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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하려는 후배, 제자 의사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해외로 가서 의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by 경첩의사


새로운 도전하려는 후배, 제자 의사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1.


"해외로 가서 의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이어서 구체적인 계획,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한 구구절절 이야기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의사를 하기 싫다는 이야기, 더 좋은 세상을 찾아가려는 후배의 말. 아직 의사면허증을 받은 지 1년 조금 넘은 햇병아리 의사 후배가 말하는 말이 당돌하고 확고하게 들린다. 나는 말없이 소맥잔을 들이키며 후배 말을 계속 듣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후배의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핑계일지, 합당하고 아주 합리적인 판단에 대한 설명일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이미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후배의 말은 많은 것을 결정한 것이 분명하다. 그다음부터는 소맥이 더 줄줄이 들어간다. 내 앞에 있는 후배와 웃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알코올이 더 들어갈수록 후배는 해외에 대한 기대와 동시 준비를 잘 하겠다는 다짐을 나에게 망한다.


엊그제 후배이자 제자를 만났을 때 일이다. 또 다른 후배이자 제자가 해외로 간다고 말하였다. 한 명의 제자는 이미 미국으로 두 달 전에 떠난 상태이고 다른 후배도 준비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미 작년에 다른 후배이자 제자를 통해 들은 이야기이기에 그리 생소하지도 않는다. 각기 다른 나라로 가려는 마음을 갖고 이미 한 후배는 다른 나라고 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후배 1, 2는 내가 지난 수년간 아끼던 제자였다. 병원으로 실습을 나와 나와 같이 수술에 들어가고 환자를 보면서 눈빛이 빛났던 두 제자이다. 외상외과 실습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피도 많이 보고 두렵고 스트레스가 될지 모르지만 후배들은 그것을 오히려 재미를 느끼고 관심을 점차 갖게 되었다. 남의 의대 과정을 마치고 두 제자는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의사 후배가 되었다.


먼저 미국으로 간 후배에 대한 글은 이전에 쓴 적이 있다.


피가 너무 났다.

피가 계속 나고 있다.



환자 뱃속에서 피가 나는 것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다. 이미 환자 배 안에서 침대, 수술실 바닥까지 피로 흥건하다. 내 수술복과 신발까지 붉은색으로 범벅이 되었다. 복부 대동맥의 가장 가까운 부위 큰 동맥과 그 옆에 정맥이 터져 피가 솟구쳤다. 일 년이면 한번 있을까 하는 환자이다. 그런 소위 대박 환자가 내가 근무하는 날 와서 마음이 좋지는 않다. 내 몸속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고 동시에 주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의 모든 의료진, 그리고 구할 수 있는 피를 모조리 쏟아부어도 불가항력적이며 신의 영역에 도전하였다는 허무함에 빠져든다. 하지만 이런 치료조차, 수술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중증외상환자들보다 이 환자는 그리고 이 환자의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였다.



나와 함께 수술을 들어온 학생은 어떨까?



https://blog.naver.com/mdearnest/223364309810


2.


이런 글을 쓰면 라떼, 노땅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나의 인생 변곡점, 선택의 순간은 단순하였다. 이미 정해진 길들이 얼마 있지 않아서 그 안에서 선택을 하였다. 선택을 하기 오래전부터 이미 그 길을 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다. 좋게 말하면 이미 확고한 마음이 있었을 수 있기도 하지만 고지식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의사면허를 얻은 후 기쁨을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고 힘든 병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잠과의 전쟁과 매일이 힘듦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일하다가 외과 전공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 외과 전문의가 된 나는 나라가 준 공식적인 3년이란 잠시 한숨을 돌린 기간을 가졌다. 3년이란 공중보건의사 시절을 훌쩍 보내면서 다시 선택을 하였다. 해외로 눈을 돌린다는 생각을 몇 초간 생각하기도 하였지만 왠지 모른 두려움과 이미 정해진 길이라는 곳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렇게 나는 지난 이삼십여 년간의 기간 동안, 대학 선택과 외과를 선택, 마지막으로 외상외과의사를 선택하여 지금 이렇게 있는 것이다. 이렇게 쓰고나니 지난 시절 나는 왜 더 치열하게 인생 고민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순간순간마다 나 자신도 치열하게 고민을 하였었다. 내가 선택할 갈림길들이 한정적이었고 내 시야가 조금 좁았던 당시 상황이었다. 절대 당시 내 순간의 선택들이 후회는 없다. 다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 선택으로 나는 지금 이 자리,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3.

한 명의 제자는 이미 미국으로 두 달 전에 떠난 상태이고 다른 후배도 준비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한 명의 후배 의사, 그리고 또 한 명의 후배 의사가 해외로 떠난다. 아마 첫 번째 후배, 제자에 이어 두 번째 후배, 제자도 해외에서 의사라는 직업을 이어갈 것이 분명하다. 그 이전에 내 대학 동기 중에서도 몇 명이 미국으로 간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느낌이고 이상하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아끼는 제자이자 두 후배 모두 외상외과에 많은 관심과 꿈을 키웠던 학생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부족한 외상외과의사라고 생각하지만 나와 함께 수술실과 중환자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면서 나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고 생각하니 더 묘한 감정이 남아있다.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조그만 영향을 끼칠 뻔하였지만, 결국 후배들 모두 내가 거쳐온 길이 아닌 전혀 새로운 길을 찾아간 것이다.



엊그제 나와 후배 모두 어느 정도 혈중알코올 농도가 올라갈 즈음, 2차로 간 스타벅스에서 아아를 앞에 두고 질문하였다. 알코올과 커피는 이럴 때 묘하게 조화롭다. 알코올 힘인지, 카페인 도움인지 나는 후배에게 질문을 던졌다.



"딱 10년 뒤 후배는 어떤 의사로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내 질문에 후배 눈동자가 살짝 고민하면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대답은 얼버무리며 이것저것 이야기하지만, 아직도 나와 함께 수술하며 피를 보고 죽음 낭떠러지에 있는 환자를 살렸던 짜릿한 기억을 잊지 않는 것이 분명하였다. 인생은 모른다. 정말로 외국에서 새로운 의사 생활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지 나와 함께 외상센터에 있을 수도 있다.


새로운 도전하려는 후배, 제자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후배이자 제자 의사가 하는 모든 것을 응원한다.



포기하면 그 순간 시합 종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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