뚱하게 대꾸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기 싫으니까 트집을 잡는다. 아마도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독자들 반응을 잘 살펴보면 자신의 입장을 비판하는 글에는 동문서답이 난무해도, 자신의 입장과 부합하는 글에는 그런 경향이 현저히 적다. 정말로 그렇게 문해력이 낮다면 누가 자신의 편을 드는지 파악하는 데도 혼란을 빚어야 할 거 아닌가.
3) 한국인 독자들 문해력은 한국인 필자들 기대에 비해 낮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한국만의 문제일까. 서구 선진국에도 인터넷 창에선 이런 저런 유형의 오독과 비난이 벌어질 것이다(한국 입시 열기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들 하는데, 수능 제1과목이 문해력을 측정하는 언어영역이다. 과연 다른 OECD 가맹국에 비해 문해력을 배양하기 힘든 조건인지 의문이다). 한국인 문해력이 글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문해력 국제 통계에 비춰 합리적인 추론은 이것이다.
한국인은 왜 한국인의 문해력이 낮다고 믿을까. 혹은 그런 주장이 왜 호응을 얻을까. 앞서 설명한 체감적 사실과 섣부르게 유통되는 통계 때문이겠지만, 더 뿌리 깊은 욕망이 있는 건 아닐까. 서구에 대비해 자국의 문명 상태를 불신하고 혐오하는 식민지-개도국 출신 국민의 자기 환멸일까. 어쩌면 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계몽이 시급한 문맹자로 격하하고픈 우월의식일까. 그럼으로써 자신을 계몽된 주체, 타자를 계몽할 수 있는 ‘문명인’으로 구분 짓고 싶은 욕망일까.
문해력을 계발하자는 것은 그를 세계의 지식을 읽어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결적 주체로 세우자는 뜻이다. 설마하니 내가 하는 얘기를 잘 알아듣는 상태로 만들자는 뜻은 아닐 거 아닌가. 그렇다면 문해력에 상관없이 그가 품고 있는 주체성과 자결성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다. 어떤 주장의 요점을 이해한다는 것과 그 주장에 동의한다는 것은 판이한 상태다. 아무리 옳은 주장을 해도 거기 동의하는 사람은 내 기대보다 작을 수 있다. 소통은 원래 도달하기 힘든 목표다. 그런 어찌할 길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럼에도 나와 ‘말’이 통하지 않는 주체들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나아가서, 사회의 문해력이 낮다면 '이해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당면 목표가 되겠지만,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면 지금의 사회 문제를 만든 것이 이해력의 결핍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될 것이다.
PIAAC 링크 : http://piaackorea.krivet.re.kr/report.html?at=a1#a1
PISA 링크 : http://www.kice.re.kr/resrchBoard/view.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