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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나 Feb 18. 2022

눈썹을 다듬으며

혼자 있는 시간

오랜만의 바깥 약속에 참 오랜만에 거울을 보았다. 정리하지 않은 눈썹이 많이 길어져 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집에 머물러 있었는지 자라난 눈썹의 길이를 보고 가늠할 수 있다. 외부 일정이 생기면 색조화장은 못하더라도, 눈썹만은 웬만하면 그리고 나가게 된다. 반쪽 눈썹은 컬트트리플(컬투의 전신인 컬트트리플 다들 아시는지)의 '눈썹 어딨니' 뮤직비디오가 초등학생 시절 나에게 새겨놓은, 마지막까지 놓지 못할 코르셋의 영역이랄까. 오랜만에 늘 그리는 모양 바깥에 자라난 눈썹들을 눈썹 칼로 잘라내고, 평소보다 길어진 눈썹을 눈썹 가위로 잘라내며, 오늘의 대화에 상처받지 않기를 다짐한다.


십일 년을 조금 넘는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당분간 휴식을 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 지인들에게 귀국 사실을 많이 알리지 않았다. 오히려 느슨한 관계의 지인들에게 알리기가 편했고 최측근 두 세명을 제외한, 먼 지인도 아닌 적당히 가까운 관계들에게 더 알리기가 힘들었다. 연락을 하면 만날 약속을 잡게 되고, 대화 속에서 왜 회사를 그만두었는지, 타지 살이가 어떤 것이 힘들고 좋았는지를 말하려면 그간의 세월과 아픔을 풀어내야 하는데 모두에게 솔직하고 진솔하게, 또 그것을 반복적으로 떠들어 댈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달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꽤 많은 지인들의 몇 달만, 혹은 몇 년만의 안부 연락에 어쩔 수 없이 귀국과 퇴사 사실을 전하게 되었다. 나의 상황 체크에 불과한 의도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연락엔 오히려 뜨뜻미지근한 반응으로 만남을 회피하기 편하다. 반면 반가움 가득한 느낌표와 이모지들 가득한 메시지엔 나도 그만 마음이 들떠버려 만날 약속을 잡고 나가게 되곤 했다. 귀국 초반 나의 삶을 전하기 싫었던 마음은 옳았던 것일까. 반가운 마음이 먹칠이 되어 돌아온 경험이 쌓여갔다. 호구조사와 같은 연애, 퇴사 사유, 결혼에 대한 생각, 부동산, 이직 예정 등의 폭풍 질문과 나의 나이와 외모를 저울질하며 은근하게 돌아오는 품평, 그 후의 일관되고 한결같은 주제인 주식, 부동산 정책, 연봉, 승진 등의 대화들을 듣고 있으면 사람과 음식만 바뀐 채 대화의 데자뷰를 경험하는 느낌이 든다. 


결국 집에 머무는 시간이 다시 많아졌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차를 마시고, 창 밖 횡단보도에 지나다니는 사람과 버스, 자동차 구경을 한참 한다. 버스들은 참도 규칙적으로 좌회전을 하고,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걷고 뛰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오늘 남은 하루를 그려보며, 나 혼자 온전히 모든 시간을 쓸 수 있음에 마음이 편해진다. 밥을 해 먹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영상들을 보고, 또 밥을 해 먹고, 요가를 다녀오면 어느새 하루가 후딱 지나 있다. 예전보다 오랜 시간 동안 몸 구석구석을 씻어내고, 머리를 오랫동안 말리고 책이나 핸드폰을 뒤적이며 침대에 누워 평화로웠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스륵 잠이 든다. 매일, 같지만 평화로운 하루들이 참 소중하다. 이 평화로운 데자뷰는 늘 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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