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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Mar 29. 2017

저항에 도사린 함정

힙합의 저항정신에 대한 비판적 검토

얼마 전 미국에서 진귀한 비프(beef)가 벌어졌다. 링 위에 오른 주인공 중 하나는 당연히 래퍼인데, 나머지 하나는 일국의 대통령이다. 바로 스눕독과 도날드 트럼프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부터 인종주의적 발언과 정견으로 엄중한 논란을 일으켰다. 미국 흑인사회의 목소리를 자처하는 힙합 MC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푸샤티, 티아이, 나스 등이 노래와 발언을 통해 트럼프를 비판했었고, 급기야 스눕독은 지난 12일 발표한 “Lavender” 뮤직 비디오에서 트럼프를 총살하는 이미지를 연출했다. 트럼프 측은 스눕독을 강도 높게 성토했고, 동료 MC들은 스눕독을 지원하며 참전했다. 이런 가운데 바우와우가 한 편의 트윗을 썼다. "트럼프, 내 삼촌 스눕독에게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네 아내를 끌고 와 '창녀'로 만들기 전에."바우와우는 트윗을 지웠지만, 이 날 것의 여성혐오가 트럼프의 막말만큼 천박하다는 건 설명할 필요 없다.



이 사건은 여러모로 작년 연말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떠오르게 한다.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여러 MC가 시국비판에 나섰고, 산이의 ‘나쁜 X’과 DOC ‘수취인분명’이 여성혐오 가사라고 구설수를 빚은 상황 말이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사건의 교집합은 결코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나쁜 권력자를 비판하는 정의로움을 발휘하는 데 왜 여성에 대한 멸시가 끼어든 것일까. 이 물음은 힙합의 ‘저항정신’이란 코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답해야 할 화두다.


그간 한국에서 힙합은 비판과 저항의 음악으로 이해돼왔다. 힙합의 뿌리는 저항정신인데, 한국에선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는 일간지 칼럼이 그렇다(경향신문, 이종임, [문화비평]비난으로 변질된 힙합의 저항정신). 이런 논조는 탄핵 정국 당시 한국 힙합을 향해 쏟아진 조소와 일치한다. 평소엔 성질 자랑하고 약자를 모욕하던 래퍼들이 왜 정말로 ‘디스’할 대상 앞에선 숨 죽이냐는 거다(아마 이런 여론이 불거진 후로 MC들의 박근혜 비판이 이어진 걸로 기억한다). 이런 비웃음을 처리하는 가장 간단한 반론은 힙합의 시작은 사회비판이 아니라 파티 음악이며, 랩의 양식에는 사회적 주제 등을 다루는 소위 컨셔스 랩 외에 다양한 하위 장르가 있다고 사실관계를 알려주는 것이다(힙합LE, [기획] 코드 네임: 사회 비판 - 힙합과 미디어의 쌍방과실). 이런 입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다소 논점을 우회하는 반론이라고 생각한다. 힙합의 저항정신을 강조하는 이들은 그것이 힙합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건 물론 더 이상 질문이 필요 없는 정의로운 가치로 막연히 이상화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논란들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힙합이란 음악을 더 건강하게 즐기고, 이 문화로부터 제대로 된 배움을 얻으려면 ‘저항 정신’에 메스를 대고 그어야 한다.


힙합의 저항정신을 이야기할 때, 아프로 아메리칸 공동체의 역사와 현실을 반드시 주지해야 한다. 힙합은 장르를 넘어선 문화이고, 그 문화가 태동한 공간이 미국 흑인사회이기 때문이다. 여타 장르 콘텐츠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힘들 만큼, 블랙 뮤직의 피와 뼈 속에는 특수한 인종 공동체의 정체성이 인각 돼있다. 블랙 뮤직을 아픔의 음악이다, 가난의 음악이라고 규정짓는 건 그 주체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객체화하고, 그 안에 담긴 다양한 면모를 획일화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비록 음악 외적 문맥을 바탕에 두더라도 장르의 요소들은 그 서사와 형식, 감각 자체로 감흥을 선사할 수 있는 유희적·미학적 효과를 창출한다. 하지만 장르 음악과 그것이 태동한 환경의 관계를 고찰하는 건 전자를 후자로 환원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작업이며 장르를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노예무역은 1600년대에서 1800년대에 성행했으며, 수천만 명에 달하는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끌려와 남부 면화 농장의 소모품으로 혹사당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 이후에도 실질적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흑인들은 인종분리 정책 등 사회적 차별에 의해 ‘게토’라 불리는 빈민가에 사실상 수용되어 살았다. 힙합의 발상지 사우스 브롱크스가 그랬다. 1929년부터 시작된 도심 재개발로 중산층 백인들이 떠난 자리에 유색인종이 표류해왔다. 사우스 브롱크스는 60만 건에 이르는 실업과 미국인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주민 소득의 버려진 땅이었다. 끊임없이 방화가 잇달았고 범죄와 마약이 거리를 배회했다. 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경찰은 치안이 아닌 억압의 주체였고, 상습적인 구타와 불심검문을 일삼았다. 그곳은 법과 질서의 진공상태 속에 인종별 갱단이 난립해 전쟁을 벌이는, 다소 과장하자면 <매드 맥스> 같은 영화에 나올 법한 문명이 사라진 도시였다. 이런 상황을 한국 역사의 일제강점기에 비견할 수 있는데, 게토는 다인종 현대국가 내부의 식민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토의 참혹한 현실은 과거보다 나아졌을망정 해소되지 않았다. 90년대에 저 유명한 로드니 킹 구타 사건으로 LA 시민 난동(Civil Disturbance)이 벌어졌다면, 경찰의 마이클 브라운 살해로 퍼거슨 시 소요사태가 일어난 게 불과 3년 전이다. 당시 뉴욕 타임스 사설에서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경찰의 총격으로 흑인 청년이 숨질 확률은 백인 청년보다 21배 높다고 한다.


