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가슴이 설렌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을 수 있고 용돈은 덤으로 받는다. 하지만 난 지금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이제 체념한다. 일반적으로 최소 3일간의 명절 연휴가 달력에 표기된다. 간혹 대체 공휴일이 포함되면 4일 연휴, 더러 징검다리까지 포함하여 5~6일 황금연휴가 되어 다들 들썩인다. 누군가는 들썩이는 그 시점에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만 푹 쉰다. 그러나 이제 그런 한숨을 쉬는 것 자체도 이제는 지친다. 그저 연휴, 달력에 빨간색이 하나도 없는 달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이런 기사 제목이 좋다. '앞으로 몇 달 연휴가 없다.'
어쩌다 보니 수년째 내가 근무하는 부서 외상외과 당직 일정은 내가 작성한다. 무언가 일정을 정하는 사람이 손해라는 것이 정설이다. 매월 30일, 31일 때로는 28,29일 불규칙하고 주말, 휴일 날짜가 들쑥들쑥 하다. 정해진 규칙을 동일하게 적용하려고 항상 의식하면서 당직 일정을 작성을 하고 동료분들께 미리 확인을 받는다. 물론 그전에 각자 개인적인 일, 행사 등으로 사전 불가능 날짜 정보를 얻은 후, 그날들을 피해서 A, B, C 순서대로 작성을 한다. 임시 가안을 만들고 주말, 휴일 날짜 동일 기준 그리고 연속 당직을 최대한 줄여서 하도록 노력을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한 달에 들어가는 날짜 수가 규칙적이지 않아서 누군가는 최소 한 번은 더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발생한다. 그것은 일정을 정하는 사람의 몫이 된다는 아이러니다. 애써 다음 달에서 다른 선생님이 한 번 더 근무 일정을 하게 융통성 있게 하려고 하지만, 그렇지만 언제나 작성자가 손해인 것은 서글프다.
'내년, 다음 명절에는 어떻게 될까?' 이런 사치스러운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것도 이제 그만해야겠다. 가끔 기사로 OO 연도 황금연휴 예정이라는 설레는 제목을 보면 애써 외면한다. 3일 명절 연휴에도 최소 한두 번의 당직 근무를 해야 한다는 서글픈 상황에서 너무 배부른 상상을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 더 나아지고, 좋아질 것이란 기대를 안고 하루하루를 일하는 즐거움을 가져야 한다. 그런 것이 인생이고 삶의 즐거움, 더 나아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된다.
이상 권역외상센터 10년 차 외상외과 의사가 쓴 한탄이다. 한탄 보다 현실이고 이것이 현재 권역외상센터의 민낯이다. 한때 한두 명의 외과의사가 지금보다 더 있던 시절에 한두 명의 사람은 연휴 3~4일을 쭉 쉬는 것으로 했었다. 아주 잠시 한두 번으로 그쳤고 인력이 다시 빠져나가 지금처럼 고난의 행군은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는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행복과 경제적 이유, 마지막으로 일 자체 가치를 꼽는다. 행복, 경제적 이유, 가치 세 가지 중에서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일을 하고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즉 내가 행복하게 살고 가정을 일구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본적으로 행복과 돈도 적절하게 얻으면서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을 때 나 자신은 그 일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하나 더 나는 일을 함에 있어 오늘보다 내일, 내년에 더 나아간다는 발전과 향상된다는 방향성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고 뒤로는 국민들을 애써 위하는 척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단 한 가지다. 5년만 참고 다시 정권을 잡아 본인들이 원하는 정치를 계속하고 싶어서이다. 반대쪽은 어렵게 잡은 이 정권을 다음 5년 후에도 본인들의 정치를 계속하고 싶어서이기 때문이다. 너무 식상한 이런 정치판 게임을 다들 알고도 모른척하는 것이 삶이다.
이야기가 중증외상환자와 10여 년 동고동락한 한 외상외과 의사의 한탄에서 시작하여 잠시 행복, 돈, 그리고 가치론까지 왔다. 지난 10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훌쩍 지나갔다. 나의 30 내 열정은 이제 반쯤 남은 것 같다. 다음 10년 뒤 내가 50대가 되었을 때 그마저 남은 반쪽 열정은 어디로 사라질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 궁금하다.
그저 바람이라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안타깝게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