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삼촌에게 100을 빚졌다. 유독 바빴던 아버지 대신 내 졸업식에 참석하고, 아버지 몰래 내게 용돈을 쥐어줬던 그 삼촌 말이다. 이미 떠난 이 앞에 빚이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나는 평생 그 빚을 갚으며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2015년 11월. 삼촌의 아들, 즉 나의 친척동생이 수능 시험을 봤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외숙모로부터 ‘공부에는 영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어왔던 터라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소위 ‘대박’을 친다하더라도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는 프로농구 선수보다 농구를 더 열심히, 더 좋아하는 동생에게 ‘전체 과목 평균 3등급 이상 성적을 거두면 조던 운동화를 사주겠다’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아무에게도 기대를 받지 않는 무관심 속에 동생을 내버려두기보다 말 한마디라도 건네 동생이 주목을 받는 기분이 들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오예!’라고 외쳤던 동생은 시험이 끝난 직후 연락이 없었다.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포탈의 실시간 검색어에 [수능시험 답안]이 오르내리는데도 내 휴대폰은 요지부동이었다. 혹여나 아직 시험을 치르는 중일까 싶어 섣불리 먼저 연락하지도 못했다.
하늘은 그새 어둑해졌고, 시침이 9시를 가리킬 무렵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들이랑 놀다가 이제 집에 들어가요 형’이라는 동생의 한 마디는 내게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시험을 망쳤나?’부터 ‘친구들이랑 싸웠나?’까지.
동생에게 물었다. “야 수능 끝난 날은 밤새 노는거야. 왜 벌써 들어가”라고. 내 질문에 동생은 답이 없었다. 그냥 허허실실 웃어넘기며 집에 거의 다와간다는 말 뿐이었다. 문득 ‘혹시 돈이 없어서 먼저 들어가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적으로 묻진 못했으나 괜히 내가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엄청난 재벌도 아니고 멀쩡한 직장인도 아니지만 모두가 놀 때 놀고 싶지만 놀지 못하는 동생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내 잔고에 있는 돈을 끌어 모아 동생 계좌로 20만원을 보내줬다. 그리고 한 마디 더 건넸다. “나가 놀아”라고.
사실 동생의 상황을 미리 알았다면, 조금 더 미리 돈을 보내줬더라면 동생이나 나나 상처받을 일은 없었을 테다. 다행히 동생이 개의치 않아 했지만 형으로서, 그리고 삼촌의 조카로서 동생을 제대로 케어해주지 못한 사실에 대해 자책감이 들었다.
삼촌은 항상 나를 위해 미리미리 움직여줬다. 어쩌면 나는 삼촌에게 100을 빚진 것이 아니라 200의 빚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빚은 늘어났지만 허망함이 크진 않다. 동생이 필요할 때 늦게나마 필요한 역할을 해준 것, 그리고 무뚝뚝할지라도 고생했다고 말 한마디라도 건넨 것은 삼촌에게 1을 갚은 것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갚아나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