지배적 질서에 대한 힙합의 저항정신은 이런 현실 속에 태어났다. 랩은 래퍼가 직접 가사를 쓰며 사적 화자를 드러내는 양식이다. 자신들이 나고 자란 거리(Street)와 게토에 관해, 일상화된 수난을 말하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을 것이다. 이런 경향이 폴리티컬 랩에서 컨셔스 랩으로 정립되었는데, 사회에 대한 진중한 의식(conscious)을 갖추지 않아도 삶에서 느끼는 충동을 거칠게 분출한다면 정치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공권력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쳐드는 한편 향락에 찬 갱스터의 삶을 노래한 N.W.A가 그런 경우였다. 아프로 아메리칸 공동체의 현실은 컨셔스 랩을 넘어 광범위한 장르적 문맥으로 깔려있다. 흔히 컨셔스 랩의 대척점에 ‘스웨거 가사’를 놓고는 하지만, 더 루츠의 퀘스트러브는 이런 물질적 과시 성향 또한 누군가의 소유물로서 자신의 소유물을 가질 수 없었던 노예제 시절의 결핍에 대응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디제잉과 랩을 탄생시킨 파티문화도 이런 사회적 맥락과 연결고리가 있다. 힙합의 4대 요소를 정립하고 최초의 힙합 단체 줄루 네이션을 설립한 아프리카 밤바타는 DJ이기 이전에 갱단 블랙 스페이즈의 중역이었고 지역 사회의 정치적 지도자 같은 인물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파티 문화는 그가 갱단들의 대결을 중재하고 평화를 모색하는 출구가 되어줬다(줄루 네이션은 갱단들이 변모한 단체이다). 힙합의 또 다른 하위 장르 갱스터 랩도 그렇다. 미국 MC 가운데 갱스터와 마약상을 자처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은 까닭은 게토의 위태로운 치안 상태 다.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갱단은 범죄 집단인 동시에 동포의 안전을 지키는 자경단의 역할도 했다. 힙합이란 장르 음악의 시작은 파티 문화이지만, 힙합이란 문화의 뿌리에는 사회적 현실이 깊숙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억압받는 소수자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니라 보편적 정체성을 가진 리스너와 창작자의 자리에서 미디어를 통해 힙합을 수입했다. 힙합의 비판의식 혹은 갱스터 랩 따위를 겉치레로 갖다 쓰기 일쑤였고, 그럼에도 알맹이 있는 정치적 가사는 드물 수밖에 없었다. 꼭 주류 미디어의 오도 때문에 일어난 사태가 아니다. 완전히 다른 정치문화적 토양에서 장르가 변용을 이루며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인 측면도 있다.


명심할 건 힙합의 ‘저항정신’은 특수한 약자의 분노를 웅변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모든 차별의 철폐와 불평등에 대한 연대 같은 진보적 이념이 아니다. 실제로 컨셔스 랩 계열의 작품을 살펴보면, 자본주의 시스템과 다른 세계의 고통, 전쟁 없는 세상 같은 여타 장르 음악과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보편적 메시지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아프로 아메리칸 공동체의 현실과 형제들의 삶을 구술하는 주제가 다수다. 컨셔스 랩의 원류로 꼽히는 퍼블릭 에너미는 흑인들의 단결을 제창했고, 그들이 “Fight The Power”에서 맞서 싸우라 선동하는 권력(Power)은 백인 권력을 가리킨다.


