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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외상외과의사의 유언.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를 읽고...

by 경첩의사

어느 외상외과의사의 유언.

"오늘의 유언이 내일의 삶을 위한 다짐이 된다." [ 유성호 교수, 법의학자 ]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책은 글자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다. 동시에 내가 가보지 못하고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알게 해준다. 그것을 알게 해주는 것을 넘어 새롭게 나를 돌아보게 해준다. 오늘은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님의 책을 읽고 어느 외상외과의사의 유언을 적어본다.



법의학.


학생 시절 몇 시간의 수업. 그리고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하루 동안 실습, 정확히는 참관을 간 적이 있다. 그리고 실제 부검을 참관하였다. 이미 해부학 실습, 병원 실습을 통해 어느 정도 단련(?), 마음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날 국과수 부검의 충격은 정말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죽은 자들을 위한 의사. 당시도 정확히 몰랐고 그 후도 정확히 모르는 법의학이라는 학문. 이제서야 조금씩 그 의미를 알듯하다. 반드시 누군가, 세상을 떠난 사람과 그 가족, 그리고 사회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하는 법의학자. 지금 나는 어떻게든 죽음을 막아보려는 외상외과의사 일을 한다. 그 일은 누군가의 생명, 삶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였지만 세상은 다양한 관점, 다른 세상으로 누군가를 치료하는 의사들이 있다.



유성호 교수, 법의학자가 책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책이다.

책에는 다음 같은 내용의 글이 쓰여있다.


'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는 말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더욱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실천에 가깝다. 이 책은 일생에 한 번쯤 죽음을 상상하며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을 사랑했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무엇으로 채워나갈 것인지 돌아보라고 조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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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나에게 유언을 써보려 한다.



어느 외상외과의사의 유언.


막상 유언이라는 유, 글자 하나만 쓰고 말하려 해도 막막하고 두렵다. 내 인생을 마감한다는 생각이 두렵지만 지금 나는 "오늘의 유언이 내일의 삶을 위한 다짐이 된다." 이 문장을 생각하며 쓴다.


[ 나는 어떤 사람이었고, 무엇을 사랑했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무엇으로 채워나갈 것인지 돌아본다. ]



1.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금까지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40+@년을 살아온 한 대한민국의 사람이다. 남들과 다른 직업, 그중에서 남들 하기 싫어하고 힘들다고 하는 외상외과의사로 살아왔다. 내가 바라보는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나라는 사람, 한 외상외과의사이자 40대 아저씨는 어떨까? 남들 힘들어하는 일을 하고, 사람 살리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 존경과 감사를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꼭 필요하지만 다들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기에...


그러나 나 스스로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부족하고, 또 부족한 사람이다. 나 자신에게서나 자식 된 입장, 그리고 부모 된 입장에서 많이 부족하다. 또한 지금 직장, 병원에서도, 환자에게도 많은 점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부족함을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칭찬한다. 부족함을 항상 채워가려고 살아가는 지금의 내 모습이다. 그 과정에서 채움을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나는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을 통해 또 다른 삶의 무언가를 채우고 얻어 가는 사람이다.


2. 나는 무엇을 사랑했을까?


가장 먼저 나는 나 자신을 사랑했다. 그다음으로 나는 가족을 사랑했다.


병원, 직장에서는 환자를 사랑했다. 내 앞에 놓인, 그리고 내가 할 일과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또한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한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혼자 생각하는 자체도 사랑한다.

어느 주말 새벽에 내가 자주 나가서 뛰는 천변에서 물 냄새, 풀냄새를 느끼며 뛰는 그 순간도 사랑한다. 내 심장이 뛰는 것, 내 발이 뛰는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자체도 사랑한다.



3.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가?


바른 생활, 도덕 책에 있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면서 지난 40여 년을 살아왔다. 그저 그렇게 살아오는 것이 그동안 나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부모님이나 선생님들 의견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사람 목숨을 살리는 직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인생관은 점점 바뀐다. 세상이 바뀌는 것처럼 나 자신도 변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다음 해 쓰는 유언에 쓰려 한다.



4. 나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무엇으로 채워나갈 것인가?


나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으로 채워나가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그 풀냄새와 바람 냄새를 마음껏 마시고 살아가는 삶으로 채우고 싶다. 이왕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런 행복한 순간들을 더 많이 채워나가고 싶다. 좀 더 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 환자들, 정확히는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채워나가고 싶다. 그러나 언제나 나는 환자 옆을 떠나지는 못할 것이다.


5. 그리고 이 유언은 나에게... 나는 일 년에 한 번씩 유언을 쓰려 한다.

나는 수많은 죽음을 봤다. 나의 말 한마디, 서류 서명으로 수많은 인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 순간들은 정말 나에게 괴로운 순간들이었다. 아직 몇십 년 밖에 안 살아온 나에게 더 많은 인생을 살아온 한 분의 인생을 한마디로 끝내는 것은 그 자체가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그 순간만은 최대한 고인과 가족들 모두에게 그 마무리가 어떤 후회가 남지 않게 해드리려 한다. 나 또한 그렇게 인생을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자세를 갖는다. 그 순간들은 절대 유언이 없다. 유언이 없고 눈물만으로 마지막 순간에 나는 환자를 맞이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유언은 꼭 미리, 아주 건강한 내 몸과 마음이 있을 시에 해야 한다고 동의한다. 이 책,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덕분에 잠시나마 나 자신을 위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유언을 적어본다. 이 유언은 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앞으로의 삶을 계속 나아갈 힘을 줄 것이다. 이 유언은 내가 살아왔고, 살아갈 삶에 대한 다짐이다.


이 유언 덕분에, 다음 1년은 더 나답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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