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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C 워너비 Apr 22. 2017

사라지는 매개자 90년대

서태지는 1992년 ‘난 알아요’라는 공전의 히트곡으로 데뷔했다. 밀리 바닐리 ‘Girl You Know It's True’의 파렴치한 표절곡이지만, ‘랩’이라는 미지의 양식을 전면에 세운 컬처 쇼크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음악가로서는 좋게 봐줘야 빌보드 밀수업자이지만, 그들이 대중문화에 미친 파급력은 실로 엄청났다. 특유의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활동 기간-재충전-컴백 활동이라는 공식을 세웠고, 랩 댄스와 힙합 같은 새로운 장르를 퍼트렸으며, 사회적 주제를 노래하는 음반 마케팅, 아이돌 문화의 원형을 제시한 것도 서태지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데, 90년대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받아들인 세대와 그들의 음악에 적응하지 못한 세대로, 대중문화 소비자 그룹과 낙오자 그룹이 갈렸다.


90년대는 서태지를 기점으로 이전의 대중문화, 라이프스타일과 단절된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인 커트라인 그룹은 당시 20대를 보낸 2차 베이비부머다(68~74년 출생). 이들은 소비문화와 개인주의, 미디어 사회 개막의 세례를 받은 세대이다. 당시에도 X세대, 오렌지족, 신인류 같은 이름으로 ‘새로운 종족’으로 호명됐다. 이런 호명에는 이들의 소비 잠재력을 주목한 시장의 기획이 깔려있었는데, 2차 베이비부머는 1차 베이비부머에 대항할 수 있는 머리수를 지닌 유일한 인구집단이다. 기억하겠지만 2012년부터 몇 년 간 사회 전방위에서 90년대 복고가 유행했다. 이것은 현행 대중문화와 친밀한 데다 청년세대를 압도하는 인구수이지만, 40대가 되어 소비문화와 멀어지는 2차 베이비부머를 고정적 소비자로 재편성하는 산업적 기획이었다. 


90년대 복고는 ‘사라지는 매개자’다. 더 이상 90년대는 미디어에서 불려 오지 않는다. 하지만 저출산ᆞ고령화 사회에 맞춰 대중문화 사회를 재편하며 구조화했다. 90년대 복고 패션이 트렌드를 넘어 메인스트림으로 정착했고, 그 시기에 젊음을 보낸 이들을 아직도 젊다고 규정하는 방식으로 세대 개념이 재구획되고 있다. 미디어 역시 문화산업을 구조조정했다. '백세 인생'을 맞은 베이비부머와 ‘돌아온 X세대’ 혹은 '아재 파탈' 2차 베이비부머/에코부머(79년 출생~)를 위해 미디어 상품을 찍어낸다. ‘1박 2일’ 같은 노년 취향 예능의 롱런과 ‘아는 형님’ 같은 중장년 남성에 특화된 예능 프로의 흥행이 그 사례다. '미운 우리 새끼'는 초혼연령 상승과 비혼 가구 증가, 저임금 및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라 ‘늙은 소년’으로 부모에게 얹혀사는 에코부머와 그들을 자녀로 둔 베이비부머라는 세일즈 대상을 교차 결합한 예능프로다.


90년대 복고 유행은 2차 베이비부머가 '불혹'이 되는 과도기,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 7% 이상)에서 '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14% 이상)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현상이었다. 또한 출산율 감소로 00년대까지 대중문화 시장을 주도하던 1020 세대가 급격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트렌드를 소비하는 주인공이 교체되는 대관식이었다. 사실 2차 베이비부머와 에코부머는 90년대와 00년대에 1020세대였다. 그들은 그때도 지금도 주인공이고, 향후 '초고령화 사회'에서 문화시장을 넘어 사회적 의사결정에서 ‘젊은 세대’의 가장 오래된 세대이자 실권자로 행세할 개연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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