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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고든 Nov 07. 2018

뭐가 있어야 합니까

"봉사활동은 있는 사람이 하는거야 이 새끼야."


한 교수님이 있었다. 그는 같은 나이대 노인들과 달리 외모에 공을 들였다. 매일 면바지 위에 셔츠를 입고, 명품 벨트와 로퍼, 그리고 블레이저에 투미 백팩. 마지막으로 벤츠 자동차까지. 정년 퇴임이 임박한 나이였음에도 그는 여느 젊은 교수, 아니 강사들보다도 젊게 살았다. 국립대 교수라는 직함과 달리 '괴짜'처럼 말했고 행동했다. 그가 뱉은 한 마디 한 마디는 대학에 막 입학한 내게 주옥이 됐고, 멋져보였다. 그래서 그가 좋았다.


매 학기마다 그의 수업을 수강했다. 전공 교수님이었기에 수강 선택도 쉬웠다. 1년이 지나고, 군대를 다녀왔을 때에도 마주한 그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젊어지려고 노력했고,  특유의 통찰과 유머로 학생들을 홀렸다. 지겹고 뻔한 수업에 지친 신입생, 재학생, 심지어 졸업한 선배들도 그의 수업에 관해서는 재미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봉사활동' 학점을 채우기 위해 그의 수업에 불참하게 됐다. 불편한 친구들을 도와야한다는 사명감보다는 학점을 채우기 위한, 딱 '1학점'짜리 봉사활동이었다. 그래서 교수님에게 '이번 주 수업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라고 말씀드리기 위해 미리 전화를 드렸지만 답이 없었다. 혹시 몰라 문자 메시지까지 남겨놓았다. 수업에 참여하는 동기들과 후배들에게도 '교수님께서 결석 이유 물어보시면 잘 말씀드려줘!'라고 부탁도 해놓았다.


수강 신청을 할 때와 달리 봉사활동이 재미있었다. 정신 지체가 있는 친구였는데 대화도 문제없이 잘 했고, 할 일은 스스로 하는 친구였다. 그리고 너무 잘 웃는 친구였다. 이 친구를 만나기 전 복지사선생님은 내게 "좀 유별난 애라서 힘드실거에요. 하루만 잘 부탁드려요"라고 말했지만, 너무 편할 정도였다. 하루 종일 함께 이야기하고, 같이 웃으며 밥을 먹다 보니 우린 친구가 됐다. 그리고 '봉사활동에서 느낄 수 있는 뿌듯함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묘한 감정도 느꼈다.


기분 좋은 봉사활동을 마치고 휴대폰을 봤을 때, 수십 통의 문자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그 교수님의 수업에 출석한 동기들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내용은 모두 같은 맥락이었다.


"오늘 수업 내내 봉사활동 얘기만 하셨어."

"교수님이 네 성적 F 처리할거래." 등등.


다음 날 등교와 동시에 교수님 연구실을 찾았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여니 교수님이 계셨고, 교수님은 내게 "봉사활동은 어땠냐"라고 물으셨다. 단순히 봉사활동의 과정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내게 물었다. "봉사활동은 너희같은 애들이 하는게 아니야."라고. 혹여나 교수님께서 '수업보다 봉사활동이 중요하다'고 느끼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봉사활동에 참여한 계기부터 느낀 점까지 설명했다.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고.


그러자 그는 "봉사활동은 있는 사람이 하는거야 이 새끼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난 "뭐가 있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내쉰 그는 "너희 할 일이나 똑바로 잘해. 남 도울 생각 말고"라며 다시 한 번 나를 쏘아붙였다. 대화를 지속하는 것이 더이상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나는 연구실을 나왔다. 실제로 학기말 성적표에는 'F'가 찍혔다. 그 뒤로 나는 졸업하기 전까지 그 교수님의 수업을 듣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사회에 뛰어들었다. 공부를 위해 신문을 구독하고, 9시 뉴스를 챙겨보는데 그가 거론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비리와 관련된 인물로 지목되고 있었고, 정식 조사가 임박해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내게 소리쳤던 교수님에게, 돈, 명예, 권력 모두 가졌던 교수님에게 한 번 더 여쭤보고 싶다. 뭐가 있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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