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 그렇듯이 인생은 한순간의 선택으로 바뀐다.
199@ 년 배치표 : 경첩의사의 인생을 바꾼 종이 한 장.
언제가 그렇듯이 인생은 한순간의 선택으로 바뀐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199@년 11월, 내가 왜!!! 저 배치표를 내가 왜 봤을까?
저 배치표, 중간 작은 글자를 내가 어떻게 발견하였을까? 저것을 봤기에 지금 내 인생이 바뀐 것이다. 19년간 꿈꿨던 꿈이 한순간의 선택으로 바뀌었다.
그렇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은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그 길이 최선의 길인지, 최악의 길인지는 모른다. 가봐야 한다. 하지만 그날 내가 선택한 길은 나는 지금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다.
199@ 년 11월 말.
어수선한 마음과 뭔가 아쉽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나뿐 아니라 같은 반 친구들, 그리고 담임선생님들도 초조하고 근심이 많은 시기이다. 전국의 몇십만 명의 수험생, 그리고 그 가족들까지 하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초조하게 보내는 그 시기이다. 이미 시험장에서 모든 답안지는 제출된 상태이다. 그렇게 내가 적어낸 OMR 종이는 어디로 옮겨 적으며 열심히 채점 기계에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시험지에서 답안지로 옮겨 적을 때 실수가 없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그해 11월, 내 인생 10대의 마지막은 초조하였다.
결실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말로 결정의 순간, 누군가는 인생을 건 베팅을 해야 하는 순간이다. 객관적 자료, 근거는 준비가 된 상태이다. 지난 19년간 각자의 노력으로 각자에게 맞는 숫자는 준비되었다. 마지막 눈치작전과 각자 소신 있는 지원만 남았다. 각 대학별 추가 시험, 면접 등이 있었지만 이미 어느 정도 결정은 된 시점이다.
나도 마찬가지 결정을 해야 한다.
새롭게 따끈한 신상 배치표가 교실 뒤에 붙었다. 서울 유명 학원에서 만든 배치표였는데, 그 당시에는 그것이 유일하면서 가장 공신력 있는 입시 자료 중 하나였다. 지금처럼 인터넷, 입시 컨설팅 등이 전혀 없기에, 담임선생님의 상담과 배치표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결과로 가지고 있는 가채점 점수가 전부이다. 3년 내내 내가 수학, 정석 책 한쪽에 적어놓은 대학, 그리고 학과를 다시 생각하였다. 막연한 꿈, 아니 당시에는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그것이었다. 높은 곳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렇다고 내가 못 이룰 곳은 아니라고 믿었기에 마지막까지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눈물을 훔치고 다시 배치표를 보니, 내가 정석 책에 적어놓은 그곳은 저 높은 곳에 보였다. 나의 가채점 점수와는 적어도 십여 점 이상 차이가 났다. 선생님께 그 대학, 그 과를 말한다면 단칼에 거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것이 분명하다.
다시 배치표를 쳐다본다.
학교도 바꿔야 하고, 과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3년간 꿈꿔온 그 과는 오로지 그 대학에만 있는 것이다. 비슷한 다른 과도 있지만, 이미 하나의 목표만 있었기에 나는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었다. 암울하고 슬펐다.
다시 또, 배치표를 보고, 또 보았다.
OOOO
하나가 확 눈에 들어온다. 내 점수로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입학 전형을 찾아본다. 그리고 어떻게 그 학교 원서도 구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내 인생은 전혀 180도 바뀌게 되었다.
그날의 선택으로 6년을 다니는 대학을 어렵게, 꾸역꾸역 졸업하고, 20대 시절을 책과 병원에 갇혀 보냈다. 그렇게 30대가 되어서도 국방의무를 3년간이나 하면서 지내고... 그렇게 나는 외상외과의사로 살아가고 있다. 선택이 지금의 외상외과의사, 경첩의사를 만든 것이다.
