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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첩의사의 어릴 적 꿈은 대통령이었습니다.

by 경첩의사


경첩의사의 어릴 적 꿈은 대통령이었습니다.



0.

아주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대답해 보았을 꿈, 대통령이다.


198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텔레비전을 통해 나오는 가장 유명한 사람이 대통령이라고 알고 있었다. 지금 아이들에게는 유튜브나 예능에 나오는 사람이 가장 유명하다고 알고 있겠지만, 시대가 아이들의 꿈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1980년대 나는 어른들, 주위 사람들이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물음에 몇 번 '대통령'이란 꿈을 말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였던 나는 그것이 허황되고 나에게 전혀 맞지 않는 꿈이라고 곧 깨닫게 되었다.



갑자기 한여름의 시작에 대통령 선거를 한다기에 생각이 났다. 지난 대통령, 그리고 오늘 새롭게 뽑힐 대통령을 보고 어느 어린아이는 대통령의 꿈을 키울 수도 있다. 어린아이에게 바른 꿈을 키워주는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 나오기를 바란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 중 한 명은 몇십 년 뒤 대통령이 반드시 되기에...




1.

꿈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고백하건대 경첩의사의 꿈은...


' 나의 첫 꿈은 변호사였습니다.

어린 시절 첫 꿈은 변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


초등학생 시절, 내가 자라고 있던 지역사회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전국 규모의 사건,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한 법의 도움이 필요한 지역 주민들을 변호해 준 변호사들에 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우연인지 지방은 같은 성씨 변호사이기에 두세 다리 건너서 아는 분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내가 그 변호사분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그 후로도 신문기사, 그리고 국회에 진출한 것까지 알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중학교 시절 집안일, 소송 관련 일이 있었습니다. 억울하게 소송을 당하여 법원을 오가는 부모님을 보고 억울하고 화났습니다. 너무 억울한 나머지 도서관에서 두꺼운 법 관련 책도 빌려와서 혼자 보기도 하였습니다. 법조계라면 이왕이면 판검사를 권유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사람들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꿈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역시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10대 후반부터 나는 인생의 선택에서 여러 차례 고민을 하였다.




고등학교에 진한 후 첫 번째 선택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문과냐 이과냐.



어릴 적 꿈,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문과로 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1년을 배우고 또 고민한 결과, 문과보다 수학을 택했습니다. 수학 과목에 조금 더 자질이 있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이과로 선택 공대 진학을 목표로 수정하였습니다.

수년간 간직한 변호사의 꿈이 이렇게 변하였습니다.

그 후로 공대, 구체적인 일보다 공대라는 목표를 가지고 고등학교, 대입 준비를 하였습니다. 막연한 공대에 대한 꿈을 가지고 수능 준비, 대입을 준비하였습니다.




다시 선택의 시간이 왔습니다. 수능 직후, 며칠간 다시 고민이 되었습니다. 수능 가채점 점수를 보고, 배치표를 보고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당시 내 눈에는 어디에 홀렸는지 공대가 아닌 의과대학에 눈이 갔습니다.


이어 친구의 한마디가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의과대학을 가겠다고 호언장담, 그리고 노력하였던 친구였습니다.

'어차피 공대에 가서 석,박사 과정 최소 6, 7년을 거치며 고생, 노력해야 한대.

같은 노력, 고생이라면 의대 과정 6년과 같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의대에 갈 거야!‘

친구의 당당한 대답에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법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을지?

아픔, 의사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더 많을지?



하지만 당시, 친구도 나도 잘 몰랐습니다.

학교, 의과대학 6년으로 끝나는 줄 알았지만, 그 후로 수련, 전공의, 인턴, 레지던트 또 추가로 군대 3년까지 8년이 더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나 저나 수능이 끝나고 14년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전문의가 되어 세상에 일하는 경첩의사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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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친구 따라 강남에 간 것이 아니라, 친구 말을 따라 의대에 갔다.

물론 그 친구는 나보다 더 북쪽에 의대에 갔고 나는 우리나라 정중앙 도시에 있는 자그마한 의대에 진학하였다.

인생의 갈림길, 선택에서 누구나 혼자가 아닌 타인의 조언과 도움을 받는다. 꼭 타인이 아니더라도 책, 어느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도움이 된다. 당시 나는 전혀 의사, 의대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로 막연한 동경과 친구의 한마디로 내 인생 방향 키를 한 번에 틀어버렸다. 그 당시 솔직히 두렵기도 하였고 아직 성인이 되기 전에 한 결정을 내가 잘 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그 길이 내가 갈 수 있는 길이고, 내가 만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의사가 된 후 그 친구와 직접 만난 적은 없고 몇 번 통화만 하였다. 만난다면 한번 말해주고 싶다.



'친구야! 너의 한마디에 내 인생이 바뀌었다!'

'고맙다! 친구!'

......


'그런데 6년 말고, 추가로 8년은 왜 말 안 해줘야??? '



3.

30년 전 변호사 꿈을 가졌던 시골 초등, 중학생 아이.

시간이 흘러 다시 나에게 질문한다….


'다시 선택하라면 의사 vs 변호사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요?'



둘 다 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지만, 내가 지금 하는 경첩의사가 맞는지 경첩 변호사가 맞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경첩의사. vs 경첩변호사.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내가 꿈꾸었던 그 변호사 꿈, 그것도 경첩 역할이었고 지금 하는 외상외과의사 일도 마찬가지로 경첩 역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첩으로 살아가겠다!' 고 다짐하였던 인생이 지금도 경첩으로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2025년 6월 3일. 경첩 같은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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