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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외과의사, 환자와 술 마신 썰.

by 경첩의사

환자와 술 마신 썰.




짠!


유리와 유리가 계속 부딪힌다. 술잔이 계속 짠, 짠, 짠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잔이 비워지기 무섭게 다시 술잔이 채워진다. 이제 내가 술을 마시는지, 술이 나를 마시는지 모르겠다.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환자가 아닌가? 나는 지금 환자와 술을 마시고 있다.


의사와 환자가 술을 마신다고?


몇 달 전에 병원, 병실에서 환자와 의사 관계로 있던 사이였는데. 이렇게 환자와 술을 마셔도 되는지? 순간 정신이 확 들면서 그날 밤 일이 생각난다.




환자가 배 아프다고 소리 지른다.



환자는 배가 터질 것 같다고 말하면서 안절부절못한다. 급하게 연락받고 병실로 올라가서 본 환자 상태가 심각하다. 내 담당 환자는 아니지만, 오늘은 내가 당직 근무이기에 내가 최종 책임자다. 배가 아픈 이 환자를 어떻게든 좋아지게 해야 한다. 그 순간도 환자는 배 아프다고 소리를 지른다. 정말 배가 터질듯하게 빵빵한 상태이다.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이다. 나는 이미 이 환자의 대략 상태를 알고 있었다. 수술한 환자, 그리고 중환자실에 오늘 일반 병실로 옮긴 환자이다. 어제도, 그제도 중환자실에서 이미 본 환자이기에 대략은 상태를 안다.


(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하는 게, 환자 개인 정보이기에... )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그날 저녁 6시에도

또 저녁 8시 그리고 10시에도, 또 자정에도 나는 환자 옆을 지켰다. 단지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온몸과 손을 이용하여 환자 고통을 줄여주었다.


환자는 나를 기억한다. 본인 배가 터질듯한 상황에서 살려준 의사로.



그렇게 그날 밤, 환자는 무사히 넘겼다. 다음날 아침 환자 배는 반쯤 꺼졌고 가스가 나왔다고 나에게 방긋 웃으면 감사 인사를 전해주었다. 하루가 좋아졌기에 다음날도 환자는 더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내 담당 환자는 아니지만, 나는 그 병실을 절대 지나칠 수 없었다. 그날 밤 내가 고생한, 더 고생한 환자 생각에 그 환자를 항상 지켜봤고 빨리 낫게 뭐라도 더 도왔다. 당연히 그 환자 담당 의사, 주치의가 다 알아서 하겠지만, 나와 환자는 그날의 기억, 고통의 순간을 함께 하였기에 내가 가서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였다. 내 얼굴을 보면서 저절로 나아가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렇게 3~4일이 지난 어느 날, 친한 고등학교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형 동생 하는 선배의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다름 아닌, 그 선배가 전화한 것은 그날 내가 본 그 환자에 대한 전화이다. 선배의 친한 지인이었던 것이었다. 늦게 그 지인이 이곳 병원에 입원, 수술한 것을 알고 나에게 전화한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청탁(?) 전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만은 당당히 전화를 받고, 내가 그날 밤 배가 터져죽을뻔한 그 환자를 살려주었다고 당당히 말하였다. 나의 진심과 손발, 머리 모든 것을 이용하여 그 환자를 도왔다. 그 고통을 해결해 준 사람은 바로 나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렇게 그 환자는 무사히, 잘 회복하고 퇴원하였다.


다행이었다. 지인, 특히 친한 분의 지인이라면 너무 신경이 쓰인다. 다행히 이번에는 고비(?), 큰 산을 건넌 후에 연락이 온 것이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청탁은 그리 좋지는 않다. 언제나 청탁을 떠나 누군가의 가족, 환자 자체만으로 치료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른 후. 다시 선배의 연락이 왔다.


"그 환자가 이곳으로 한번 오라고 한다네.

이곳에 와서 형하고, 그 환자하고 함께 술 한잔하고 싶다네."


나와 꼭 식사 ( +술)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바쁘다고, 시간 없다고 둘러댔지만 얼떨결에 약속을 덜컥 잡아버렸다. 물론 술, 식사가 아닌 친한 선배, 형을 한번 보기 위한 것이 큰 목적이었다.

십여 년 이상 친한 선후배, 형 동생으로 지내는 사이지만 단둘이 식사를 한지도 꽤 오래되었다. 언젠가 한번 식사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어찌하다가 이번 기회에 약속을 잡았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그렇게.



짠!


유리와 유리가 계속 부딪힌다. 술잔이 계속 짠, 짠, 짠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잔이 비워지기 무섭게 다시 술잔이 채워진다. 이제 내가 술을 마시는지, 술이 나를 마시는지 모르겠다.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환자가 아닌가? 나는 지금 환자와 술을 마시고 있다.



이 환자는 나와 그날 밤 이야기를 열댓 번 이상 반복하고 있다.



환자는


"그날 정말 아파 죽을 것 같았는데, 도와줘서, 치료해 줘서 고마웠어요"



나는



"나도 정말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어려웠지만 그날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드렸습니다. 그날 환자분이 아프신데도 잘 버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환자가 좋아져서 나도 좋았습니다."



이 말을 서로 하고 다시 짠하면서 술잔을 비웠다.



또다시 반복되는 서로가 서로를 칭찬, 감사하다는 말, 다시 술잔이 짠!


물론 이 술자리는 선배님, 형 덕분이다. 나의 원래 목적은 선배와 식사, 이야기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어쩌다가 환자도 함께 한자리가 되었다. 우연히 그 환자는 선배의 친한 지인이었고, 그렇게 인생의 인연이 된 것이다.



내가 보고 있고, 치료하고 있는 지금 이 환자는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절친인 것이 분명이다. 그 고통을 벗어나고 싶은 그 마음은 누구에게나 간절하다. 그 순간에는 지푸라기, 어디 끈이라도 잡고 벗어나고 싶어 한다. 나는 오로지 그 고통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그날 술자리, 환자와 술 마신 것은 마무리되었다.

역시나 마무리는 다시는 병원에서 환자와 의사로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이렇게 술잔을 부딪히며 만나자고 말하면서 헤어졌다.


마지막에 환자는 또다시 말한다.

술은 들어갔지만 환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한 마디.



"그날 정말 아파 죽을 것 같았는데, 도와줘서, 치료해 줘서 고마웠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또 술을 따라줬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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