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과 의사 친구와 외상외과의사 ]
하루 백 명, 그리고 세 명의 환자.
[ 내과 의사 친구와 외상외과의사 ]
1.
"나, 오늘 환자 100명 봤다."
다크 서클, 푹 잠긴 목소리로 친구가 말한다.
내과 교수인 26년 지기 친구와 몇 년 만에 치맥을 하면서 말한다.
100명의 환자에게 너무 말을 많이 해서 갈증이 심한 것인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킨다. 이제서야 친구 목에 갈증이 줄어들었는지, 그날 100명 진료본 이야기를 풀어낸다.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핑계라기보다 사실인 상황이다. 둘 다 병원일에 치여서 각자 바쁘게 살아간다. 갓 튀긴 따끈한 치킨을 사이에 두고 생맥주가 가득 담기 잔이 부딪힌다. 잔 부딪힌 소리가 경쾌하지만 친구가 오늘 본 100명의 환자들과 지속해서 한 말들을 생각해 보니 마음 한편으로 짠하다. 백 명 환자를 보면서, 환자와 대화, 진료를 위해 화면도 뚫어지게 보고, 처방, 챠팅, 진료 기록을 위해 쉼 없이 손가락이 움직였을 것이다.
친구는 시원한 치맥을 들이키면서 한 번 더 말한다.
나 오늘 환자 백 명 봤어!
친구, 대학병원 내과 교수에게 하루 종일 100명의 환자들이 오는 상황이 정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필요에 의해서, 의사를 만나 진료받고, 검사를 하고 약 처방을 해주는 것을 원하는 그렇게 많은 환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친구는 나름 뿌듯해하는 눈치다.
내가 외래진료를 보면 이런저런 이야기, 진료, 검사 결과 설명 등등해서 적어도 10여 분, 길게는 30여 분을 진료 본다. 나에게 하루 종일 맥시멈 환자를 본다 해서 열댓 명 환자가 최대이지 않을까 하다. 이는 외상외과 특성, 내과와는 전혀 다른 환자 치료, 처치가 있기 때문이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2.
'나는 중환자실에 환자 일곱 명을 보았다.'
차마 100명이라는 숫자로 나를 압도한 친구에게 말을 할까 하다가, 그래도 친구에게 말한다. 7명 환자.
그러나 꼭 말한다. 앞에 '중환자'라는 말을 꼭.
중환자실에 환자 7명.
정확히 총 7명의 환자를 주로 봤지만, 내 앞으로 주치의가 된 환자는 세명이다.
모두 모니터를 달고 있다. 몸에 부착된 패드, 팔과 손가락에 또 다른 측정기들이 달렸다. 모니터에는 초록, 빨간색, 노랑 각기 다른 숫자와 그래프로 환자 상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모니터는 모니터일 뿐이다. 환자 몸에 달린 관, 주머니들을 직접 살펴야 한다.
물끄러미, 그리고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환자 침대에서 정확히 10cm 떨어진 상태로 환자를 응시한다. 내 눈은 두 개이지만, 시선은 환자에 관련되 모든 것들을 보고 있다. 환자 팔에 붙은 작은 반창고까지 다 쳐다본다. 모니터에 환자 숨 쉬는 호흡수가 17로 나오지만, 환자 숨결, 가슴이 올라오는지도 보면서 저 숫자가 정확한지도 다시 본다.
물론 겉으로 보는 숫자, 모습들이 전부가 아니다. 두어 시간 전, 나는 이 환자 뱃속을 보았다. 정확히는 뱃속 안에 출혈 부위를 잡고, 내 손이 환자 배 안을 휘저었다. 출혈이 잡히고 환자 혈압이 올라가 정상을 찾아가는 것을 보고 나와 환자는 수술실을 떠나 이곳 중환자실로 온 것이다.
피를 짜주고 있다.
양팔에 꽂힌 혈관주사로 부족하여 추가로 몸 여기저기 굵은 바늘들을 꼽아 넣었다. 한 번에 서너 개 피를 짜주고 있다. 이때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들어가는 피가 빠져나가는 피보다 더 많아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살아난다.
어림잡아 4리터 이상 피가 들어갔다.
이 환자 몸에 대략 4-5리터 혈액이 있다고 보이기에 환자 몸에 들어있는 피가 이미 다른 사람 혈액으로 대체되었다.
이곳 중환자실에서 봐야 하는 일곱 명 환자도 있지만, 병실에 봐야 할 스무 명 가까운 환자들도 있다.
© Aga Kr, 출처 OGQ
3.
그렇게, 인생을 살아간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간다.
하루 100명 환자를 보는 의사, 대신 하루 한두 명 환자를 집중해서 보는 의사.
그날 나는 두 명의 환자가 이곳 권역외상센터로 새롭게 들이닥쳤다. 그래서 중환자실에서 봐야 할 환자가 다섯 명에서 일곱 명이 되었다.
단 한 명의 중환자실 환자, 중증외상환자를 본다.
숫자, 환자 숫자로 절대적 비교할 수 없다. 그 자리에서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
친구는 그날, 100명 모든 환자에게 내과 교수, 담당 주치의 역할을 충실히 한 것이다. 나 또한 친구와 같은 마음으로 중환자실 환자, 그리고 응급실로 급하게 온 환자를 치료한 것이다. 친구의 환자, 그리고 나의 환자 모두 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도와주고 있다.
친구야 반갑다.
아마도 몇 년? 십 년 만에 이렇게 치맥 하는 자리에서 보니 반갑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도, 친구야 이제는 환자들 건강보다 우리 건강이 먼저 아닐까?
건강하게, 앞으로도 너에게 오는 내과 환자들 잘 치료해 주는 멋진 내 친구 내과 의사로 남기를 바란다.
© Aga Kr, 출처 OG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