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그것은 외상외과의사의 행복이었다. ]
3억 화물트럭 계약했다고 자랑하는 환자 [ 그러나 그것은 외상외과의사의 행복이었다. ]
1.
"엊그제 3억짜리 화물 트럭 계약했어요!"
세상에 제일 꼴불견이 돈 자랑이라고 말한다. 3만 원짜리 물건이 아닌 3억이라는 거액의 트럭을 샀다고 자랑하는 말을 듣고 있는 나는 속으로 떨떠름해야 지극히 정상이다. 3억 화물트럭을 절반은 현금, 나머지는 할부로 샀다고 자랑하는 말을 옆에서 듣도 있는다.
3억도 중요하지만, 다시 트럭을 준비하고 일을 시작한다는 말에 내 입가에 웃음 꼬리가 달린다. 흐뭇하고 뿌듯한 웃음이다.
이상하다.
돈 자랑하는 말을 듣는 나는 속으로 뭉클하고 오히려 감동하였다. 3억 화물 트럭 계약했다고 말한 사람은 바로 내 환자이다. 정확히 2년 전 어느 날 새벽, 환자 뱃속과 골반뼈가 다 으스러진 상태로 병원에 왔다. 처음 상태는 이대로 환자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날 새벽 수술, 그리고 여러 차례 수술과 중환자실 치료 등등...
그렇게 만난 환자는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백일이 훌쩍 넘겨 환자는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우선 집 근처 재활병원으로 옮긴 후 조금 더 치료하였다. 외래진료를 보려 올 때마다 점점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흐뭇했다. 환자 회복의 마지막은 트럭 계약으로 완벽하게 건강을 되찾은 것으로 증명하였다.
환자가 그날 새벽 그렇게 몸이 부서지고 죽을 고비를 맞은 이유는 다름 아닌 트럭이다. 환자 직업은 커다란 화물트럭 운전기사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먼 도시 사이에서 물류창고 사이를 오가는 트럭을 담당한다. 그날 새벽도 트럭 운전하고 이곳 도시 물류창고 어디선가에서 사고가 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더 말하면 무섭고 상상하기 싫기에 여기까지만 말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2년 뒤 그 악몽을 이겨내고 다시 트럭 계약을 한 것이다.
2.
나와 처음 만난 환자의 딸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였다. 살짝 건드리면 왈콱 울음이 쏟아질 것 같은 모습이다. 사고 난 당일,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그 시간 멀리 차를 타고 딸이 달려왔다.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지만 침착하였다. 그렇게 백일 이상 기간의 입원하는 동안 딸과 나는 환자를 사이에 두고 매일같이 만나거나 전화로 환자 설명을 하고 또 들었다. 언제나 묵묵히 그 치료 과정, 또 때로는 내가 말하는 무섭고 두려운 설명도 침착하게 담대히 들어주었다. 그리고 언제나 항상 아빠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며 내가 하는 치료를 전적으로 따라주었다. 단 5분 만의 면회시간에 아빠를 보기 위해 왕복 서너 시간 동안 거리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왔다.
나는 믿는다. 언제나 그렇게 믿고 있다. 이 환자가 살아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환자의 딸의 힘이 컸다고 믿는다. 딸이 항상 의료진을 믿고, 그리고 아빠의 건강을 되찾게 하기 위한 정성이 있었기에 환자도 좋아진 것이라고 믿는다.
그 환자 얼굴을 볼 때마다, 입원하는 동안 그리고 환자가 퇴원하고 외래진료 보는 동안에도 그날 피비린내와 터져버린 장, 그리고 으스러진 골반뼈가 생각난다. 너무 끔찍하고 환자를 치료, 담당하였던 나 자신도 힘들고 두려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 환자가 온 시간이 새벽 2시. 너무나 피곤하고 눈이 반쯤 감기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중. 증. 외. 상. 인 그 환자를 보자마자 잠은 달아났고 온몸에 도파민이 끓어올랐다.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환자를 처음 본 지 서너 시간이 되어서, 이제 조금 혈압이 잡히고 내 마음의 안심이 되려는 순간, 해가 떴고 아침을 맞아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보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이 환자의 정확한 사고 원인을 알게 되었다. 물류센터를 오가는 대형 트럭을 운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갖은 분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쿠팡이며 각종 택배를 클릭하는 나에게는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인 것이다. 만약 택배가 하루라도 오지 않으면 어느 물류창고에서 헤매고 있는 택배, 택배회사를 한탄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 환자를 치료하는 내내, 나는 이 환자가 내 택배를 적어도 서너 개, 아니 십여 개 이상 배달하는 데 도움 주신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나에게 꼭 필요하고 내가 그토록 다음날 갖고 싶어 하던 택배를 무사히, 신속히 배달하는 데 도움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하였다.
환자 치료에 있어 무슨 이유가 있어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아프고 고통스럽고 병에 걸린 환자이기 때문에 치료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의무, 특히 나는 외상외과의사로 다치고 피나는 환자를 주로 치료한다. 이 환자를 치료하였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택배, 택배 트럭을 상상하는 순간이 많았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더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누군가 나에게 말한다. 내가 환자들에게 베푼 것이 나에게 그리고 내 가족에게 돌아온다고. 그런가 보다. 내가 주문한 택배는 언제나 신속, 정확히 잘 배달 온다. 그렇게 나는 또 그 사실을 믿게 되었다.
'세상은 돌도 돈다. 내가 한 만큼 나에게 돌아온다'
3.
"퇴원하면 가장 먼저 OO 하고 싶어요!"
퇴원을 앞둔 환자, 그리고 그 옆을 지켜주고 있는 보호자, 환자 가족이 함께 말한다. 사람은 건강을 되찾게 된다면 그동안 하지 못한 무언가를 다시 하고 싶어 한다.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지만 본인이 기존에 하던 일, 그것을 천직이라 생각하고 다시 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 환자의 경우에도 트럭으로 인한 끔찍한 사고로 죽음 문턱에까지 다녀왔지만 결국 다시 그 일을 하려 한다.
트럭 계약했다고 자랑하는 외래진료 날, 나는 환자 딸과 통화하였다. 서류 관련하여 딸에게 질문할 것이 있어 통화하면서 트럭 계약을 자랑했다는 아빠, 환자 이야기를 하였다. 딸도 내심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같아 보였지만 너무 건강하게 회복한 아빠가 트럭을 다시 운전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기뻐하는 목소리였다.
환자가 말한 3억 화물트럭이란 말을 듣고 순간 두 번 놀랐다. 화물트럭이 어느 정도 액수가 나갈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그렇게 비싸다는 것에 한번, 이어서 환자가 다시 화물트럭을 운전한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물론 두 가지 모두 나에게나 환자에게서 기쁜 일인 것이 분명하다.
3억 화물트럭 계약했다고 자랑하는 환자.
그러나 이제는 나에게 환자가 아니다. 환자가 아닌 이제부터는 화물트럭 운전하는 건강하신 그분이다. 건강하신 이 분이 있기에 내가 주문한 택배가 이번에도 잘 올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나, 외상외과의사, 경첩의사는 환자를 통해 새롭게 세상을 배운다.
그리고 이렇게 따뜻한 세상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