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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Dec 14. 2015

문화비평의 마스터베이션


문화 비평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지 않지만, 장르 콘텐츠를 인문학 이론과 이데올로기 비판으로 섣불리 전유하는 것엔 회의적이다. 슈퍼맨 시리즈를 리부트한 영화 <맨 오브 스틸>이 개봉했을 때, 청년 좌파논객 박가분은 "잭 스나이더는 구좌파적 감수성과 세계관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재능을 지닌 감독"이라 논평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잭 스나이더의 필모그라피는 물론, 슈퍼맨 시리즈에 관한 통념과 화해할 수 없는 견해이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영화 속 소품으로 플라톤의 <국가>가 등장한다는 점과 ‘맨 오브 스틸’이란 타이틀이 "공산주의자는 철로 이뤄진 인간"이라는 스탈린의 말을 연상케한다는 것이었다. 슈퍼맨은 그 세계관의 전통 안에서 패권 국가 미국이 인격화한 캐릭터라는 상식을 그는 모르는 듯 했다.     


'맨 오브 스틸'이란 제목에는 구구한 해석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존 번의 동명 코믹스 원제를 빌려온 이름이며, 잭 스나이더가 감독을 맡기 전에 이미 정해진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 또한, 인류 한계를 초월한 강력한 역능으로 지구를 수호하는 슈퍼맨, 그러니까 패권국 미국의 위상을 철인왕에 빗댄 것이라 해석하는 게 차라리 자연스럽다.     


그는 투명하게 드러나는 텍스트의 함의를 정반대로 읽으며, 자본주의 제국의 표상을 스탈린주의와 연결 짓는 해석의 기계체조를 선보인 것이다. 장르에 대한 지식과 재현 매체에 대한 안목이 없을 때, 서사에 흩뿌려진 파편적 모티프에 화들짝 반색하게 된다. 그 모티프의 꼭짓점을 따라 거창한 의미망을 직조하는 과잉 해석의 함정에 빠진다.     


저런 것은 자신의 비좁은 시야에 텍스트를 우겨 넣는 망동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무언가를 한사코 텍스트에 덧칠한다는 점에서, 텍스트의 가치를 그 자체로 존중하는 비평이 아니다. 개념과 사변은 돋보기 안경이다. 작품이 말하려는 바를 깊이있게 승화하고 새로운 행간을 발견하게 인도한다. 그러나 그에 의존하지 않고 작품을 응시할 안력이 없다면, 이론과 이념을 말하기 위해 문화와 예술을 착취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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