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환자 꼭 살려주세요!"
"그 환자 꼭 살려주세요!" 환자 청탁을 받았다.
1.
"그 환자 꼭 살려주세요!"
환자 청탁을 받았다.
반드시 살려달라는 간곡한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도 아직 환자 몸에는 피가 멈추지 않는 상태였다. 귀로 그 문장이 들어왔지만, 그 청탁이라는 단어는 내 외이도에만 맴돌 뿐 머리와 가슴까지 미쳐 가지는 못한다. 아직도 환자 배에 나는 피 때문이다. 아직도 줄줄 흐르는 피 때문에 솔직히 환자가 살아날지가 미지수였다. 그런 말을 들을 정신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 환자 청탁은 다름 아닌 이 환자의 이전 주치의인 흉부외과 교수님으로부터 들었다. 몇 년 전 다른 문제로 환자는 이 흉부외과 선생님께 큰 수술을 받았다. 정기적인 진료, 검사를 수년째 꾸준히 다니시는 환자이다. 가슴을 여는 큰 수술을 하고, 수년간 정기적으로 환자 얼굴을 보던 그 흉부외과 교수님은 환자를 잘 아신다. 환자에 대해 아주 잘 아시고, 긍정적이고 좋은 인상에 수년간 정기적인 진료, 경과 관찰과 치료를 잘 유지하는 환자와 의사 사이인 것이다. 한 가지 더, 이 환자에게는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환자를 지켜주고 진로 볼 때 옆에 있어주는 보호자가 있다. 그 가족도 흉부외과 교수님에게 환자와 의사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시켜줄 이유 중 하나인 것이 분명하다.
"그 환자 꼭 살려주세요!"
이 말과 이어 또 다른 말을 하였다.
"그 환자 참 착한 환자입니다. 꼭 살려주세요!"
다시 생각해 보면 이 문장은 절대 청탁이 아니다. 청탁이 아닌 수년간 이어진 의사와 환자 사이 유대감을 표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청탁이라는 말은 긍정적 의미보다 부정적 의미가 더 많다. 정상적인 길이 아닌, 비정상적인 길로 부탁한다는 말이다. 정도가 바른 것이라고 믿고 살아온 나에게는 청탁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또한 누군가 청탁을 받는다는 것은 또 다른 부담이 오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누군가는 남들이 모르는 뒷길이나 지름길로 쉽게 빠른 기차를 타고 수월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직하게 정도를 따라가며 땀 흘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병원에서 청탁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헬기를 타고 몇백 킬로미터 거리를 자유자재로 병원을 넘나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인이라면 도저히 상상도 못하고 불가능하다. 하지만 병원에서 선량한 일반인들이 모르는 수많은 청탁이 있어 서울 유수의 대형병원에서 자유자재로 입퇴원을 반복한다. 모든 것은 정도, 정해진 길을 따라야 한다. 환자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절대 올바르지 못하고 불공정한 샛길이 아닌 정확히 정해진 길을 따라 그 치료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란 법률, 일명 김영란법, 약칭 청탁금지법이라고 부르는 법이 있다. 그렇듯 청탁이란 말이 중립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청탁이란 단어만 들어도 색안경을 끼고 다시 쳐다본다.
© Savva, 출처 OGQ
2.
"OO 병원으로 가 주세요! 꼭!"
환자는 사고 직후, 119대원을 만나자마자 꼭 이곳 병원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무조건 환자는 이곳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였다. 사고 직후에는 어느 정도 의식이 있는 상태였으나 점차 출혈이 진행되고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도착할 즈음에는 의식도 희미해졌다.
한참 뒤, 환자가 회복하고 환자와 가족을 통해 들은 이야기다.
"OO 병원으로 가 주세요! 꼭!"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본인의 가장 큰 수술을 한 병원이기에 이곳에 본인 의료 관련 정보, 기록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사고 며칠 전에도 흉부외과 외래 진료, 검사 기록이 있다. 보통 다른 병원에 다른 이유로 많은 의무 기록들이 있는 경우에 환자 치료 과정에 혼선이나 어려움이 많다. 이런 것을 잘 알기에 환자, 보호자가 1시간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곳 병원으로 무조건 가자고 말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한 가지 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흉부외과 교수님의 청탁과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흉부외과 교수님께서 환자 청탁을 나에게 할 정도라면 환자와 보호자와 흉부외과 교수님 사이의 라포, 유대관계가 보통이 아닐 것이다. 수년간 굳건한 믿음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교통사고 직후 극심한 통증, 서서히 출혈이 진행하면서 흐려지는 의식 상태, 그 와중에도 꼭 내가 어느 병원에 가야 살아날지를 또렷이 기억하고 말하는 것.
운명일 수도 있고 환자가 꼭 살려는 의지일 수 있다. 수년간 믿음의 결과이기도 하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3.
살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 운명이라는 것은 단지 어느 하나만으로 운명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운명은 누군가가 쌓아놓은 길로 만들어진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그것이 그의 운명을 만들어준다.
환자는 웃으며 집으로 갔다.
환자와 보호자 손을 잡고 밝에 웃으며 나와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퇴원하였다. 입원 첫날 나를 만나자마자 하루 동안 7,000 cc 가까운 수혈하면서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환자와 나, 그 옆을 초초하게 슬픈 눈으로 지켜보던 보호자들. 모두의 아픈 기억들은 사라지고 정말 밝고 건강하게 웃으면서 집으로 향했다. 다만 워낙 염증이 잘 발생하는 장기 주위 손상으로 남들보다 조금 길게 입원 기간이 걸렸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금 길었던 입원 기간은 오히려 나와 환자 사이에 더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
이 환자는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놓은 길, 운명과 그것의 결과로 누군가의 청탁과 그 모든 것들이 만나서 살아났다. 그리고 다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날만 남아있다.
퇴원 후, 첫 외래 진료를 보러 온 날, 나는 다시 환자를 밝은 웃음으로 맞이하였다. 슬며시 물어보며 제안을 드려본다.
"다음 차는 더 튼튼하고 에어백 많은 차로 꼭 사세요!"
이어서 말하였다.
환자분을 몇 년 전에 수술해 주셨던 흉부외과 교수님께서 저에게 청탁을 하셨답니다. 이 말은 절대 김영란법에서 말하는 청탁이 아닌, 진심된 어느 의사의 청탁, 간곡한 부탁인 것이었다고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그 환자 꼭 살려주세요!"
"그 환자 참 착한 환자입니다. 꼭 살려주세요!"
내 말을 듣는 환자, 보호자는 씩~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