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이것 좀 도와줄래?”
지난해 엄마의 부탁을 받고 구청에 제출할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나를 소개하는 문서가 아니라 엄마의 자기소개서였다. 엄마가 살아온 57년 동안의 일생을 녹여야 할 칸에, 29살짜리 아들은 어설픈 문장들로 여백을 채워 넣었다. 이력서도 마찬가지.
종종 ‘습니다’와 ‘음니다’를 헷갈려하던 엄마의 모습은 내가 자기소개서를 대필해야 할 당위성을 제공했다. 더욱이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는 직업으로 이직을 준비하겠다는 철부지 아들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다행히 제출한 서류는 심사위원의 눈에 들었고, 엄마는 면접 끝에 원하던 직책을 얻었다. 내 글 빨이 통한 것인지 엄마의 능력이 인정된 것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나는 아들로서 최소한의 효도를 했고, 엄마는 지위가 생겼다.
막상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니 내 맘 속 욕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밝은 인상으로 만든 폭 넓은 인간관계, 국무총리에게서 받은 표창, 구 부녀회장직 겸임 등 그녀의 다양한 경험을 살려보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 더 높은 직책과 지위를 얻기를 바랐다.
엄마가 중졸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현재와 달리 1960년 생 중 대학을 졸업한 이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이가 더 많았을 테지만 난 현재를 기준으로 삼았다. 더욱이 학력사항에 관한 대화가 오고갈 때마다 엄마가 기죽어하는 모습이 눈에 걸렸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검정고시 준비해볼래?”라고.
엄마는 단칼에 거절했다. “아니”라고.
엄마가 1초도 고민하지 않고 거절한 이유는 명확했다. 검정고시 대신 자신을 도와줄 아들이라는 존재가 있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여러 번 의사를 타진했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거절 의사를 밝혔다.
1년이 지났다. 모든 직책을 내려놓은 엄마가 거실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내 나를 부르더니 “아들, 검색하는 법 좀 가르쳐줄래?”라고 물었다.
무심결에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엄마가 나의 제안을 계속 거절했던 것이 ‘네가 계속 도와줘’라는 부탁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