시간이 훌쩍, 강산이 두세 번이나 변하였다.
과거 기록은 남아있다.
최근 우연히, 그 해 내가 본 배치표를 보게 되었다.
바로 어제 본 것처럼 기억이 생생하다. 벽에 붙은 저 커다란 종이를 보면서 암담하면서도 좌절하였다. 그래도 저 많은 글씨 중에서 내가 찾아갈 곳이 있었다. 그렇게 선택한 것에 참 많은 후회도 하였다. 그렇게 시간이 벌써 내일모레면 30년 가까이 되어간다. 요즘 배치표는 어떨까 궁금하다. 암담하고 답답한 저 표에도 살아갈 길은 분명히 있다. 그 선택은 한순간이지만 평생 그 선택이 나를 따라다니고 있다. 결코 변하지 않는 내 스스로 선택한 그것이다.
올해, 제자이자 후배의사가 해외로 떠났다.
제자의 선택이다.
"해외로 가서 의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이어서 구체적인 계획,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한 구구절절 이야기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의사를 하기 싫다는 이야기, 더 좋은 세상을 찾아가려는 후배의 말. 아직 의사면허증을 받은 지 1년 조금 넘은 햇병아리 의사 후배가 말하는 말이 당돌하고 확고하게 들린다. 나는 말없이 소맥잔을 들이키며 후배 말을 계속 듣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후배의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핑계일지, 합당하고 아주 합리적인 판단에 대한 설명일지는 나는 모른다. 다만 이미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후배의 말은 많은 것을 결정한 것이 분명하다. 그다음부터는 소맥이 더 줄줄이 들어간다. 내 앞에 있는 후배와 웃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결론은 이미 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알코올이 더 들어갈수록 후배는 해외에 대한 기대와 동시 준비를 잘 하겠다는 다짐을 나에게 망한다.
엊그제 후배이자 제자를 만났을 때 일이다. 또 다른 후배이자 제자가 해외로 간다고 말하였다. 한 명의 제자는 이미 미국으로 두 달 전에 떠난 상태이고 다른 후배도 준비하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미 작년에 다른 후배이자 제자를 통해 들은 이야기이기에 그리 생소하지도 않는다. 각기 다른 나라로 가려는 마음을 갖고 이미 한 후배는 다른 나라고 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후배 1, 2는 내가 지난 수년간 아끼던 제자였다. 병원으로 실습을 나와 나와 같이 수술에 들어가고 환자를 보면서 눈빛이 빛났던 두 제자이다. 외상외과 실습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고 피도 많이 보고 두렵고 스트레스가 될지 모르지만 후배들은 그것을 오히려 재미를 느끼고 관심을 점차 갖게 되었다. 남의 의대 과정을 마치고 두 제자는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의사 후배가 되었다.
https://blog.naver.com/mdearnest/223902708709
제자의 선택은 그 오래전 나의 선택처럼 단지 배치표 하나만을 가지고 한 선택은 아닐것이다. 심사숙고, 각종 자료와 실제 해외에 가서 보고 듣고 경험함 모든 것을 통한 결정이다. 누군가에게나 선택, 후배의 선택을 응원하고 누구보다 잘 되기를 응원한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선택한다.
오래전 짜장면과 짬뽕을 고민하면서 언젠가는 짬짜면을 주문하여 먹었었다. 이상하게 짬짜면은 두 가지 음식을 섞어먹어서인지 먹고 나면 뭔가 깔끔하지 않다. 선택이란 것도 어느 확실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탈 나기 일쑤다. 내가 믿고 확신하는 그것에 대한 정확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이 맞는다면 그것으로 나가야 한다.
199@ 년 배치표가 지금 경첩의사의 인생을 바꾼 종이 한 장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은 또 다른 내 인생을 정해줄 치트키가 될 것이다. 오늘 하루 내 선택과 그 결정을 나 스스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