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의 퇴사는 바람이 일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내게 위로를 건네면서도 속으로는 아쉬움을 삼켰다. 나 역시 ‘아직 젊으니까 괜찮아’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마음속에 여유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1년 전 큰 꿈을 안고 정든 회사를 나왔다. 30살이 되기 전에 마지막 도전을 하고 싶었다. 상사로부터 받은 인정, 적정한 월급, 그리고 주말마다 누려온 취미생활 등 많은 것을 포기하고 결심했다. 그저 회사에 수익을 안겨주는 구성원이 아닌 사회의 등을 긁는 효자손이 되어 보자고.
많은 이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가족은 “의미 있는 도전”이라며 기운을 북돋아줬다. 친구들은 “너라면 할 수 있어”라며 자존감을 높여줬다. 같은 꿈을 향해 달리는 스터디 동료들은 “다 같이 현장에서 만나는 날”을 그리며 매일 서로를 위로했다.
운도 따랐다. 6명의 전우 가운데 제일 떨어지는 실력이었음에도 가장 먼저 합격 통보를 받았다. 수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남들보다 짧은 기간에 기회를 잡았다. 사직서를 낸 지 정확히 8개월 만에 거둔 쾌거였다.
상상만 하던 현장을 누빌 때에는 불안함보다 벅찬 감정이 앞섰다. 자연스레 ‘재미’는 커져만 갔다. 매주 낮과 밤이 바뀌는 일정도 마냥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누구나 재미를 찾는 곳으로 출근할 수 있다는 사실은 ‘특권’처럼 느껴졌다.
종종 같잖은 선배가 내놓는 질타에 분노하기도 했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선배들이 평가표를 제출했고, 대표는 면접을 통해 옥석을 가렸다. 동고동락한 동기들과는 희비가 갈렸다. 몇몇은 불합격 통보를, 나는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이별을 뒤로한 채 전날과 다른 출근길에 나섰다. 하지만 출근 직후 ‘타 부서 소속으로 당장 사업을 따오라’는 임무를 받았다. ‘개척자’라는 단어는 무모한 희생을 포장하기에 제격이었다. 회사의 중대사가 걸린 일을 6년 차가 아닌 6개월 된 신입에게 맡긴다는 것 역시 기대보다 희생 강요에 가까웠다.
나중에라도 병행할 수 있는지를 묻자 “전혀”라는 답이 돌아왔다. 곧장 그만두고 나왔다. 회사라는 조직이 당연히 그렇겠지만 당장 뜻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는 판단이었다. 내 인생 2번째 사직서는 이렇게 쓰였다.
주변 사람들의 우려는 더 커졌지만 뭐 어쩌겠는가.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인생, 이번에도 후회는 없다. 어차피 내가 헤쳐 나가야 하는 길 아니던가.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 대한 모두의 바람이 불어온다. 크거나 혹은 작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