여기에 저항정신의 함정이 있다. 사회에는 인종뿐 아니라 성별과 계급, 성적 지향 같은 차별의 갈래가 뻗어있다. 이 갈래들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권력관계 속에 교차하며 한 사람의 정체성으로 결합한다. 사회경제적으로는 빈민이지만, 젠더적으로 이성애자 남성이며 인종적으로 백인이라는 우월적 지위를 지닐 수 있다. 1960년대에 부상한 블랙 페미니즘(Black Feminism)은 흑인 여성을 짓누르는 젠더와 계급, 인종의 3중 억압 속에 태동했고 이는 80년대에 이르러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란 개념으로 정립된다. 문제는 이런 교차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겪는 특정한 차별에 함몰되거나 그것을 특권화할 때 일어난다. 동성애자 남성이 여성혐오를 내면화거나 가부장제도에 분노하는 여성이 게이도 결국 남자라며 적대시하고, 노동 운동 내부에 성차별 문화가 만연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건 이런 이유다.
 
 인종 정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내가 약자라는 자의식이 강할수록 다른 약자는 잘 보이지 않는다. 흑인 민권운동은 남성 활동가 중심으로 운영됐고 남성 우월주의 풍토가 앞섰다. 투팍의 친모 아페니 샤커는 1960년대에 설립된 무투파 단체 흑표당의 활동가였는데, 조직 내부의 성차별 문화에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한인사회와 흑인사회의 갈등이 격화되던 90년대 한인 사회 대표자였던 게리 킴은 “한국인과 흑인이 연관된 사건에서 흑인이 희생되면, 흑인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인종차별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인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그들은 인종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이라고 판단해 버린다.”라고 말했다. 강자와 약자를 낳는 교차적 권력관계에 대한 비판의식 없이 약자로서의 분노가 들끓는다면, 다른 약자를 묵살한 채 자신이 겪는 불평등을 해소하려 하거나, 다른 약자를 후려치며 강자의 권력을 맛보고, 약자의 지위에서 탈출해 강자의 지위에 합류하는 것이 숙원이 된다. 실제로 미국 내 모든 인종 가운데 개신교 신자가 가장 많은 것이 흑인이고, 그들은 그만큼 보수적 성향을 잠재하고 있다. 이것이 밑바닥 게토에서 랩스타로 승천하는 힙합의 성공 서사가 난립하고, 힙합의 어법에 여성과 동성애자 같은 또 다른 약자에 대한 혐오가 난무하는 한 배경이다. 장르 특유의 마초적 성향 또한 이것과 연관이 있으며 문제를 가중한다는 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런 경향은 ‘저항 정신’의 명시적 계보 안에서도 관측된다. N.W.A는 여성과 동성애자를 비하하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고, 퍼블릭 에너미는 자신들의 열렬한 팬이었던 비평가 그렉 테이트로부터 “게이, 여성, 유태인의 명예를 훼손하면서 흑인의 해방을 실현할 수 없다”라고 비판 받았다. 게토의 영웅이자 사회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지닌 투팍 또한 저 유명한 노토리어스 B.I.G 디스곡 “hit em up”에서 “니 아내(페이스 에반스)를 내가 겁탈했다”라고 ‘남자들 싸움’의 노리개로 여성을 들먹였다. 대표적인 컨셔스 래퍼 커먼은 “Song for Asata”에서 투팍의 대모 아사타 샤커를 추앙한 바 있지만, 아이스 큐브와의 비프에서 온갖 인간적 결함을 여성성에 빗대며 “네 안에 ‘Bitch’가 있다”(“The Bitch in yoo”)라고 퍼부었다. 교차성의 몰각이 부른 가장 비극적인 사례는 아이스 큐브의 경우일 것이다. 아이스 큐브는 N.W.A에서 탈퇴한 후 작업한 앨범 “Death Certificate”의 발표를 앞두고 흑인 민권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 안젤라 데이비스와 대담을 가졌다. 안젤라 데이비스는 ‘여성혐오 가사를 반성하고 여성 및 다른 유색인종과 연대하라’고 권유했지만 아이스 큐브는 심드렁한 낯빛으로 대꾸했다. 1991년 발표된 “Death Certificate”에는 흑인들과 알력을 빚던 한인사회를 공격하는 “Black Korea”가 실려 있었다. 이 노래는 이듬해 백인 사회의 흑인 탄압으로 시작해 한인들과 흑인들의 유혈 사태로 치달은 LA 시민 난동의 불길한 전주곡처럼 울려 퍼졌다.


