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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Mar 14. 2023

새벽 3시. 환자도 죽을 것 같고, 나도 죽을 것 같다




새벽 3시. 환자도 죽을 것 같고, 나도 죽을 것 같다.




1.

모니터에 여러 숫자들이 흐트러지게 보인다.


너무 혼란스럽게 보여 어느 숫자를 먼저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혈압 앞자리 숫자가 5,6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들어가는 빨간 혈액이 속도를 더 높여 들어가면 7,8로 잠깐 올라가곤 한다. 환자 몸에 달린 소변줄로 나오는 소변양도 한 시간 동안 몇 방울 나오지도 않는다.

그래도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시는 의료진들, 간호사들에게 더 환자를 위해 뭐라도 해보자고 한 번 더 다독여본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이 환자 오늘 못 버티겠네요.'


차마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고 내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me too'

'환자도 죽을 것 같고 나도 죽을 것 같아요.'



그 순간 멀리 벽시계에 작은 바늘이 3인지 4인지 희미하게 보였다.

어제 낮부터 많은 환자들과 정신없이 보낸 24시간이 그려졌다. 눈앞에 보인 환자를 수술하면서 피가 쏟아져 나와 내 수술복 안쪽으로 스며들었던 피가 허벅지에 적셨다는 것이 떠올랐다. 순간 허벅지에 묻은 피가 굳어져 있다고 느껴진다. 내 허벅지에 묻은 피는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내면 되지만 내 몸 깊이 들어있는 피곤함은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30여 분 전 들이마신 커피가 잠깐 동안 내 머리에 피를 한번 돌게 하였으나 이제 피곤함과 동시에 판단력도 흐려진다.



새벽 3시. 4시. 무언가 많은 생각이 드는 시간이다.


" 어린 시절, 그리고 그 험난하였던 20대 초반 의대생 시절에도 나는 절대로 이 시간에 깨어있지 못하였고 잠에 취해있을 시간이다. 훌쩍 시간이 지나 40대 외상외과의사가 된 지금 이 시간 나는 무엇을 위해 깨어있는 것인지? "


잠깐 동안 혼자만의 푸념, 신세한탄을 하고 다시 큰 심호흡을 하고 환자 옆으로 다가간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과정을 다시 복기하고, 환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 더 살펴본다. 지금 들어가는 약물들이 부족하지 않은지? 혹시나 더 필요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본다.

한두 가지 빠진 것, 더 해줄 것들이 생각난다.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 환자가 한 걸음 더 삶, 생존을 위한 길로 가는 것이다.

동시에 그 길이 나도 살아가는 길이다.




2.

수년 전 어느 응급의학과 선생님께서 안타깝게 운명하셨다는 것이 이슈가 되었다. 우리나라 응급의학과 발전을 위해 현장에서 그리고 응급의학과 체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 주신 선생님이셨기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셨다. 나 또한 어느 회의석상에서 같이 자리하였던 기억이 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세심하고 당당하게 의견을 제시하셨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언론에 나온 기사, 단 한 번이지만 공식 회의석상에서 본모습.

그렇지만 그분이 어떻게 현장에서 환자들을 보셨고 행정적인 일을 하셨을지 충분히 상상이 된다. 현장과 행정적인 측면 모두에서 환자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셨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신 선생님을 생각하면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사진 한 장은 그분이 집에도 못 들어가시고 늦은 시간까지 병원 내 어느 곳에서 쓸쓸히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공간 모습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깝고 슬픔 그 자체 공간이다.

한 생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어 하셨던 응급의학과 선생님께서 정작 본인 건강, 목숨을 못 챙기셨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아리기만 하다.


그 선생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정말 죽을 것 같다는 느낌, 경험을 몇 차례 해보았다.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놀러 가서 발끝이 물에 닿지 않는 경험을 하였다. 수영도 제대로 못하면서 발끝에 모래바닥이 닿지 않는 바닷물에 들어가서 허우적거리는 그 느낌. 순간 죽음이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찌릿한 느낌으로 공포감이 진동하였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어느 워터캠프에서 한차례 더 같은 경험을 하였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시곗바늘이 12에서 출발하여 열심히 한 바퀴 돌고 돌아 다시 12로 돌아온다.

한 생명이 태어나서 다시 돌고 돌아 누구나 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세상 이치다.


나는 그 이치를 조금이나마 늦추고 되돌리려고 노력하는 직업을 가졌다. 그 일이 내가 할 일이고 곧 내가 그 일을 통해 나의 경제적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쉽게 말해 사람들을 살기 위해,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일을 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날 밤 아니 새벽 3시 그 느낌, 공포스럽고 두려운 감정을 잊지 못하겠다.

아니 그런 느낌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제발 바랄 뿐이다.



'me too'

'환자도 죽을 것 같고 나도 죽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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