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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찬 Nov 28. 2021

글쓰기는 행복이다.

 "탁탁탁"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가족들이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바깥은 이미 어두웠고 방안은 적막한 가운데 자판을 두둘 기는 소리만이 주변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탁탁탁"

 나는 주변이 마치 멈춰있는 것처럼 어떠한 움직임의 소리도, 나를 부르는 소리도, 그 어떤 방해도 없이 그저 자판이 눌렸다 떼지는 소리만 들릴 때가 가장 즐겁다. 그것은 마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 같았고 지금까지 세상에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을 색다른 음악을 듣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자판을 두들겼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어떤 신나는 음악보다 듣기 좋은 소리였고 멈추지 않기를 바랐다. 타자기를 두들기는 소리가 끊기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화면에 작성해야 할 글자들이 점점 완성돼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집중! 오늘따라 집중이... 윽... 

 손가락이 멈췄다. 

 "에이 샹!"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대략 10분 정도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저 영혼 없이 마지막 문장만을 되내었다. 그것은 마치 금지된 주술을 외우는 것처럼 그저 무미건조하게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더 이상 다음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아... 마가 낀 게지"

  이제는 계속 생각해봐야 멈춰버린 손가락을 다시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마치 속세를 벗어난 도인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엉덩이를 앞쪽으로 밀고 머리를 의자 등받이에 힘없이 떨구었다. 그러고는 눈을 감았다. 

 '다음 문장이 뭐였지?' 미련이 남았던 것인지 어둠 속에서 한줄기의 빛을 찾듯 나는 이미 잿빛의 안개로 가득 찬 머릿속을 헤매었다. 어디를 가든 그저 안개의 축축하고 찝찝한 기분이 몸을 감쌀 뿐이었다. 팔을 휘저어도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손을 뻗어 잡으려 해도 냇가에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유유히 빠져나갔다. '이건 바깥 창문에 성에가 꼈는데 안쪽에서 계속 문지르고 있는 것 같네.' 

 나는 눈을 떴다. 노트북 화면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은 단어의 끝에서 커서만이 일정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갈고리처럼 오므려진 손을 바라봤다. 한때는 두툼하고 단단했던 손, 다년간의 육체노동으로 거칠었고 야성미가 느껴지는 작지만 자부심이 느껴졌던 손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흔적은 이미 흐릿해졌고 이제는 그냥 통통한 손이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 가득 찼던 안개가 걷히며 상처로 가득한 안전모를 착용하고 일의 열중하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가 와서 나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무시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일 외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런 성격과 무심한 말투로 직장동료들은 나를 꺼려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또한 그런 행동은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나를 무서워했고 아내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계처럼 일만 했고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지인들과 교류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뭐라고 하든 대수롭지 않았고 점점 감정이 사라지는듯한 느낌이었다. 나에게 있어 관심사는 딱 한 가지였다. 오직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돈만 있으면 가족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

 육체가 지치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다짐하고 다짐했다. 몇십 톤의 핸드레일이 성난 파도처럼 나를 덮쳐 왔을 때도 1톤의 무게로 가슴을 짓눌렸을 때도 손바닥만 한 종이 쪼가리가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러고는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화면에는 빠른 속도로 문자들이 채워져 갔다. 

 "탁"

 나는 노트북의 엔터키를 오른손 중지로 세차게 치고 양손을 가지런히 가슴 위에 얹었다. 드디어 막혔던 부분이 뚫리고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스크롤을 위로 올리고 글의 처음부터 다시 빠른 속도로 읽었다. 괜찮은 글이 나왔다. 절로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나는 왼손을 들어 입술을 만졌다. 위아래 입술이 살짝 벌려져 있었고 양끝은 움푹 들어간 상태로 위로 살짝 치켜져 있었다. 현장일을 했을 때는 전혀 짓지 않던 미소였다.

 나게에 있어 글쓰기란 그렇다. 10년간 몸에 배었던 습관, 성격을 잊게 했고 북극의 추위만큼 얼어있던 심장을 녹였다. 소원했던 가족의 관계를 개선했고 돈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졌다. 

 글쓰기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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