누군가는 반문할 것이다. “그렇지만 힙합은 Respect과 One Love의 음악이기도 하지 않은가.” 물론 그것들은 힙합이 내거는 소중한 포용의 슬로건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상기해야 하는 건 그 사랑과 존중의 대상에 누가 포함되는지 묻는 방식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거다. 나스는 거리의 삶을 대변해 왔고 “I Can” 등의 노래에서 백인 중심적 역사관에 대항해 아프리카의 문명성과 우수성을 조명하는 아프리카 중심주의를 설파한 MC다. 그가 감옥에 수감된 동료 코메가를 위해 부른 “One Love”에서 코메가의 아내는 남편에게 편지도 쓰지 않고 면회도 가지 않는 뱀 같은 여자(“she a snake too”)로 묘사된다. 사랑과 존중은 흑인 남성을 넘어 다른 이들에게도 가닿아야 한다.


관건은 힙합의 저항정신을 직시하는 것이다. 백인 권력에 대항하는 소수자 운동으로서의 정당함은 물론 거기 깃든 한계를 말이다. 사회 운동에는 약자로서의 내 분노와 아픔을 넘어 다른 약자를 헤아리며, 배려와 연대, 타자의 인권 같은 보편적 가치를 염두에 두는 교차적 관점이 요청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종주의자 백인 대통령에 맞서기 위해 흑인 남자들이 백인 여성을 능멸하는 일이 정당화된다. 이런 관점에서, 산이와 DOC의 사례는 한국 힙합의 낙후성이 낳은 촌극이 아니라, 권력 비판과 여성혐오라는 힙합의 코드를 관성적으로 따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힙합은 저항의 음악인데 한국 힙합은 여성혐오나 하며 변질됐다고 꾸짖거나, 약자의 음악이란 정체성을 도덕적으로 강조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도달해야 할 이상으로 제시하는 오해에 가깝다. “저항정신은 힙합의 일부이지 본질이 아니다”라는 항변 또한 ‘본토 힙합’을 비판적 검토 없이 준거로 인용한다는 점에서 불완전하다. 미국 힙합의 잣대를 끌고 와 한국 힙합을 정당화하거나 비난하는 걸 떠나 힙합 문화 자체를 성찰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이런 성찰은 장르 음악의 청취자를 넘어 공동체를 사는 시민으로서의 깨달음을 줄 수 있다. 유색인종으로서의 차별과 빈민으로서의 차별, 백인 남성과 흑인 남성에게 공히 억압당한 여성으로서의 차별이 공존하는 블랙 뮤직의 토대는 교차성을 사유할 수 있는 실천의 장이다.


블랙 뮤직의 역사가 교차적 관점의 사막은 아니다. 모스뎊과 탈립 콸리가 결성한 블랙스타의 “Brown Skin Lady”는 인종적 정체성과 여성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흑인 여성들을 격려하는 노래다.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는 "Description Of A Fool"에서 여자를 때리고 결혼해달라 협박하는 남자들을 루저에 멍청이라 비웃는다. 이런 전례들 역시 분명 존재한다. 특히, 근래 미국 힙합 씬에선 여성혐오와 동성애 혐오의 해묵은 관습을 성찰하는 흐름이 대두하고 있다. 루페 피아스코는 2012년 “Bitch Bad”를 발표해 ‘Bitch’란 말을 청산하자 권고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알앤비 싱어송라이터 프랭크 오션은 같은 해 여름 양성애자임을 커밍아웃했고 뮤지션들과 음악 관계자들로부터 격려와 지지를 이끌어냈다. 키드 커디 또한 작년 올랜도 게이클럽 총기 난사 사건을 추모하며 “힙합 커뮤니티들이 동성애자들의 권리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얼마 전 미국에선 트럼프 취임식에 맞서 ‘여성 행진(Women's March)’이 열렸는데, 많은 남성 뮤지션이 연대의 메시지를 타전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귀감이 되는 건 프로듀서이자 싱어송라이터 더 드림이 2014년 발표한 “Black”이다. 이 노래는 흑인들의 피부색 Black이란 화두를 인종을 넘어 계급적인 것으로 승화해낸다(“Classism is the new racism”). “Black”의 뮤직비디오는 “Africa”라는 글자를 가슴에 쓴 흑인 소년의 모습으로 시작해, “Chicago”를 가슴에 쓴 흑인 소년의 모습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 사이 러닝타임을 게토화 된 시가지를 행진하는 약자들의 모습으로 채운다. 국경을 넘나드는 깃발과 무슬림 여성, 키스하는 흑인 게이, 상의를 벗고 달려가는 백인 여성 페미니스트, ‘occupy wallstreet’ 구호를 든 이들이 스치고 만나는 가운데 국적과 젠더와 성적 지향, 인종과 종교, 계급 정치를 아우르는 차별과 억압이 가시화된다. 뮤직비디오는 감동적인 종결구로 막을 내린다. “BLACK ISN’T JUST A COLOR”. 블랙은 색깔이 아니다. 그것은 해방을 꿈꾸는 모든 약자들의 이름이다. 이처럼 장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장르 안에 품고 있는 것 또한 블랙 뮤직의 역사가 이룩한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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