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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Nov 19. 2016

아재 파탈은 없다.

요즘 브라운관에선 이상한 유행어가 유영한다. ‘아재 파탈’. 치명적 매력을 가진 악녀를 일컫는 ‘팜므 파탈’을 뜯어서 다시 조립한 말이다. 치명적 매력을 뿜는 ‘아재’, 그러니까 나이 많은 남성, 30대에서 50대 사이의 남성을 가리킨다. 그 뿐 아니다. mlbpark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 3040 남성들의 놀이터에 가면 “남자의 전성기는 40대부터”란 주장이 심심찮게 보인다. 남자는 나이를 먹을수록 생활이 안정되고 정신도 깊어지며 외모의 품격을 강화한다. 싱그러운 여대생들과 불태우는 멋진 미중년의 삶.


망언이다. 젊은 시절에도 외모가 장점인 사람은 적고 많은 사람이 평범하며 적지 않은 사람이 보기 싫다. 미남 미녀는 세대를 타고 올라갈수록 희소해진다. 20대 미남이 세 잎 클로버 속 네 잎 클로버 같은 존재라면, 30·40대 미남은 가뭄에 콩 나는 확률로 분포하고, 20대 미녀가 성적 매력을 느낄 40대 미남은 사대강에 사는 일급수 물고기 쉬리다. 반지의 제왕 안정환도 그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미모가 마흔 줄 넘으며 확 짜부라지고 배 나온 아저씨 캐릭터만 남았다. 남자 전성기는 40대부터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자신감을 품는 근거는 뭘까. 자기가 40대란 거? 나이를 먹으며 피부가 늘어지고 주름이 접히는 건 저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상실에 승복하고 인간적 퀄리티를 높이려 노력해야지, 어린 여자를 호리는 것으로 존재가치를 인정받으려 하면 추하다.  


'남자 전성기 40대' 운운은 좋게 말해 착각이다. 착각은 자유고 남의 자유를 비웃을 순 없다. 나도 나이가 적지는 않은 처지고 매력적인 이성에게 끌린다. 보통 나이가 어릴수록 외모가 매력적이다. 그럼에도 학을 떼며 비꼰 건 이것이 사회적 기류이며 정치적으로 야비한 기획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어린 여성과 나이 든 남성 커플은 생경하지 않다. 중장년 남자 배우들이 여전히 영화와 드라마 주인공을 맡으며 젊은 여배우와 호흡을 맞춘다. 지성·현빈·강동원·이정재·정우성 등등등(물론 그들은 20대에도 정우성 강동원이었고 그들을 선망하는 시청자들은 20대에도 일반인이었다). 배역을 수행하는 걸 넘어, 어린 여자 톱스타와 장년의 남자 연예인이 교제를 시작했다는 뉴스가 현실에 침투한다. 설리와 최자, 아이유와 장기하 등등등. 우리네 주변에도 20대 여성과 사귀는 30대 남성이 확실히 예전보다 자주 보인다. 공정하게 말하면, 세대 차이가 줄어들기도 했다. 현재 구가되는 대중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의 원형은 90년대다. 3040은 90년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내며 그것들을 체화했다. 지금의 1020과 대화가 통할 소지가 늘었다. 예전에 비해 중장년 남자들이 외모 꾸미기에 욕심을 내는 것도 사실이다(욕심을 낸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


이건 사회경제적 흐름과 인구구조 변동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남자 초혼 연령은 여자 초혼 연령 보다 높다. 때문에 남성-여성의 연상-연하 커플이 보편적이다. 지금은 경기 불황과 높은 부동산 가격, 출산·육아 문제의 가중으로 결혼에 소요되는 비용이 무거워지며 초혼 연령이 더 높아졌다. 만성이 된 청년 실업난으로 취업 연령도 늦춰졌다. 경제력 있는 20대 남자가 줄어든 만큼 연애 시장에서 그 대체재로 선택되는 30대 남성이 는 것이다. 저출산 또한 뿌리 깊은 현상이라 3040 인구가 1020 인구를 압도한다. 90년대 복고 열풍을 돌이켜 본다면 깨닫겠지만, 3040은 문화 시장 메인 소비자로 일찌감치 호명됐다. 콘텐츠 생산자들은 ‘아재 파탈’, 미중년 판타지를 팔며 욕망을 부추기고 수요를 확장한다. 3040 남성은 대중문화의 트렌디한 소비자로 생존해있고, 대중매체는 중장년 남성들을 위한 패션과 스킨케어 팁을 알려준다(그 환상을 파는 사람들도 정말로 그들의 시청자가 미중년으로 거듭날 수 있다 믿을 것 같진 않지만).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 노화 방지와 외모 관리에 힘쓰는 건 보통 남자보다 여자다. 왜 '남자' 전성기가 40대일까. '남자 전성기 40대'는 남성의 연령적 대상화를 풀어 헤치는 한편 여성의 연령적 대상화는 붙박아 둔다. "우리가 나이를 먹었지만 얼마든지 젊고 예쁜 여자랑 놀 수 있어, 우리 아직 죽지 않았어!" 그  나이의 갭이 유지되어야 성사되는 판타지다. 청춘은 갔지만 나에겐 ‘여대생’을 호리는 능력이 있다는 남근적 의기양양함을 과시하 여성을 전리품 취급하는 것이다.


'아재 파탈'은 최근 등장한 유행어다. 그 몇 년 사이 미중년이 갑자기 늘었을 리 없다. 일상에서, 통념을 무시하는 나이차를 건너 뛴 커플도 아직은 드물다. 이런 소 사례가 자꾸만 강조되고 전파되는 내막이 무엇일까. 3040이 사회 트렌드를 리드하고 초혼 연령이 늦춰지는 현실에서 "나이 많은 남성도 매력적이며 그들이 어린 여성과 사랑하는 건 자연스럽다"는 규범을 사회적으로 주입하는 기획이 아닐까.


여초 커뮤니티, 나아가 트위터처럼 여성주의가 의식화된 비주류 커뮤니티 사용자들은 ‘아재’들의 환상을 신랄하게 학살하는 사육제를 벌다. “남자는 ‘와꾸’가 최고”이고 “남자는 어린 게 최고”이며 “늙은 남자들이 썸 타는 눈빛 던지면 눈알을 파 버리고 싶다”고 으름장 놓는다. 외모 지상주의, 연령적 대상화 같은 남성적 지배 규범을 내면화하여 거꾸로 표출하는 퇴행이라기 보다, 새로이 주입되는 지배 규범에 저항하는 과정일 것이다. 나이와 외모와 가치관이 다른 ‘아저씨’를 거절하는 자연스러운 연애 문턱을 낮추려는 ‘후려치기’에 맞서 ‘아저씨’의 매력 자본을 ‘후려치며' 주제 파악을 요구하는 반격이다.


결론 : '남자 전성기 40대' 운운하는 사람이 '여자 전성기도 40대'라고 말하는 염치만 있어도 단순한 착각으로 존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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