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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Apr 21. 2023

정신과 동기를 만나야겠다 _ 고민 중인 외상외과의사 I



정신과 동기를 만나야겠다 _ 고민 중인 외상외과의사 I




카톡 목록에서 정신과 동기를 찾는다.

그래도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한 명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그동안 그 요긴함, 쓸모를 간과하고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

그렇다. 오랜 기간 정신과라고 부르며 누구나 다 기피하고 멀리하고 싶은 분야다. 나 또한 의대 시절부터 그리 공부하고 싶은 분야도 아니고 관심도 없기에 딱 국가고시 시험에 볼 만큼만 공부했던 기억이다. 그 후로도 정신건강의학과 관련하여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 다만 수면제 처방에 관하여 몇 가지만 알고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외상외과의사에게 끊임없이 오는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들이 몰려온다. 바로 스스로 몸에 해를 가져오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마도 언론에서 그리고 유명인들이 끊임없이 스스로 몸에 해를 가져오고, 높은 곳에서 자유를 찾아 자유낙하를 하는 것을 보여주기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다.

참. 난감하다. 나는 부러지고 피가 나는 사람들의 육체적 몸을 고치고 치료하는 전문 분야를 가졌지만 일하는 중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적 진단명에 직면한다. 물론 대학병원에서는 그 분야의 해당과에 진료 협진을 구하여 조언을 받지만 그래도 담당 환자로 있는 자체고 그리 유쾌하지 않다.


솔직히 내가 골라서 받고 싶은 환자.

아니 외상외과의사로서 꼭, 그리고 반드시 치료하고 싶은 환자들은 ( 히포크라테스 선서, 그리고 의사 윤리(?) 상 환자를 골라 받는다? 절대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나도 사람이기에 공사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도중 사고, 그리고 안타까운 교통사고 등 꼭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더 잘 치료해 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다.


나의 신념에는 젊은 청년이 일하는 도중 불의의 사고로 심하게 다친 경우, 이 청년이 권역외상센터라는 많은 세금이 들어간 의료시설, 인력을 이용하여 잘 치료가 되어 사회로 복귀하기를 바란다. 이는 이 청년이 건강을 되찾아 사회에 한 축을 다시 담당하고 동시에 그동안 받은 혜택만큼 세금도 납부하는 것이 곳 권역외상센터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정신과 동기에게 연락하기 전에 미리 예습을 하자.

오랜만에, 그리고 다짜고짜 '내 마음이 답답하다. 나 우울하고 힘들다. 정신과 동기야! 내 마음을 읽어주고 치료해 주셔! 상담도 해주고 약 처방도 해줘!' 이렇게 말한다면 아무리 친한 동기라고 하더라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정신과, 정신건강의학과 교과서는 이미 20년 전 학생 때 보던 것이고 어디 구석에 박혀있는지 모르겠고 그래도 의사와 의사의 대화, 질문답이니 예습, 구글링을 해야겠다.



내 증상이 무엇이고 예상되는 진단명은 무엇일까?

단순 우울증? 만성피로증후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장애?

그래도 언제든, 누우면 바로 골아떨어져서 수면장애는 아닌 것으로 ^^



역시나 관심 없는 분야이니 구글링, 예습을 하려 해도 잘 모르겠다. 그냥 지금 이 순간 내 신세가 처량하고 마음이 답답한 것이 우울증이라고 가정을 하고 다시 구글링 해보는 것으로.


어 이상한 단어, 약자가 나온다. 우울증의 진단 기준. DSM-IV

매번 업그레이드되는 것이구나. 이 질병 군에서는 (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내가 학생 때 매운 것이 DSM III 정도 되었던 기억이 난다) 계속해서 진단 기준, 그룹이 추가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암튼 누군가는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이라고 번역을 하는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라는 미국정신의학외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아 어렵다.


여기서 말하는  우울증의 진단 기준(DSM-IV)은  다음 여러 가지 기준 중 첫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포함되고 나머지 중 4개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기준을 말한다.


[ 2주 이상, 거의 매일 우울한 기분, 일에 관심, 흥미 감소,

식욕 감소 또는 증가 /   불면 또는 과다수면 /  정신운동 지연, 초조 / 피곤 또는 에너지 감소
/  무가치감, 부적절한 죄책감 /  집중력 저하, 우유부단 /  반복적 자살 생각 ]



참 애매하다. 역시나 나는 의학이라는 것을 20년 훌쩍 넘게 하고 있지만 역시나 딱 부러지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진단명 붙이기부터 뜬구름 잡기식이라 그다음 치료에 대해서는 찾아보기가 싫어졌다.


아니 이미 저기 기준 중에서 서너 개는 확실하고 나머지 두세 개가 나에게 해당되는지 고민하는 중이다. 아마도 내가 저기 기준에 들어간다는,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기에 회피하고 싶은 심정이다.


의학에서는 진단이 되면 그에 따른 치료, 약물 치료 혹은 다른 치료방법들, 더 나아가 예방법 등까지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다.



진단을 나 혼자서 이미 내렸기에 오늘은 정신과 동기에게 연락하는 것은 보류다.


다시 고민하는 것이 '집중력 저하, 우유부단' 저기에 있는 진단 기준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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